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G에서 걸려온 전화: 지난 6월, 블랙핑크 스타일리스트 팀에서 전화가 왔다. "한복을 구매하고 싶어서요." 단하 대표는 잘못 걸려온 전화인 줄 알았다고 했다. 사연은 이랬다. 지난해 10월 단하주단이 밴쿠버 패션위크에 출품했던 작품을 블랙핑크 측에서 보고 신곡의상으로 점찍은 것.
멤버들은 한복을 근사하게 소화했다. 단하 대표에 따르면 제니가 입은 의상은 우리 선비들이 입었던 도포에서 따왔다. 로제가 입은 의상은 조선시대 여성 속옷인 '가슴가리개'를 밖으로 드러내 크롭톱(배꼽티)처럼 만들었고, 겉옷은 조선시대 무관이 입었던 철릭에서 따왔다.
국내외 팬들은 "아름답다"라며 열광했다. 반면 "이게 무슨 한복이냐" "노출 심한 무대복"이라는 엇갈린 평가도 나왔다. 그는 말했다. "우리는 한복을 특별한 날에 입는, 단아한 옷으로 생각해요.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예부터 일상생활에서 입은 옷이에요. 전통을 최대한 살리되, 현대엔 한복을 이렇게도 입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한복과의 인연 : 고등학교(부산 가야고) 교복이 한복이었다. 3년 동안 입다 보니 정이 들었다. 대학졸업 후 첫 해외여행 때 한복을 챙겼다. 특별한 '인생샷'을 남기고 싶어서였다. 외국인들은 한복을 보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스물셋, 첫 직장인 카지노에서 딜러로 일하며 틈틈이 온라인 한복 대여사업도 했다.
한복을 제대로 알고 싶어졌다. 2016년 2월 사표를 내고 조선궁중복식연구원에 등록했다. 이 연구원의 위치는 서울 인사동. 수업은 1주일에 한 번,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진행됐다. 조경숙 명인에게 한복의 역사와 제작방법을 배웠다. 서울과 부산을 당일치기로 오가는 2년간의 수업에 지각이나 결석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
매시간이 도전이었다. "제가 성격이 급하고 꼼꼼하질 못해요." 바느질도 헤매고, 다림질도 빠뜨리기 일쑤였다. 6~7시간 걸려 저고리 하나 만들면 온몸이 뻐근했다. '한복 디자이너가 적성에 맞는 걸까' 의심하면서도 스승이 내주는 숙제를 꾸역꾸역해갔다. 그 시간은 서서히 '내공'으로 쌓였다.
20대 초반 해외여행 갈 때 한복은 ‘필수템’이었다. 한복을 입으면 특별해지는 느낌이 좋았다고 했다. 사진은 2015년 이탈리아 여행 중.(사진제공=단하)
◇단하주단의 시작 : 열정은 기어코 일을 낸다. "우리가 입고 싶은 한복을 만들자." 2년 전 여름, 고교 동창과 500만원을 모아 회사를 차렸다. '한복 스타트업' 단하주단의 시작이었다.
지난 2년 동안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특히 환경적으로 되도록 무해한 한복을 만들고 싶어, 폐현수막·페트병·웨딩드레스를 활용해 원단을 만들었다. 지금은 친환경 소재 원단 사용률이 40% 정도이지만 앞으로 늘려나가고 싶다고 했다.
단하 대표는 요즘 민화 등 한국의 전통예술을 한복에 접목하는 작업에 '꽂혀' 있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잠자리에 들었다가도 벌떡 일어나게 된다고. 이제 3년차 스타트업. 섣부른 기대는 조심스럽지만, 그럼에도, 이 젊은 대표의 한복을 향한 열정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아 보였다. 서른 살 청춘의 여름은 이루고 싶은 꿈으로 뜨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