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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 수필-정동순] 새 달력을 걸며



정동순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 지부 회원)

 
새 달력을 걸며
 
나는 달력 욕심이 많다
어느 가게에서 달력을 사은품으로 준다는 광고를 보고 특별히 살 것도 없는데 한달음에 갔다. 이것저것 물건값을 계산하고 나오는데 무슨 이유인지 달력이 없다고 했다

공짜 달력을 기대했던 마음만 들키고 민망했다. 한국에 있을 때 은행이나 각 단체에서 주던 풍성한 달력사은품이 아쉽다. 그때는 달력이 필요한 것보다 늘 많아 마음에 드는 것만 골라 걸곤 했다.

달력을 얻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려고 반값 서점으로 향했다. 보통은 달력을 15불 정도에 파는데, 그 서점에서는 말 그대로 반값에 판다. 유명 화가들의 그림ㆍ강아지ㆍ꽃 등 갖가지 달력이 전시되어 있다

마음에 드는 그림과 글씨 크기도 고를 수 있다. 아름다운 자연풍광이란 주제에 짙고 큰 숫자가 쓰인 달력이 마음에 들었다. 벌새와 난초 사진 달력도 예뻐서 누구에게 줄 생각으로 몇 개 샀다.

달력에도 표정이 있다. 안락의자 옆에 있는 달력은 죽기 전에 보아야 한다는 세상의 아름다운 장소를 보여 준다. 그 아름다운 명소들에 가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느긋한 마음으로 안락의자에 앉아 사진 속으로 여행을 상상하는 것은 즐겁다

아이들의 방에는 우주의 신비, 귀여운 강아지 사진들로 가득 찬 달력이 있다. 아이들이 한 장씩 넘길 때마다 기대를 하고 즐거워한다. 식탁 옆에 걸린 달력에는 남편의 자리, 아내의 자리, 아이들의 자리가 있다. 각자 자리에 특별히 기억해야 할 일정들이 적힌다. 365일 칸칸이 채워질 글씨들은 지나간 시간과 다가올 시간을 말해줄 것이다.

어린 시절, 내방이 없을 때 나의 달력도 없었다. 온 가족이 보는 한 장짜리 달력이 있을 뿐이었다. 그 달력은 벽에 견고하게 붙어 있었다. 새 달력을 받아오면 어머니는 밀가루 풀을 쑤어 여러 번 가늠한 후, 반듯하게 앉은키 높이에 달력을 붙였다

파란 테두리 안에 열두 달이 있고, 가운데는 공화당 국회의원이라는 분의 사진과 이름이 큼지막이 쓰여 있었다. 일종의 국회의원의 하사품이었던 셈이다. 우리는 한 장짜리 달력을 보고 자라면서 나라의 지도자도 한 사람만 있는 줄 알았다.

좀더 자랐을 때는 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등장하는 두 달이 한 장에 있는 달력을 벽에 걸었다. 부모님이 좋아하신 달력은 그림이 없고 큼직한 글자로 음력 날짜뿐만 아니라 손이 없는 날, 60갑자로 진행되는 무슨 무슨 날이라고 쓰인 달력이었다

무슨 종묘사, 농약사 달력도 해마다 벽에 걸렸다. 매일매일 한 장씩 뜯게 되어있는 얇은 종이 달력도 있었다. 그 달력은 하루하루 화장실에서 뜯겨져 갔다.

사실 내가 달력 사은품을 얻으러 그 가게에 갔던 것은 단순히 공짜 달력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달력에는 매월 한두 번이라도 음력 날짜가 적혀 있기 때문이다. 추석이나 설날 등도 표기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고국에 사는 가족들은 부모님의 기일이나 가족들의 생일을 음력으로 지내고 있다. 음력이 한두 번이라도 표기가 되면 가족행사를 챙기기 위한 날짜 계산이 쉬워지기 때문이었다.

요즘에는 직접 찍은 사진으로 달력을 꾸밀 수 있다. 몇 해 전에는 직접 찍은 아이들의 사진, 정원의 꽃 사진으로 달력을 만들었다. 집안의 행사도 넣어 인쇄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였다

이렇게 직접 디자인한 달력을 코스트코에서 인쇄하여 몇몇 친지들께 크리스마스 선물로 나누어 드렸다. 부모님께서는 다른 어떤 선물보다 좋아하셨다. 그리고 해가 지나도 그 달력을 계속 걸어 두셨다.

식탁 옆에 걸어두고 사용하던 가족 달력은 해가 지나도 버리지 못한다. 아이를 야구경기에 데려가고, 치과진료를 받고, 차를 정비하고, 언제 누구를 만난 것 등 일상의 소소한 일이 기록되어 있다. 이 달력에는 가족의 역사가 있다.

올해는 종이에 인쇄된 달력을 샀지만, 다음에는 이런 스마트 달력을 사고 싶다. 스마트 달력은 한번 사면 해마다 살 필요가 없다. 스마트폰처럼 좌우로 넘기며 보고, 과거와 미래의 날짜도 볼 수 있다. 펜으로 글씨도 써넣을 수 있다.이 달력은 또한 소리나는 달력이다

이른 아침이면 계절의 소리를 들려준다. 이월에는 얼음장 밑을 흐르는 물소리, 삼월에는 경쾌한 새소리, 사월은 봄비 소리, 오월은 아이들의 웃음소리 등 세팅에 따라 아름다운 소리와 음악을 들려준다. 또한, 글씨로 기록된 그 날의 일정을 좋아하는 사람의 목소리로 알려준다

비즈니스와 만남에 필요한 유머, 하루를 시작하는 명상의 말도 달력에 설치된 센서의 작동과 함께 들려준다. 바깥 기온과 날씨며 아들이 탈 버스가 어디에 오고 있는지도 모니터해 준다.

모든 인류가 표준 달력을 쓴다. 일상적인 월화수목금토일 대신에 새로운 요일 이름을 쓴다. 사랑요일, 용기요일, 희망요일, 인내요일, 용서요일, 자비요일, 평화요일 등도 좋겠다

이를 바탕으로 모든 사람이 전쟁과 테러가 없는 세상, 사고가 없는 세상, 굶주림이 없는 세상을 위해 매일매일 하나로 기도하면 좋겠다. 그리고 달력에는 인류의 굶주림이 없어진 날이 기록된다. 전쟁과 테러가 없어진 해도 기록된다. , 달력 한 장에너무 거창한 꿈을 거는 것일까? 인류가 상상한 것은 대부분 이루어졌으니 꿈을 꾸는 것은 책망 들을 일이 아니라고 위로한다.

올해의 달력엔 무엇이 적힐까? 새 달력에는 세상의 평화가 진전된 기록들로 하루하루가 채워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가족 모두의 건강과 마음의 평화, 꿈과 열정으로 칸칸이 채워지기를 소망한다

많은 소소한 일정들이 빼곡히 적히고 그 달력의 칸들이 다 채워지면 또 한 해가 갈 것이다. 달력이란 시간이 전력으로 달려간다는 말이 줄어서 된 것 같다. 소중한 시간을 알차게 쓰기로 다짐하며 새 달력을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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