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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의 시선] 한국의 지배 엘리트층이 못보는 것



<이유식 뉴스1 주필>

그들의 눈높이를 구조조정하라



최근 고위직 공무원에서 물러난 후배를 위로 겸 격려하는 자리였다. 청와대 인사와 관료들의 경솔하고 둔감한 언행을 얘기하던 중 그가 말했다. “솔직히 선배가 대학 졸업하던 당시 잘나가던 SKY 출신은 고시를 통해 공직사회로 가고 다음은 대기업이나 학교로…,상대적으로 언론계로 간 분들은 좀 처졌던 그룹 아닙니까.” 정치권에서 박근혜 정부 탄생을 돕다가 ‘어공(어쩌다 공무원’)이 된 그의 뜬금없는 말은 “대안 없이 비판만 하는” 언론에 대한 불만을 담은 것이지만, 그보다는 '함께 일해본 관료들이 생각보다 훨씬 유능하고 책임감도 크더라, 그래서 언론이 조금만 도와주면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취지로 들렸다.    

그는 80년대 초반에 대학에 갔고 필자는 70년대 중반 학번이다. 이런 연배차이 탓에, 그리고 살아온 시대환경이 다른 까닭에 ‘민간으로 간 재원보다 정부로 간 재원이 우수하다’는 주장을 일반론처럼 늘어놓은 그의 말에 동의할 수 없다. 취업문이 좁았던 60~70년대 개발시대에 유능한 인재들이 민간보다 공직사회에 대거 진출해 한강의 기적을 만드는 주역이 된 것은 공인된 사실이지만, 그같은 관료의 자부심이 80년대 이후 사회진출한 세대까지 이어지는지는 의문이다. 더구나 지금은 관료들의 실력이나 의식이 민간에 비해 한참 뒤진다는 것이 상식 아닌가.     

후배와의 얘기가 여러 상념을 낳던 중에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의 ‘신분제 공고화’‘민중은 개돼지’발언 뉴스를 접했다. 이해하기 어려웠다. 20대 초반에 행정고시에 합격, 선망부처인 교육부에서 승승장구하던 사람에게서 어떻게 이런 개돼지 같은 말이 나왔단 말인가. 보도경위를 봐도 납득이 되지 않았다. 듣는 쪽이 되레 당황해 몇 번이나 발언 맥락과 진의를 확인했는데도 확실하게 말을 거둬들이지 않고 빙빙 돌렸다니, 분위기를 보니 만취할 상황도 아닌데… 1%대 99%를 기정사실화하고 자신은 1%가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구의역 19세 청년 죽음에 대해 내 자식 일처럼 공감하는 것은 위선이라는 얘기는 또 뭐지.     

SKY 출신으로 40대 후반에 교육부 국장에 오른 나씨는 분명 평균 이상의 공무원이다. 청와대 파견 경력에다 대학지원과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으니 조직 내에서 평판과 능력도 선두였을 게다. 이 과정에서 사회를 진단하는 나씨의 인식과 소신도 직간접적으로 수없이 표출됐을 게다. 그의 발언을 농담처럼 받아들이거나 그에 대한 처분을 개인적 상처로만 넘길 수 없는 이유다. 더구나 왕조적 신분제를 옹호하는 그가 논란 많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작업의 주무국장이라니.          

한때 ‘영혼 없는 공무원’이 회자된 적 있다. 이명박 정권의 취임을 준비하던 인수위가 진보정권 10년의 흔적을 지우겠다고 서슬 퍼렇게 덤비던 2008년 1월의 일이다. 모 부처 관계자가 인수위에 업무보고를 하던 중 워낙 매섭게 정책의 잘잘못을 추궁당하다 보니 푸념처럼 토로했다는 말이다. “공무원이 무슨 영혼이 있습니까.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는 거죠.” 이랬을 거다. 여기서 영감을 얻은 듯 이명박 정부에서 부총리를 지낸 사람도 국회에서 정책혼란을 지적받다가 답변이 궁하자 “그래서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는 말이 있지 않느냐”고 말해 실소를 자아낸 적도 있다.     

