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월 01일 (월) 로그인 PC버전

시애틀N 최신 기사를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2021년 1월 시애틀N 사이트를 개편하였습니다. 열람하고 있는 사이트에서 2021년 이전 자료들을 확인 할수 있습니다.

시애틀N 최신 기사를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세월호2년]바닷속 딸 그리는 엄마의 편지…"내 얘기 좀 들어줘"



"지금의 무관심은 나도 누군가의 아픔 쉽게 잊고 모른척한 죄"
"이제 그만하라는 외침에도 악착같이 매달리는 건 다시는 이런 일 겪지않게 하기 위해"
"내가 어떤 결론을 내야 하는지…알지만 잠시 모른 척하고 조금만 더 슬퍼할게"


**이 기사는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아직 바닷속에 남아있는 안산 단원고 조은화 학생의 어머니가 은화양과 돌아가신 자신의 어머니에게 쓴 편지를 묶은 것이다.


내가 힘들고 속상할 때 부를 수 있는 이름, 엄마.


엄마가 되고 나면 엄마를 이해한다고 하잖아. 나는 엄마를 이해했을까?

진부하지만 속세의 모습을 짧게 전하자면, 하얀 벚꽃잎이 연약한 바람에 눈꽃처럼 날리더니 이제는 그 빈자리를 초록 새싹들이 조금씩 채워가고 있어.

엄마, 나는 은화가 바닷속에서 물고기와 은화가 그렇게 좋아하던 돌고래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평온하게 있다고 믿어. 그 믿음으로 팽목항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데 누구하나 은화 소식을 전해주는 이는 없네.

바람이 세게 불고, 파도가 아무리 높아도 우리 은화는 씩씩하고 건강하게 친구를 사귀며 지내겠지.

며칠 전에는 한 아버님이 바람이 많이 분다고 입고 있던 잠바를 벗어 나무를 감싸주는데 오랜만에 순간 울컥하더라. 눈물은 마르지 않는지 비워도 흘러넘쳐.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지. 저런 모습이 아버지고, 어머니고 결국 부모라고.

그런데 나는 은화를 위해서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 이게 엄마인가 싶기도 하고, 사람인가 싶기도 하고, 죽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살 수도 없고...

내가 지금 살아야 하는 이유를 누가 묻는다면, 은화를 포함한 아직 바닷속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9명을 찾기 위해서라고 나는 대답할 거야.

하지만 가끔 잔인한 생각을 하기도 해. 만약, 미수습자가 9명이 아닌 100명, 200명이면 어땠을까? 내 딸 말고도 더 많은 사람이 바닷속에 있다면 사고 2년이 지난 지금 이렇게 많이 잊혀졌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끔찍해도, 엄마는 날 이해해줄 거라 믿어. 모두가 나에게 손가락질해도 당신은 내 하나뿐인 엄마니까. 내 편이니까...

2년이 지난 지금, 그 많던 노란리본과 '진상규명'의 외침은 이제 청문회장이나 가야 조금 들리는 정도로 많이 희석된 것 같아.

사람 사는 세상이 다 그렇겠지? 살면서 나도 누군가의 아픔을 쉽게 잊고 모르는 척했을 거야. 그 죄 지금 받는다고 생각하지만, '이제 그만하라'는 사람들의 외침에도 내가 악착같이 은화 찾는 일에 매달리는 건, 미래의 누군가가 나처럼 이런 일을 겪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고 나는 확신해.

수없는 악플과 조롱을 버텨내며 내가 바라는 단 한 가지는 사람들이 자기 주변을 좀 더 깨끗하게 가꾸는 거, 그래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당당하게 거절하는 거, 그거 단 하나야. 누군가 또 은화 같은 일을 당하면 그땐 지금 내가 했던 행동이 모두 부정당하는 기분이 들 것만 같아 두려워.

고의든 아니든 사고나 사건이 발생할 수 있어. 그럼 국가가 나서서 구해주고 병원으로 이송해주고, 범인을 잡아주고 해야 하는 거 아닐까? 이걸 바라는 내 마음이 잘못된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내 행동이 비겁하거나 비굴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런데 아무도 책임이 없대. 이제 그만 다 잊고 은화 보내주라네. 지난번 청문회 때 가보니 정말 숨이 턱 막히더라. '모른다', '내 책임 아니다' 등등… 모두 책임 회피만 하는 모습에, 내 딸을 잃은 건 어쩌면 당연하고 내 조국이 이렇게 무능한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어.

그런 사람들에게 빌고 애원하며 내 딸을 찾아달라고 부탁하는 내 자신이 가끔은 어찌나 가엾고 한심한지 몰라. 그러다 ‘나는 엄마니까, 엄마는 자존심 없으니까’라고 정신 차리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매달리지.

요즘 지난 2년간의 삶을 되돌아봐. 엄마는 오빠를 잃고 어떻게 살았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아려. 오빠 잃었을 때 나는 엄마 위로한답시고 부모보다 먼저 간 오빠를 불효자라고 몰아세웠는데, 그게 엄마한테는 비수로 꽂혔을 거라는 걸 은화 생각하니까 알겠더라고.

엄마가 계시던 방, 은화가 살던 방 모두 그대로야. 얼마 전에 언니가 오빠 유품 찾으러 온다고 연락했는데 괜한 핑계로 지금까지 시간을 내주지 못하고 있어. 은화가 없는 지금, 엄마와 오빠마저 내 눈에서 사라진다면 나는 녹아내릴 거야.

다만 한가지 내가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건 엄마가 은화보다 먼저 가셨다는 거. 엄마가 만약 은화 저렇게 되는 모습 보고 돌아가셨다면 어땠을까. 정말 상상하기도 싫다.

엄마는 어떻게 살았어? 오빠 그렇게 되고 아빠는 그 충격으로 몸 한쪽이 마비되고. 계속 슬퍼하시다가 자식들 눈치에 어느 순간에는 슬픔도 표현하지 못하는 엄마가 지금에서야 떠올라. 

불쌍해서 어떡해, 우리 엄마. 우리 엄마 놀랐겠다. 우리 엄마 마음 아렸겠다. 자식 먼저 보내고 나니 엄마 불쌍해서 꺼이꺼이 울어도 그 슬픔, 죄책감 멀리 날아가지도 않네.

7월이면 배가 세상 밖으로 나온다고 해. 우리 은화 잘 있을까? 혹시나 찾지 못하면 어떡하지? 엄마 그럼 나 어떡해야 해? 은화, 나 보고 싶어서 잘 있겠지? 그렇다고 대답해줘 엄마. 지금 은화랑 같이 있잖아. 쉬이 잠이 오질 않는 밤이다.

앞으로 힘든 삶을 살아갈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하루는 눈물로, 하루는 원망으로, 하루는 그리움으로 반복되는 그런 날을 나는 죽을 때까지 한없이 느끼며 살아가겠지.

그래도 나는 알아, 엄마. 내가 어떤 결론을 내야 하는지. 그 결론을 알면서도 지금은 시간이 좀 더 필요해. 엄마가 엊그제 본 벚꽃은 사실 일년 전 그 꽃일 만큼 시간은 우리의 생각보다 빠르게 흘러가잖아. 시간은 그만큼 찰나임을 엄마와 나는 알기에, 그 결론 잠시 모른 척 하고 조금만 더 슬퍼할게.

엄마가 내 엄마라서 고마웠어. 또 연락할게.

2016년 4월15일 팽목항에서 당신의 딸.

기사제공=뉴스1(시애틀N 제휴사)



분류
Total 22,810 RSS
List
<<  <  568  569  570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