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최초로 세계 3대문학상 중 하나인 맨부커상을 수상한 한강의 작품 '채식주의자'는 시점과 시기가 다른 세 이야기가 연결되어 있는 연작소설이다.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불꽃' 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각각이 독립된 이야기로도 손색없다. '몽고반점'은 단독으로 2005년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러면서도 세 편이 전체적으로 매끄럽게 연결된다.
맨부커상 선정위원회는 16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미술관에서 열린 만찬 겸 시상식에서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올해 수상작으로 발표했다.
'채식주의자'는 미약한 존재와 난폭하고 어두운 세상과의 대결을 그리고 있다. 약한 존재가 대항하는 법은 식물(나무)이 되는 것. 한강은 나직하고 조근조근한 목소리로 이 환상적이고도 파격적인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어린 시절 자신의 다리를 문 개를 죽이는 장면이 뇌리에 박힌 여주인공이 어느날 꿈에 나타난 끔찍한 영상에 사로잡혀 육식을 멀리 하기 시작한다. 주인공의 아버지가 강제로 입에 고기를 넣으려 하자, 주인공이 그 자리에서 손목을 긋는다. 고요한 식물적 상상력과 시적 언어 속에 이같이 폭발할 것 같은 격정과 고통이 담겼다.
소설가 한승원의 딸인 한강은 1994년 서울신문에 단편 '붉은 닻'이 당선되며 등단해 22년째 작품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채식주의자'는 그가 한눈팔지 않고 천착해온 욕망, 식물성, 죽음 등 인간 본연의 문제들을 한 권에 집약해 놓았다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다음은 '채식주의자' 중 인상깊은 부분들이다.
막을 수 없었을까. 두고두고 그녀는 의문했다. 그날 아버지의 손을 막을 수 없었을까. 영혜의 칼을 막을 수 없었을까. 남편이 피흘리는 영혜를 업고 병원까지 달려간 것을 막을 수 없었을까. 정신병원에서 돌아온 영혜를 제부가 냉정히 버린 것을 말릴 수 없었을까. 그리고 남편이 영혜에게 저지른 일을, 이제는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을, 값싼 추문이 되어버린 그 일을 돌이킬 수 없었을까. 그렇게 모든 것이-그녀를 둘러싼 모든 사람의 삶이 모래산처럼 허물어져버린 것을, 막을 수 없었을까.('나무 불꽃' 중에서)
내가 믿는 건 내 가슴뿐이야. 난 내 젖가슴이 좋아. 젖가슴으론 아무 것도 죽일 수 없으니까. 손도, 발도, 이빨과 세치 혀도, 시선마저도, 무엇이든 죽이고 해칠 수 있는 무기잖아. 하지만 가슴은 아니야. 이 둥근 가슴이 있는 한 난 괜찮아. 아직 괜찮은 거야. 그런데 왜 자꾸만 가슴이 여위는 거지. 이젠 더이상 둥글지도 않아. 왜지. 왜 나는 이렇게 말라가는 거지. 무엇을 찌르려고 이렇게 날카로워지는 거지.('채식주의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