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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창의 사족(蛇足)] 그 말빚을 어이할꼬



<이기창 뉴스1 편집위원>

며칠 전 뜬금없이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한밤중에 잠에서 깬 뒤 뒤척이다가 떠오른 실없는 생각이었다. 


살아오는 동안 좋은 말을 많이 했을까? 아니면 싫은 소리를 많이 했을까? 가족에게도 말로 상처를 준 기억이 적지 않으니 남에게는 더 말할 나위 없겠지? 잠은 더 멀리 달아나고 부질없는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삶의 대부분을 말과 글에 의지해 밥을 먹었으니 그동안 지은 말빚(글빚)도 남보다 클 것임은 당연지사. 이 말빚을 어찌할까…. 

왜 뒤늦은 후회를 하느냐고? 그렇게라도 해야 마음이 덜 불편해지니까. 소시민의 마음이 그런  걸 어찌하랴.

새삼 말빚 얘기를 꺼낸 까닭은 따로 있다. 20대 4·13 총선을 코앞에 두고 벌어지고 있는 막말 다툼이 기가 막히고 씁쓸해서다. 그 한편에는 스스로도 조심하자는 마음 한자락도 깔려 있다.   

지금까지 쏟아져 나온 막말의 찌꺼기들을 굳이 되살려내고 싶지는 않다. 그래도 몇 가지만 추려보자.      

▲“안철수라는 괴물, 야권연대 거부 땐 역사의 반역자”
▲“새누리당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를 응원합니다.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신념으로 새 정치 실현해내시기를 기원합니다“   
▲“(국민의당을 향해) 진짜야당 대 가짜야당, 정권교체 세력 대 분열세력의 싸움” “정권창출의 방해세력”
▲“(김종인대표 거론하며) 정글에서 못된 짓만 하다 여우집에 굴러온 늙은 하이에나”
▲“박근혜 정권은 두 가지로 점철되는데 독살 맞거나 무능하거나”
▲“(옥새파동 뒤 김무성대표를 겨냥해) 장군이 아군을 향해 총을 쏴놓고, 죽었는지 안죽었는지 확인까지 한 것” “그러면 장군이 나중에 죽을 수도 있다” 
▲“(유승민 의원 등을 빗대) 아군에게만 총질하는 국회의원 잔뜩 있으면 무슨 소용이 있나”
▲“김무성 죽여버려. 솎아내야” 

선거 때면 되풀이되는 현상이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겠지만 이번 20대 총선기간에는 유독 심하게 느껴진다. 선거라는 멍석이 깔렸으니 눈치코치 볼 필요가 있겠는가. 저마다 말로 몽둥이를 만들어 서로 뒤통수를 후려친다. 갈고닦은 말의 비수와 송곳으로 상대를 찌르고 후벼 판다.

막말의 행진에는 여야의 구분이 없다. 투표일이 다가올수록 그 강도는 더욱 세진다. 흔히 말이 선거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하지만 이건 아니다 싶다. 

그래도 지난 선거 때까지만 해도 막말이 겨누던 칼끝은 상대정당과 후보에 국한돼 있었다. 이번에는 양상이 확 달라졌다. 여당의 내분과 제1야당의 분열까지 겹쳐 가관이다. 많은 선거구에서 ‘다여다야(多與多野)’의 구도가 형성되다보니 전후사정을 모르면 그 칼끝이 어디를 향하는지 헷갈린다. 오직 나와 적만 있을 뿐이다.

그 와중에도 새누리당은 자의반 타의반 탈당해 출마한 어제의 동지들에게 야당보다 더 가혹하게 굴고 있는 것 같다. 야당도 그에 못지않다. 지금까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의 주적은 적어도 새누리당이 아닌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오히려 호남의 민심을 볼모로 삼아 ‘진야가야(眞野假野, 진짜야당 가짜야당)’ 설전을 벌인다. 새누리당의 ‘박타령’에 버금가는 개그다. 

물론 국회의원이라고 해서 다른 사람과는 다른 높은 기준의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고 싶은 생각은 없다. 이미 그런 기대와 생각을 접은지 오래다. 다만 선량이라는 호칭에 조금이라도 어울리는 언행을 바라는 마음이다. 

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이다(口是禍門, 구시화문). 입 밖으로 나온 말은 시위 떠난 화살처럼 되돌릴 수 없다. 말은 할수록 허물만 늘게 마련이다. 절집에선 말로 짓는 죄를 가리켜 구업(口業)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묵언수행을 가까이한다. 

우리 저승세계에 발설지옥(拔舌地獄) 이라는 곳이 있다. 말 그대로 말로 허물을 많이 지은 사람들이 죽어서 떨어지는 지옥이다. 여기서는 나찰들이 형틀에 매달린 죄인들의 입에서 집게로 혀를 잡아 길게 뽑아 낸 뒤 그 위로 소가 밭을 갈듯 쟁기질을 끊임없이 해댄다. 그 처참한 고통은 상상을 절할 것이다.

말은 생각과 마음을 담는 그릇이다. 도공은 가마에 불을 지피기 전에 반드시 목욕재계를 한다. 삿된 마음을 지우기 위해서다. 그래야 좋은 그릇, 빼어난 도자기가 태어난다. 말도 마찬가지다. 배려와 사랑이 담긴 말이 갈수록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찬란한 슬픔의 봄, 꽃구경이나 갔으면 좋겠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N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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