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종영한 MBC수목드라마 '신입사관 구해령'의 로그라인은 이렇다. 조선의 첫 문제적 여사(女史) 구해령과 반전 모태솔로 왕자 이림의 '필' 충만 로맨스 실록. 얼핏 말랑말랑한 퓨전 사극 로맨스로 보이지만, 또 다른 한 축은 시대와 편견에 대항하는 이들의 이야기다. 구해령은 조선시대와 어울리지 않는 비현실적 인물이다. 스물 여섯의 노처녀, 왕자와의 혼인보다 자신의 꿈이 우선인, 당당하게 금녀의 직군인 사관에 도전하는 '문제적' 인물. 신세경(29)은 곧 자신이 구해령이었다고 말했다.
시간을 돌려 딱 10년 전, 그의 이름을 알린 시트콤 '지붕뚫고 하이킥'에서 신세경은 환경적, 계급적 설정에 억눌려 목소리 한 번 크게 내지 못 하던 인물이었다. 10년 후의 '구해령'은 보다 더 운신의 폭이 좁은 조선시대가 배경이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신세경은 더욱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여성을 표현했다. 캐릭터의 힘을 잃지 않으면서 동시에 구해령의 성장 스토리와 멜로까지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뤄냈다. 종영까지 2회를 남겨둔 지난 25일 인터뷰를 위해 만난 신세경은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하고 만족스럽게 작품을 마무리했다며 웃었다.
▶(인터뷰 시점 기준으로) 종영까지 2회 가 남았는데 묘하게 긴장도 되고 기대도 된다. 나는 만족스러웠는데 시청자분들도 같이 좋아해주셨으면 좋겠다. 결말에 만족한다. 인물들이 자기의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마무리된다. 해령이는 승진을 하고 사랑도 진행되는 상태다. 여러가지를 놓고 봤을 때 모두에게 행복해지는 결말인 것 같다.
-대개 러브라인의 해피엔딩은 결혼을 의미하는데, 연애에 머무른다는 건.
▶나 역시 제일 걱정하고 고민했던 부분이다. 시대상을 고려했을 때 (해령이) 혼기가 지난 노처녀인데 혼인을 안 하는 것이 색다른 지점이다. 이걸 어떻게 그릴지 궁금했는데 이 정도면 색다르고 사랑스럽게 마무리한 것 같다. 해령이로서는 왕자와 결혼하지 않는 것이 해피엔딩이라고 본다. 멜로 드라마라는 것이 꽉 닫힌 해피엔딩으로 가려면 '둘이 결혼해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가 돼야 하는데, 혼인이라는 것 자체가 구해령이 가진 심각한 갈등 요소 중 하나이지 않나. 앞서 혼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해령이 거절하는 장면이 있는데 멜로의 흐름에서 여주인공이 혼인이 싫다는 걸 시청자들이 이해해줄까 고민했는데 다행히도 많이 공감해주시더라.
-제목부터 '신입사관 구해령'이다. 중심인물로서, 주인공으로서의 부담감은.
▶내 캐릭터가 제목에 들어간 것은 처음이어서 신기하고 특별한 경험이었다. 작품을 보면 주인공뿐만 아니라 주변 인물들까지 심도있게 그려지기도 했고 다양한 이야기들을 결코 가볍지 않게 다루고 있다. 처음에 출연하기로 결심했을 때 약간의 부담감은 있었지만, 촬영하면서 느껴보니 결코 나 혼자 짊어지는 게 아니라 모든 동료들과 함께 하는 배우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임했다.
-해령이 조선시대 잘 없던 여성 캐릭터인데 시청자 입장에서 기존 사극, 캐릭터와 달라 이질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우려는 없었나.
▶고민이 많았다. 결이 다른 사극인데다가 시대상과 전혀 맞지 않는 새로운 캐릭터를 연기한다는 게 보는 분들로 하여금 괴리감을 느끼지 않을까 싶었다. 사실 일종의 고정관념이지 않나. 조선시대 여성이라면 자고로 이렇게 살았을 것이라는. 구해령은 그러한 조선시대에도 고정된 방식대로 살지 않은 한 여성이 있었다면서 시작하는 드라마라는 생각으로 임했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산 사람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했다. 꿈을 가지고 그런 시대를 살았던 여성들의 절규를 구해령이 대신 해준 것이 아닌가 생각도 해본다. 그 점에서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낀 장면들이 많았다. 일이지만 스스로 공감하고 보람을 느꼈다. 이런 작품을 수면 위로 올릴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그걸 내가 연기했다는게 뿌듯하다.
-해령은 연애도 주도적으로 한다.
▶그런 점도 신선했다. 다양한 면이 있다. 현대라고 생각하면 드라마 속에서 이런 여성 캐릭터는 꽤 있었는데, 조선시대로 옮겨가니 특별해지더라. 아주 재미있었다.
-작품을 선택할 때 여성 캐릭터의 주체성, 능동성에 중점을 두는 것 같다. 그 이유가 있다면.
▶어떤 특정한 기점이 있었는지는 구체적으로 모르겠다. 캐릭터의 주체성만으로 출연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이야기, 캐릭터 등 작품에는 다양한 것이 있다. 공교롭게도 내가 출연한 작품들의 공통점이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라는 점이었다. 내 취향이나 개인적으로 지향하고자 하는 바와 맞닿아 그런 캐릭터에 더 끌린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개인적인 계기라기보다 시대가 변한 이유도 있다고 본다. '구해령' 같은 작품이 수면 위에 드러난 것도 비슷한 맥락인 것 같다. 나로서 큰 의미를 지닌 것도 성별의 차별에 대항하기 떄문만은 아니고 우리가 일상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저지르고 있을 지도 모르는 모든 차별에 대항하는 메시지를 지니고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작품을 더욱 아끼게 된다.
-구해령이 마치 신세경처럼 보인다는 반응이 많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대본을 볼 때도 많이 느꼈다. 가지고 있는 불씨가 있는데 사회상, 환경상 표현하지 못한 것들을 가감없이 표현하는 캐릭터여서 너무 행복했다. 사실 구해령이 나다. (웃음) 연기자로서 일을 한 것이지만 그걸 떠나서 즐거움을 많이 느끼면서 임했다.
▶챙겨보려고 했다. 실시간으로 보지는 못 했지만 그렇게 봐주시는 반응이 굉장히 뿌듯했다. 일을 하면서 가장 큰 원동력이 되는 부분인데 시청자들이 공감해주시고 이 작품의 의미를 알아봐주시는 것? 그 순간에 기쁘고 행복했다. 예컨대 앞서 말했던 혼인 에피소드를 공감하고 지지해줄 때 행복했다.
-'구해령'은 어떤 작품으로 남을까.
▶내 가치관과 가까이 맞닿아 있었고 정신적인 고통이나 큰 고민없이 온전히 연기에 임할 수 있었던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