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현재 권력과 맞서서 전혀 거리낌 없이 영화를 상영하는 곳이 딱 한 군데 있습니다. 바로 우리 전주독립영화관입니다.”
김승수 전주시장이 올해 신년 기자회견 때 아시아 문화심장터 프로젝트를 발표한 뒤 아시아 문화심장터 TF팀을 대상으로 한 특강에서 ‘독립영화의전당’ 건립 구상을 밝히며 한 말이다.
‘권력에 거리낌 없이 맞선다’고 한 김승수 시장의 소신은 박근혜 정부 때 작성된 블랙리스트 명단에 전주시가 들어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다.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는 지난 20일 서울 광화문 KT빌딩에서 활동 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문화예술인이나 단체 이외에 지자체도 블랙리스트에 포함됐던 것으로 새롭게 밝혀져 눈길을 끌었다.
진상조사위는 “박근혜 정부 시기 문체부가 작성한 ‘예술정책과 관리 리스트’ 2016년 공연예술창작산실(음악) 지원사업과 관련해 안산시, 전주시, 충북도, 성남시가 목록에 들었고, 이중 전주시, 성남시, 충북도 3곳이 실제 지원 배제됐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서 김 시장은 이재명 성남시장, 이시종 충북도지사와 함께 박근혜 정부 입맛에 전혀 맞지 않는 더불어민주당 출신 단체장이었기에 블랙리스트에 올랐을 것이라고 전주시 관계자는 말했다.
‘권력에 거리낌 없이 맞선다’는 김 시장의 소신은 아시아 문화심장터 TF팀 특강에서 밝힌 그의 영화관에서 잘 드러난다.
“작년 전주국제영화제 때 제가 ‘자유로운 표현이 영화의 본질’이라고 했습니다. 부산에서 ‘다이빙벨’ 상영을 못했는데, ‘다이빙벨’보다 정부를 비판하는 강도가 훨씬 센 ‘자백’이라는 영화를 우리가 상영했습니다. 최승호 PD가 거꾸로 더 걱정하더군요. ‘진짜 상영해도 전주시 괜찮겠느냐’고. ‘우리가 걱정하지 왜 당신이 걱정하느냐’고 했습니다. ‘자백’이 전주에서 상도 받고 그러니까 전주국제영화제에 대해 세계 언론들이 놀랐습니다. 전주에 독립영화관이 있습니다. ‘귀향’ ‘다이빙벨’ ‘나쁜나라’ 다 상영했습니다. ‘물어보지도 말고 고민하지 말고 무조건 다 상영하라’고 했습니다.”
독립영화 ‘자백’ 상영에 이어 또 다른 독립영화인 ‘노무현입니다’ 제작을 돕는 등 김 시장의 거리낌 없는 행보는 계속 이어졌다.
‘자백’ 상영으로 화제를 모은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 때 만난 이창재 감독이 돈이 없어 ‘노무현입니다’를 제작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1억원의 제작비를 댄 것이다.
영화 '노무현입니다' 포스터/뉴스1 DB
김 시장은 세월호와 촛불집회 때도 정부 비판 목소리를 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정부의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세월호 현수막’을 철거하라는 정부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2014년 11월 박 전 대통령이 전주를 방문할 때까지 현수막을 지켰고, 박 전 대통령 퇴진 촛불집회에 전국 기초단체장 중 유일하게 단 한 차례도 빠지지 않고 참여했다.
‘자유로운 표현이 영화의 본질’이라고 한 김 시장의 영화관은 그의 의도와 무관하게 적지 않은 소득을 건졌다.
‘노무현입니다’는 국내 다큐영화 사상 최단기간 유료관객 100만명을 돌파하는 기록을 남겼고, 전주국제영화제는 미국 영화 전문매체인 ‘무비메이커’(Movie Maker)가 발표한 ‘세계에서 가장 멋진 25개 영화제’(The 25 Coolest Film Festival in the World, 2017)에 아시아권에서 유일하게 선정됐다.
전주에서 ‘자백’을 선보인 최승호 PD는 최근 MBC 사장으로 취임했다.
전주시 관계자는 “블랙리스트 명단에 오른 것은 김 시장이 민주당 소속인 데다 정권에 불리한 독립영화 지원, 세월호 촛불집회 참가 등 정권의 눈치를 보지 않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면서 “전 정부 때 특정 현안이 잘 풀리지 않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런 배경 때문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