근데 나씨 파문을 접하고 나니 갑자기 영혼 있는 공무원이 더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영혼이든 위선이든, 자신의 생각과 권력의 성격이 맞아떨어지면 편견이 신념이 되고 오만은 소신이 되니 말이다. 입시 취업 결혼 보육 노후 등 생애 전 주기에 걸쳐 팍팍한 삶을 이어가는 민중은 고깃덩어리 하나 던져주면 잠잠해지는 가축이고, 자신들은 그 가축을 지배하는 1% 주인에 속해야 한다는 확신과 자부심은 그 산물이다. 

나씨는 억울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들만의 세상’에서 별 거부감 없이 늘 오가던 얘기를 한 것뿐인데 자신만 몰매를 맞고 조직에서 추방될 지경에 처했으니 말이다. 출발선이 달라도 같이 놀자고, 같이 놀아야 한다는 것은 현실을 모르는 얘기라고 동료들도 비웃지 않았던가. 실제로 주변에서 구의역 19세 청년의 죽음엔 공감하지 않으면서 되레 나씨가 과잉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동정하는 제2, 제3의 나씨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공직사회에 그치지 않고 우리 사회 모든 기득권층으로 범위를 확대하면 빈도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나라의 핵심 안보 이해가 걸린 사드배치 결정을 발표할 시점에 외교장관이 백화점에서 양복을 고르고, 국책은행 총재을 지낸 국제기구의 부총재라는 사람이 4조원 이상의 출연금을 내고 확보한 자리를 멋대로 날려버리는 일이 어떻게 벌어지겠는가. 국책연구원 간부가 공식석상에서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고, 장학재단 이사장이 대학생은 빚이 있어야 파이팅한다고 공공연히 말할 수 있는 것도 국민에 대한 평소 인식을 잘 드러낸다. 책상머리에 않아 승진과 처우에만 골몰한 탓인지, 공복(公㒒)이라는 개념은 어디에도 없다. 공직기강 해이가 아니라 아예 공직 개념이 없는 행태다.           

머리와 눈이 대다수 국민들의 신산한 삶을 애써 외면하고 자신들이 속하고 싶은 1%를 찾는 것이 나씨와 같은 관료뿐일까. 나씨를 비난하는 수많은 말과 글이 잠시 멈춰 생각해봐야 할 지점은 여기다. 우리 사회의 지배엘리트층이라고 표현되는 정·재·학·언론계 등 모든 직종과 직역이 기득권층에 요구되는 공적 책임과 의무보다 계층적 이해를 우선시하는 사적 이익을 좇아왔음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바닥 민심이 제대로 보일 리도, 들릴 리도 없다. 브렉시트나 트럼프 현상, 샌더스 돌풍 등을 다루는 서구 언론들도 그들 눈높이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최근 한 언론인이 전하는 백인트럼프 지지자의 심리는 흥미롭다 "나는 묻고 또 물었다. (자신을 전형적인 미국인이라고 생각하는) 이 사람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 것일까? 표면적으로 그를 화나게 만드는 질서는 ‘자기들끼리만 잘난’ 워싱턴의 주류 정치인들과 주류 언론이었다. 잘난 척하는 실리콘밸리의 기업가들도 그의 화를 돋우었다. 그 내용은 자유와 평화의 가치, 세계화의 미덕, 반인종주의와 페미니즘 같은 쓸모없는 것들(bullshit)로 채워져 있다는 게 그의 시각이다."(☞이원재' 도널드 트럼프 지지자와의 대화')

우리의 지배엘리트층 역시 민심의 격랑이 들끓는 줄 모른 채 그들끼리 세상에서 고담준론과 소모적 논쟁만 늘어놓다가는 "폭발 직전의 초갈등 사회'에서 언제 뒤통수를 얻어맞을지 모른다. 살아남으려면 세상을 보는 눈높이부터 서둘러 구조조정해야 한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N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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