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를 하기 위해 만난 서정희(58)는 시종일관 얼굴에 웃음이 가득 했다. 대화가 시작되고 인사보다 먼저 건넨 말은 '이렇게 밝은 사람일지 몰랐다'였다. 그도 그럴 것이 몇년간 미디어 속 서정희의 곁에는 이혼의 그림자가 따라다녔다. 슬픔이나 아픔이 서정희를 대변하는 이미지였다. 지금의 서정희는 한결 편안한 얼굴, 대화의 8할은 유쾌한 농담과 웃음이 가득했다.
어두웠던 지난 날을 털어놓는 것 역시 조심스럽지만, 숨김이 없었다. 동굴 속에 살았던 모습도 자신이었고, 그 시절을 지났기에 이제야 진짜 빛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서정희가 지난달 낸 에세이 '혼자 사니 좋다'는 새 인생을 만난 서정희의 '지금'을 가장 잘 보여준다. '이혼권장도서가 아니다'라고 강조하는 구절처럼, 이 책은 싱글라이프의 장점에 대해 나열한 것만은 아니다. 혼자 살면서 비로소 과거엔 몰랐던 나의 예쁨이나 빈틈도 오롯이 마주하고 있는 서정희가 쓴 나를 사랑하는 방법에 대한 책이다. 집안의 거울을 다 없앨 정도로 스스로를 보기 싫어했던 그가 도전한 기적같은 새 인생에 대한 소소한 고백이다.
-책을 읽기 전후 서정희씨에 대한 이미지가 많이 바뀌었다. 시크하고 다가가기 어려운 이미지였는데, 책을 통해 본 서정희씨는 너무 유쾌하고 밝더라.
▶나는 정말 유쾌하고 웃긴 사람이다. 지인들도 나를 보고 있으면 몇시간 내내 웃는다. 4차원이라고도 하고. 표현을 그냥 솔직하게 하고 싶었다. 꾸미는 말이 아니라 '툭툭' 나오는 대로 리얼하게 쓰는 거다. 내 일상이 담긴 글인 만큼 더욱 솔직하려고 했다. 일상 속에서 생각나는 것들 그대로 메모했다가 바로 적었다. 우리 딸이 30대인데 딸이 읽어도 편안하게 읽고 나같은 엄마들이 봐도 재미있길 바랐다. 요즘엔 책을 재미나게 읽은 독자들이 '나도 언니 나이에 언니처럼 늙고 싶어요'라고 한다. 내 인생에서 다시 서정희 전성시대가 오는 것 같다.(웃음)
▶나와 가까운 사람들도 걱정을 했다. 하지만 나는 나를 그대로 담아야 진정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나를 포장해서 쓰면 사람들이 이걸 뭐하러 보겠나. 나는 나를 너무 잘 안다. 싫증도 잘 내고 버티는 힘도 별로 없다. 그냥 그런 사람이다. 가정을 지킬 때는 상상도 하지 못한 힘으로 버텼지만, 그 외의 것은 진득하게 해본 경험이 없다.
-서정희씨에 대한 최근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털어내는 기점으로 보였다. 지난 책이 어두운 과거의 마지막이었다면, 이 책은 새로운 시작같다.
▶과거란 그렇다. 내가 어떻게 지우려고 해도 나를 따라다니는 꼬리표다. 내가 잊어도 사람들은 잊지 않으니까. 어느날 생각이 들었다. 과거를 지우는 게 아니라 지금으로 덮는 거다. 어떤 사람들은 왜 내 이야기를 책으로 쓰냐고도 한다. 사람들이 아무리 자기들 마음대로 이야기해도, 과거의 나는 가정을 지키고 아이들을 지키고 믿음을 지켜왔다. 살림하고 육아하면서 느낀 기쁨도 컸다. 그런 흔적, 발자취가 억울할 건 없다. 그때의 나를 받아들이니 지금에 너무 만족하고 감사하다. 그래서 나는 더 진정한 의미의 자유를 만난 것 같다. 그걸(과거를) 통과해야 자유이지 않겠나. 혼자 자유를 만끽하면서 나는 진짜 나를 보게 된다. 싫증도 잘 내고 뭐 하나 배우는 것도 진득하니 못 하는 내 모습을. 어떻게 이렇게 허당일 수가.(웃음)
▶누구나 자신의 아이덴티티(정체성)가 있는데, 결혼을 하면 그게 없어진다. 나만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엄마가 되니 엄마 자리로 밀려나서 아이와 남편 위주로 살았다. 그럼 나를 잘 모르게 된다. 내가 뭘 먹고 싶은지 모르고 아이들 먹고 싶은 것을 먹는다. 내가 신앙생활을 오래 했는데, 하루 종일 기도를 한 적도 많다. 어느날 나를 위해 기도를 하려니까 기도가 안 나오는 거다. 그동안 나라를 위해, 가족을 위해 하루 종일 기도를 하면서 나를 위해서는 기도할 게 없다니. 놀라웠다. 지금은 내가 뭘 좋아했는지,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뭘 입고 싶은지 알아가고 있다.
-외로움은 없나.
▶과거의 나를 사람들이 보면 잘 꾸미고 산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다 차단된 삶 속의 나였다. 방탄차라고 표현하면 맞을까. 그런 차를 타면 밖의 소음이 들리지 않는다. 외부의 자극이 없고 완전히 진공 상태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내 삶도 그랬다. 내가 꼭 그런 차 안에 있는 것 같더라. 지금은 혼자 사는 것이라고 하지만, 혼자 사는 것은 모두와 더불어 사는 삶이더라. 오히려 더 많은 이들과 함께 하게 됐고 외로움이 줄었다. 이런 삶이 즐겁다. 혼자 사는 건 나를 잃는 게 아니다.
▶2017년에 낸 에세이는 벼랑 끝에 서서 쓴 책이다. 누군가 툭 밀면 죽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안간힘을 쓰고 심지에 붙은 불을 꺼트리지 않으려고 덜덜 떨면서 쓴, 나를 다독이는 글이었다. 결심은 했지만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 상태, 잘 하고 싶은데 세상에 나올 수 없는 상태에서 나 스스로를 정리하려고 애쓰는 마음이 담긴 책이다. 지금도 그 책을 읽으면 눈물이 난다. 하지만 이번 책을 쓸 때는 정말 유쾌하고 기쁜 마음으로 썼다. 내가 정말 자유로운 상태가 됐구나. 지난 6년동안 정말 많이 성장했구나. 이제 정말 혼자 살아도 되는구나 '합격'한 글이고, 지난 시간에 대한 '졸업'과 같은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