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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창의 사족]안철수, 크게 죽어야 크게 산다



<이기창 뉴스1 편집위원>


선가(禪家)에 ‘대사저인(大死底人)’이라는 화두가 있다. 우리말로 ‘크게 한번 죽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쉽게 말해 ‘크게 죽어야 크게 산다’는 의미로 수행을 향한 길잡이다. 


크게 죽는다는 뜻은 육체적 소멸이 아니다. 자기를 잊고 버리는 무아(無我)의 경지를 가리킨다. 모든 욕심을 내려놓고 마음을 비운다는, 일생일대의 각오다. 크게 산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자신의 겉모습이 아니라 본래 깨끗한 마음의 바탕을 보는 능력의 회복이다. 그야말로 자신의 삶과 사회의 대변화를 이끄는 주체로 거듭 나는 것이다.           

허나 말이야 쉽지, 우리네 인간들이 쉽사리 그런 경지에 갈 수 있겠는가. 오히려 정반대가 아니던가. 돈과 명예, 그리고 권력을 가진 사람일수록 ‘더 많이’를 갈구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거미가 스스로 쳐놓은 거미줄에서 벗어나지 못하듯 돈, 명예, 권력의 속박에 한번 묶이면 거기서 쉽게 탈출 못하는 게 인간의 속성이다.  

지난 6월29일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가 4.13 총선 홍보비 리베이트의혹 파동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하고 평의원으로 물러났다. 그 기자회견을 보면서 ‘대사저인’의 화두가 떠올랐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안철수 전 대표가 이번에야말로 크게 죽을 것인가? 정말 백척간두(百尺竿頭)에서 두 손을 놓아버리는 심정으로 결단을 내렸을까?

2017년 12월 제19대 대통령선거를 앞둔 현시점에서 안철수 전 대표가 야권의 유력한 대통령후보 가운데 한명이라는 점에서, 아울러 적전분열이라는 여론의 융단폭격을 홀로 감내하며  총선을 불과 2달여 앞둔 2월2일 ‘새정치’ 실현을 위한 토대로 더불어민주당을 뛰쳐나와 국민의당을 창당, 의석 38석을 확보한 제 3당으로 이끌었다는 점에서 그가 갖는 정치적 무게감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니 그의 속내가 궁금한 것은 당연하다.   

안 전 대표는 사퇴기자회견에서 “이번 일에 관한 정치적 책임은 전적으로 제가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책임을 지고 대표직을 내려놓겠다”고 밝혔다. 최고위원회의 참석자 대다수가 지도력 공백을 우려해 사퇴를 만류했지만 결심을 꺾지 않았다는 후문도 흘러나왔다. 

책임지는 자세는 높이 평가할만하다. 하지만 정치권에서 즐겨 쓰는 말인 ‘진정성’이 그리 와 닿지 않는다. 기자만의 생각일까? 국민의당을 창당 넉 달여 만에 최대 위기로 몰아넣은 원인을 제공한 3인-박선숙·김수민의원, 왕주현 사무부총장-에 대해 국민이 납득할만한 조치가 먼저 이뤄진 뒤 물러나야 마땅했다. ‘선조치 후사퇴’가 누가 봐도 공당의 정상적 절차요 상식적 결정이 아닐까. 그랬어야 안 전 대표의 사퇴가 공감대를 넓혀가고 설득력을 얻었을 것이다. 

더욱이 안 전 대표의 사퇴 뒤에도 ‘무죄추정의 원칙’을 내세워 관련자 3인에 대한 조치에 주저하는 국민의당의 모습은 지지자뿐만 아니라 많은 국민을 분노하게 만든다(국민의당은 왕 부총장이 구속되자 그제서야 미리 제출한 사표를 수리했다). 회기 중 불체포권을 비롯한 특권만 무려 200여 가지에 달한다는 국회의원들이 비리에 연루돼 수사를 받게 되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무기가 ‘무죄추정의 원칙’이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인권보호를 위한 중요한 헌법적 가치다. 그러나 법적 책임과 정치적 책임, 그리고 도덕적 책임은 엄연히 영역이 다르다. 국민의 선택이 숙명인 정치인에게 이들 영역은 서로 충돌하게 마련이다. 정치인은 그래서 무죄추정의 원칙(법적 책임)과는 별개로 정치적 책임과 도덕적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국민의 정서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안 전 대표가 무죄추정의 원칙을 몰라서 대표직에서 물러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당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잘못에 대해 정치적이고 도덕적 책임을 지겠다는 나름의 결단이었다. 그런데도 국민의당이 무죄추정의 원칙 뒤에 숨어 공당으로서 책임을 방기한다면 결과적으로 안 전 대표의 결단을 조롱거리로 만들뿐이다. 여전히 국민의당을 보는 시선이 따가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안 전 대표는 사퇴 전 초심(初心)으로 돌아갔어야 마땅했다. 왜 국민의당을 창당했는지, 그리고 왜 ‘새정치’를 자신의 상징으로 내세웠는지를 반추했어야 했다는 말이다. 패권정치·패거리정치·갑질정치를 청산하고 그 대신 선공후사(先公後私)와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는 정치가 ‘새정치’의 본질일 것이다. 지금까지 이번 사태를 다루어온 국민의당의 모습에서 ‘새정치’는 찾아보기 어렵다. ‘헌정치’ 그 모습 그대로다. 안 전 대표 역시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대표직 사퇴가 그냥 사퇴 이상의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결과를 가져올지, 아니면 크게 죽어 크게 살아나는 계기가 될지는 안철수 전 대표 스스로에게 달려 있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N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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