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스타) 장아름 기자 = 지난 2012년 7월25일 개봉해 누적관객수 1298만3841명을 기록한 영화 '도둑들'은 당시 화려한 캐스팅으로 화제를 모았던 작품이다. 배우 김윤석과 김혜수, 이정재, 전지현, 임달화, 김해숙, 오달수, 김수현 등 지금도 충무로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최고의 배우들이 '어벤져스급 라인업'을 자랑한 영화였다. 당시를 기점으로 멀티캐스팅은 더욱 성행하기 시작했고 이는 흥행 영화가 되기 위한 일종의 공식으로도 자리잡았다.
지난 2013년 여름 성수기 극장가에선 영화 '감시자들'이, 2014년엔 영화 '명량', '해적: 바다로 간 산적', '군도: 민란의 시대', '해무'가 각각 톱배우들을 내세운 멀티캐스팅을 선보였다. 지난 2015년엔 영화 '암살'과 '베테랑'이 믿고 보는 배우들의 멀티캐스팅으로 예비 관객들의 기대감을 높였던 만큼, 흥행에도 크게 성공했다. 두 영화는 지난해 여름 극장가를 완전히 장악하며 그해 '쌍천만 흥행'이라는 진기록을 쓰는 영광을 안았다.
멀티캐스팅은 관객들에게 신뢰감을 줄 수 있는 여러 배우들을 통해 다양한 캐릭터를 선보이고 플롯을 더욱 풍부하게 깔겠다는 의지가 읽히는 흥행 공식이기도 했다. 투자자와 제작자는 원톱 배우에 의지하는 것 보다 티켓 파워를 고루 갖춘 여러 배우를 출연시켜 흥행 리스크를 분산시킬 수 있다. 관객들은 인지도가 높고 연기력까지 갖춘 배우 여러 명을 한 영화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 자체를 또 하나의 미덕으로 보고 흥미롭게 여긴다.
이전에는 멀티캐스팅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시선도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단독 주인공을 내세웠을 당시 보다 스토리 전달력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었고 각 캐릭터의 드라마와 이에 따른 비중도 함께 고려해야 하다 보니 서사가 따로논다는, 주객이 전도된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그렇지만 각 작품의 기획 규모와 투자 비용의 몸집이 점차 커지면서 상업 논리와 필요에 따라 멀티캐스팅은 불가피해졌다.
그 흐름을 타고 있던 국내 여름 영화 시장에서 올해 두 편의 작품은 새삼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영화 '터널'과 '덕혜옹주'는 성수기 극장가의 국내 영화 중 한 명의 인물을 내세운 '드문' 작품인 것. 지난 7일 1000만 관객을 돌파한 '부산행'도 배우 공유를 중심으로 하고 있지만 다양한 인물들을 내세운 이야기들로 결국 멀티캐스팅을 취한 작품이었다. 영화 '인천상륙작전'과 '국가대표2' 역시 멀티캐스팅을 내세운 작품이다.
하정우는 126분을 오롯이 자신의 원맨쇼로 채운다. 영화가 시작된지 5분 만에 무너져 내린 터널 내에 홀로 갇힌 가장 이정수 역으로 분해 관객을 쥐락펴락하는 놀라운 연기력으로 자신의 진가를 입증했다. 손예진 역시 망국의 비극을 떠안은 덕혜옹주로 분해 인생 연기를 펼쳤다는 찬사를 받았다. 두 배우 모두 각자 처한 비극적 상황에서 관객들의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현명하고도 합리적인 연기로 극찬을 끌어냈다.
물론 '터널'과 '덕혜옹주'에서 두 사람 외에도 훌륭한 연기력의 배우들이 열연을 펼쳤지만, 붕괴된 터널에 홀로 갇힌 이는 자동차 영업 대리점 과장인 이정수였고 '덕혜옹주'는 제목 그대로 대한제국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의 안타까운 삶을 그리는 영화였기 때문에 하정우와 손예진이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 현재 이들이 원톱으로 이끄는 해당 작품들은 각각 박스오피스 1, 2위(13일 영진위 통합전산망 기준)를 수성하고 있다.
배우의 진가와 티켓파워는 멀티캐스팅이 아닌 원톱일 때 비로소 입증될 수 있다. 다양한 배우들이 출연할 경우 캐스팅 자체로 영화의 인지도를 끌어올릴 수 있고 예비 관객들의 관심을 유도하기가 쉬워지지만 원톱 영화는 주연배우 홀로 그 몫을 감당해내야 한다. 배우로서는 동료 배우들과 보여주는 화려한 볼거리 대신, 혼자만의 연기력 그 자체만으로 드라마를 강화시켜야 하는 부담도 상대적으로 클 수밖에 없다.
멀티캐스팅에서도 화려한 캐스팅 틈 사이 자신의 캐릭터를 드러내기 위해 배우들은 노력한다. 이는 연기의 본질이 머릿수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다수냐, 원톱이냐를 떠나서 연기를 잘 하는 배우들은 어디에서든 빛이난다. 하정우는 '베를린', '범죄와의 전쟁'에서도, '더 테러 라이브'와 '터널'에서도 돋보였다. 손예진도 '타워'와 '해적: 바다로 간 산적'에 이어 '덕혜옹주'로 원톱으로 서는 데 성공했다. 여름 성수기 극장가에서의 이번 흥행 성적표는 두 배우에 대한 신뢰감을 더욱 키우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특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