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영화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이하 '장사리')은 그 어느 작품보다도 곽경택 감독의 많은 고민이 담긴 작품이다. 영화는 한국전쟁 중 기울어진 전세를 단숨에 뒤집을 수 있었던 인천상륙작전 하루 전, 양동작전으로 진행된 장사상륙작전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평균나이 17세, 훈련기간 단 2주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투입된 772명 학도병들의 이야기가 전면에서 그려진다.
곽 감독이 영화의 연출을 맡게 된 계기는 "이 나이되도록 이런 걸 몰랐다니 미안했다"는 마음에서 시작됐다. 그래서 '장사리'는 안타고니스트와의 극적인 드라마 대신 학도병들의 희생과 그들의 처절한 서사로 채워졌다. "희생한 분들이 있어 대한민국에 평화가 있다는 것"이라는 메시지는 학도병들에게 헌사하고자 했던 곽 감독의 진정성 어린 영화를 통해 전달된다. 곽경택 감독을 만나 '장사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장사리'를 연출하게 된 계기는.
▶'희생부활자'라고 전작이 고생했다.(웃음) 그 작품이 투자자들에게 가장 큰 손해를 끼친 작품이다. '태풍'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고스란히 피해를 안게 해서 너무 미안하기도 했고 아쉽기도 했다. 반성을 많이 했다. 어떤 작품을 해야, 내가 그래도 나를 믿어준 사람들에게 실망을 안 시킬까 하다가 몇 가지 코드 찾은 게 가급적 실화가 낫다는 것이었다. 또 경상도 쪽 이야기면 유리하다는 것이었다. 그런 이야기들로 준비를 하고 있었다. '희생부활자'는 너무 어두운 이야기라 라이트한 그런 이야기를 준비했는데 캐스팅도 안 되고 투자도 안 되더라. 두 편이나 못 만들고 고생하고 있었는데 태원엔터테인먼트에서 이 작품 한 번 봐달라고 했다. 작가님이 쓰신 글 보니까 (연출이) 자신 없겠더라. 이런 이야기는 못 만들 것 같다 했다. 시간도 촉박고 캐스팅도 갈길이 멀더라. 이 배는 내가 안 타는 게 좋을 것 같다 했다. 그러다 제작사 대표가 장사리 전투 자료를 보여주는데 내가 몰랐던 이야기더라. 이 나이되도록 이런 걸 몰랐다니 미안했다. 이 작품엔 그렇게 욕심이 안 생기는데 내가 새로 다 고치는 것에 동의해주면 생각해보겠다 . 내가 생각했던 트리트먼트 버전 드렸더니 좋다고 하더라. 그래서 그러면 이 영화 내가 해볼게 해서 하게 됐다.
-곽경택 감독이 연출하면서 변화된 지점은 어떤 부분들이었나.
▶가장 큰 변화는 기존에 있던 인민군 대장을 없앴다. 나는 그런 인물은 필요 없다 했다. '장사리'는 학도병들의 희생 관한 이야기지 대장을 죽이는 게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다 싶었다. 인민군 대장을 없애고 나니 이제는 또 어떻게 접근해야 하나 했다. 너무 학도병들 위주로 이야기가 나오더라. 그러다 이 학도병들의 리더가 누구냐 했다. 찾아보니까 이명흠이라는 분이 나오더라. 실제로 이분은 육사 출신으로 정보 쪽 일을 하시다 유격대의 필요성을 실감하고 유격대를 만들어달라고 하신 분이다. 유격대를 안 만들어주니까 학생들 모아 훈련을 시켜두자 해서 훈련을 시켰는데 갑자기 상륙작전 명령이 떨어지게 된다. 그런 과정을 거친 인물이 있다는 걸 알게 됐고 김명민씨에게도 학도병 이야기지 이명준 대위의 이야기는 아니라면서 학도병들의 희생으로 인해 죄의식 속에 살고 평생을 학도병들 군번을 찾아준 데 조명을 맞춰서 참여해주면 좋겠다 했다. 김명민씨도 거기에 동의해줬고 고마웠다.
-오프닝부터 처참한 전투 상황을 보여준다. 반공이 아닌 반전영화로서의 특별한 영화적 문법은 무엇이었나 .
▶물론 영상으로 화면을 어떻게 구상하느냐 배우들의 호흡을 어떻게 가져가느냐 영화적인 리듬을 어떻게 가져가느냐 관객들에게 첫 장면 어떻게 다가느냐 등 여러가지 고민이 있다. 전쟁영화다 보니까 처음에 고민했던 것은 학도병들의 혼돈을 어떻게 전달할지였다. 학도병들의 상황을 관객들도 똑같이 느끼게 하고 싶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장사상륙작전에 투입되는지 모르고 왔다. 모르고 뽑혔고, 어떤 이들은 의협심에 하겠다고 했다. 여기에 오면 밥도 주고 총도 쏘는 걸 가르쳐 준다고 해서 했는데, 배 타라고 해서 타지만 이들은 어디 가는지도 몰랐다고 하더라. 정신 없이 배에서 내렸는데 총과 폭탄은 비오듯 쏟아진다. 학도병들은 내가 살아야겠다는 생각 먼저 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을 영화 초반부터 보여주고 싶었다. 초반부터 각 학도병들의 전사를 앞에 깔기엔 여러 명이라 부담도 됐다. 관객하고 같이 배를 타고 가서 거기에 상륙해서 뭔가 맞닥뜨리는 당황스러움을 제일 처음 가져가면 좋을 것 같았다.
-배우들은 감독이 엄격하게 연출했다고 했다. 전쟁영화에 대한 부담감이 작용했을까.
▶이번엔 배우들과 스태프들에 굉장히 엄하게 대했다. 이렇게 엄하게 대해본 적이 없었다. 일단 예산이나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누군가가 악역 담당을 안 하면 사고가 날 것 같더라. 스태프들을 긴장하게 만들어야 했다. 전쟁영화는 촬영이 위험하다. 총도 있고 폭탄도 있다. 공포탄인 줄 알고 장전했다가 실탄이었다는 경우도 있다고 하더라. 그런 위험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엄하게 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현장에서 칭찬을 안 했다. 우리가 찍고 있는 영화는 한국전쟁에 희생된 학도병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우리는 촬영을 하지만 그 분들은 전쟁을 하셨다. 그래서 불평하지 말라 했다. 배우들도 스태프들도 모두 육체적으로 힘든 걸 참고 해줬다.
-김태훈 감독과 공동연출로 작업해본 소감은.
▶좋은 점은 영화가 3개월, 프로덕션 기간 안에 딱 끝났다. 서로 의견에 차이가 있을 때 해결 방법은 대화다. 이야기를 정말 많이 나눴고 다음에는 이런 걸 보완하자는 등의 이야기를 나눴다. 예산 문제도 있기 때문에 서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해나갔다. 또 서로 약속한 분량을 못 찍을 경우엔 서로 미리 설명해주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