영화 '엑시트'(이상근 감독)는 영리한 영화다. 분명 익숙한 '재난 영화'인데, 톤은 이상하게 밝고 긍정적이다. 이 해맑은 톤에서 다른 영화와는 차별화되는 '엑시트' 만의 힘이 나온다.
31일 개봉하는 '엑시트'의 기본적인 골격은 재난 영화다. 갑자기 도시 전체로 퍼져나가기 시작한 유독가스, 이 상황에서 생존을 위해 분투하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재난 영화'는 필연적으로 정치적이다. 현대사회의 재난은 종종 '인재'(人災)로 여겨지고는 한다. 자연 재해로 인한 재난일지라도 사회적 시스템의 보호권 밖에 있는 취약 계층이나 서민들이 더 큰 피해를 당하는 경우가 잦아서다.
그 때문에 많은 '재난 영화'들이 재난이 일어난 상황을 사회 비판의 도구로 활용한다. '부산행'이나 '터널' 등은 재난을 당대 정치적 상황에 빗대 표현하며 관객들로부터 공감을 얻었다.
하지만 '엑시트'는 다른 노선을 취한다. 이 영화는 사회 풍자보다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선한 선택을 하는 개인의 태도에 관심을 두고 있다. 재난 상황의 원인과 해결 방법 등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묘사가 없다. 다만, 선한 양심으로 이를 해결해 가는 젊은이들의 모습에 초점을 맞춘다.
매일 박탈감에 시달리는 백수 취준생 용남(조정석 분), 업무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사회 초년생 의주(임윤아 분)는 두려워 오열할지언정, 가족과 자신들보다 더 약한 이들에 구조될 수 있는 기회를 양보한다. 대학 산악부 출신으로 이들이 갖고 있는 능력은 사회생활이나 취업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지만, 위태로운 순간에 큰 힘을 발휘한다.
이런 연출을 통해 '엑시트'는 영화 전반적으로 따뜻하고 긍정적인 분위기를 얻었다. 조정석과 임윤아는 이전 작품들에서 미처 다 보여주지 못한 인간적인 매력을 캐릭터를 통해 가감없이 뿜어낸다. 백수 용남의 가족으로 나오는 박인환 고두심 김지영 등의 캐스팅도 매우 적절했다. 이 시대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누나를 대변하는 듯한 모습에 웃지 않을 수 없다.
'엑시트'표 코미디의 힘은 많은 부분 '공감'에서 나온다. TV 채널권을 갖고 다투는 부모님, 어머니 칠순 잔치의 풍경, 취준생의 설움 등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가 공감을 주고 그 공감에서 웃음이 파생된다. 무거운 주제의식을 벗고, 그 속에 코미디와 가족 드라마를 넣으니 결과적으로 웃음 터지는 재난영화가 완성됐다. 여름 '텐트폴' 영화로는 손색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