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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창의 사족] 구경꾼은 되지 마세요



<뉴스1 편집위원>

함량미달 퀴즈 하나 내겠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구경거리 3가지를 고른다면 ? 쉽게 얘기해 구경꾼의 입장에서 스릴만점의 3대 천왕을 뽑아달라는 주문이다. 답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나는 불·싸움·선거, 이 셋을 선택하고 싶다. (필자의 인격이 그리 고상하지 못함에 대해 미리 양해를 구한다.)


불과 싸움구경이야 다시 말할 것도 없지만, 선거가 더 기가 막힌 구경거리라는 사실을 최근 새삼 깨닫게 되었다. 현재 20대 총선 열기가 전국 구석구석을 달구고 있고 그 열기 덕분에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사실 처음 참정권을 행사하게 된 때부터 지금까지 대선이든 총선이든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구경꾼은커녕 방관자 수준이었다. 민주주의를 중우(衆愚)정치라고 조롱하는 사람들의 주장에 동조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다만 70년대 유신헌법의 찬반을 묻는 첫 국민투표 때,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게 만든 비현실적인 참여율과 찬성률을 보고, 그 이후로 국민의 신성한 의무 하나를 잊고 살기로 했다. 너무 상투적인가? (당시 투표참여율과 찬성률은 북한도 울고 갈 정도로, 100%에 가까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각설하고, 선거가 왜 그리 재미있느냐고? 막장드라마에 온갖 욕을 퍼붓는 사람들이 시간되면 TV 앞에 또다시 앉는 심정을 이번 총선을 통해 어렴풋이나마 짐작하게 되었으니까. D-2, 남은 이틀 동안 쇼는 절정을 향해 치달을 것이다. 믿어도 좋다. 막장드라마의 줄거리를 시시콜콜 늘어놓지는 않겠다. 말은 오히려 군더더기가 될 것임은 자명할 터. 이럴 때야 말로 ‘말하지 않음으로써 말을 전하는 무설설(無說說)’의 미덕이 필요하다.

그런데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게 하나 있다.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구호다. 고장난 축음기 헛돌 듯 되풀이되는 ‘일꾼론’ ‘머슴론’이 바로 그것이다. 일꾼과 머슴은 같으면서도 뉘앙스 차이가 있지만 여기서는 머슴으로 통칭하겠다. 머슴이 그렇게 좋은 직업인 줄은 미처 몰랐다. 그러니 자칭 국민의 머슴이 되겠다는 후보들이 끊임없이 줄을 서겠지. 

우리의 머슴은 세비만 해도 연 1억5000만원에 달한다. 주인인 국민의 1인당 소득의 약 5배나 되는 거금이다. 지난 3월 한국은행은 우리나라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전년보다 2.6% 줄어든 2만7340달러(약 3000만원)라고 발표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우리의 머슴은 특권도 겁나게 많다. 무려 200개나 된단다. 대표적인 특권이 공항의 귀빈실 이용이다. 소위 주인이라고 떠받들어지는 국민은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다. 번쩍거리는 세단에 운전기사는 물론이요, 머슴을 돕는 공무원 신분의 직원도 여럿이다.   

며칠 전 새누리당이 총선공약을 지키지 않으면 1년 세비를 반납하겠다는 서약을 하고 몇몇 일간지에 광고까지 냈다. 세비반납 의사를 후보들의 자율에 맡겼는데 참여한 후보들은 목표에 2명 모자란 48명이었고 대다수는 반대 입장이라고 언론은 보도했다. 한 종편의 코멘트다. “지난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야당과 마찬가지로 세비 30%를 삭감하겠다고 공약했지만 지키지 않았습니다.” 

여의도로 보낸 우리의 머슴은 한강을 건너는 순간 자신이 머슴이라는 사실을 내팽개친다. 주인노릇을 하며 4년 동안 온갖 갑질을 해댄다. 때가 되면 다시 “여러분의 머슴이 되겠습니다”라며 나타나 납작 엎드린다. 국민의 머슴살이가 고되고 살림에 보탬이 안 된다고 여기면 기를 쓰고 머슴노릇을 계속하게 해달라고 읍소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산업화에 시동을 걸던 60년대 말까지만 해도 논밭이 넉넉한 집에서는 머슴을 들이는 일이 큰일의 하나였다. 상머슴의 자격은 일 잘하고 부지런하고 건강하고 고분고분한 총각이었다. 그런 머슴은 몇 년씩 데리고 있다가 장가를 가게 되면 전답 몇 마지기 뚝 떼서 살림을 내주기도 했다. 

한해 농사가 머슴의 손에 달렸으니, 생각 없이 무턱대고 집에 들일 수는 없었다. 하물며 나랏일을 ‘하시는’ 국민의 머슴, 선량을 의사당에 입성시키는 큰일이야말로 더할 나위 있겠는가. 두 눈을 부릅떠야지.   

고민이 있다고? 아, 찍을 사람이 없다는 말이네. 그런 고민 한두 번 안 해본 사람 별로 없을 것이다. “가장 훌륭한 사람이 출마하기를 바라지만 그런 사람은 출마하지 않는다”는 명언이 있다. 살면서 늘 입에 맞는 떡만 먹은 것은 아니지 않는가. 최선이 아니면 차선, 그것도 아니면 최악 대신 차악의 선택이 있다. 기권하는 유권자로 인해 더 안 좋은 후보들이 뽑힌다는 지적을 잘 헤아려보자. 부디 이번에는,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선거판의 구경꾼은 되지 말자.

19세기 프랑스의 사상가 조제프 드 메스트르(Joseph de Maistre)는 말했다. ‘민주주의에서는 정권도 딱 국민 수준으로 뽑힌다(In every democracy, the people get the government they deserve). 얼마 전 한 일간지에서 보고 저장해 둔 내용이다.

메스트르는 프랑스혁명에 반대하며 절대왕정과 교황의 지상권을 신봉했다. 왕권신수설을 믿어 의심치 않은 그의 사상을 감안하건대, 전후맥락은 모르지만, 앞서 인용한 말을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해석하고 싶다. ‘국민은 원래 어리석으니 제대로 된 지도자를 뽑을 수 없다. 민주주의는 그래서 중우정치다.’ 

정말 그럴까? 답은 국민에게 달려 있다.   허튼소리가 너무 길었네. 이러다 발설지옥(拔舌地獄)에 떨어질라.  

기사제공=뉴스1(시애틀N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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