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년 12월에 일어난 난징대학살 당시 일본군 장교가 중국인 시민의 목을 베려 하고 있다. © AFP=뉴스1 |
◇ 참수, IS만의 전유물은 아냐
역사적 시각에서 볼 때 참수형은 꽤 최근까지도 사형제도 내에서 존속해온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처형 방식이다.
사료에 따르면 참수형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의 역사 속에 가장 흔하게 등장하는 처형 수단이다. 한자 문화권에선 참형이나 참시로 불렸고, 사형선고 후 일정 기간 기다렸다 목을 베는 참대시(斬待時)와 사형선고와 동시에 집행되는 참부대시(斬不待時) 등으로 세분화되기도 했다. 또한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도 참수형이 시행됐다는 기록이 있다.
일본에서도 참수는 흔했다. 무사인 사무라이들은 할복하는 자가 자기 배를 가르면 뒤에서 목을 쳤다. 실은 할복으로 인한 고통을 빨리 끝내주려고 '배려'한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 장교가 호주인 전쟁포로를 꿇려 앉힌 채 일본도로 참수하기 직전의 모습을 담은 사진은 전 세계인들에게 끔찍한 잔상을 남겼다.
우리나라에서도 참수형이 공식적으로 사라진 건 불과 120년 전인 1894년 고종의 칙령에 의해서다. 고조선 이래로 국법을 어긴 중죄인, 역적, 그리고 전쟁 시 적의 장수들은 대게 참수로 다스리는 게 관례였다.
조선말인 1866년~1868년 병인박해 땐 약 1만여명의 천주교 신자들이 참수됐다. 현재 서울 마포구 합정동엔 그 참혹했던 역사가 노골적인 지명으로 남았다. 절두산(切頭山)이 바로 그곳이다.
미국에선 1623년 신앙의 자유를 찾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아메리카 신대륙에 도착한 영국인 청교도들의 사령관 마일스 스탠디시가 인디언 추장의 목을 잘랐다는 기록이 있다.
이들이 신대륙에 도착해서 처음 맞은 추수감사절에 자신들의 정착을 도왔던 미국 원주민(인디언)들과 만찬을 함께 한지 꼭 2년만의 일이다.
이 부분은 미국 역사책에서 추수감사절 관련 일화를 가르칠 때 쏙 빠져 있다. 인종간의 화합이 폭력보다 강조돼야 한다는 교육적 명목 때문이다.
9월14일(현지시간) 영국인 데이비드 헤인스(왼쪽)와 그를 참수한 IS 조직원. © AFP=뉴스1 |
단두대(기요틴)는 프랑스 혁명 당시인 1792년 최초로 등장한 후 1977년 없어질 때까지 약 180여년간 사용됐다. © AFP=뉴스1 |
◇ '인도주의적' 참수 기구 단두대
참수형의 발달과 함께 목을 베기 위한 다양한 기구들도 함께 고안됐다.
과거엔 목을 베는 데 주로 칼이나 도끼 등이 사용됐으나, 이 방법은 사형집행인이 어떤 기술과 힘으로 목을 치느냐에 따라 죄수에 대한 고통이 달라진다는 문제가 있었다.
조선시대 땐 사형수의 가족들이 죄수들의 목을 베는 망나니에게 뇌물을 주기도 했다. 고통 없이 단칼에 목을 잘라 달라는 간곡한 부탁과 함께였다.
16세기 유럽에선 나무 틀 속에서 칼날을 낙하시켜 목을 베는 장치가 나왔다. 이탈리아에선 이 장치를 '마나이아'(Mannaia)라고 불렀다. 영국에선 이를 개량해 16~17세기에 사용했고, 그 전엔 '핼리팩스 지빗'(Halifax Gibbet)이라는 참수기를 사용했다.
가장 유명한 참수 장치는 프랑스 혁명 때 등장한 단두대일 것이다. 원래 이는 프랑스인 의사 기요탱 박사가 당시 도끼나 칼보다 더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목을 베 사형수의 고통을 줄여주려는 '인도주의적' 목적으로 고안한 장치다.
당시의 처형 방법은 아주 잔혹했다. 죄수를 죽을 때까지 고문하거나, 산 채로 불에 태우거나, 두 팔과 두 다리와 머리를 말이 이끄는 수레에 묶어 내달리게 함으로써 사지를 찢어 죽이는 거열형 등이 일반적이었다.
그에 비하면 참수는 차라리 가벼운 형별에 속했다. 다만, 칼이나 도끼날이 잘 안 들거나 잘못 내리쳐 목이 단박에 잘리지 않을 경우 사형수가 겪게 되는 고통은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45도 각도로 경사진 육중한 칼날의 낙하운동을 이용해 목의 뼈, 근육, 인대 등을 단숨에 절단하는 원리인 이 단두대는 1792년 4월25일 처음 사용된 이래 혁명 직후 정권을 잡은 자코뱅파가 자행한 공포정치의 상징이 됐다.
프랑스에서 단두대 처형이 폐지된 건 놀랍게도 비교적 최근인 1977년이다. 역사에 등장한지 약 180여년만의 일이다.
© AFP=뉴스1 |
◇ 우리 모두에게 내재된 야만성 인식해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미국인 기자 2명이 IS 반군에 의해 참수된 직후 이 조직에 대한 섬멸 의지를 천명했다. 이어서 아랍의 동맹국 5개국과 함께 IS 공습에 나섰다.
IS는 미국인 2명에 이어 지난달 14일엔 영국인 데이비드 헤인스(44)를, 또한 이달 3일엔 영국인 앨런 헤닝(47)을 참수하는 동영상도 공개했다.
IS의 민간인 인질들에 대한 참수는 마땅히 비난을 받을 일이다. 하지만 IS의 야만성을 맹비난하면서도 정작 우리 자신의 잔인성은 들여다보지 않으려는 점도 문제라고 짐머만 교수는 지적한다.
1800년대 말 제국주의 절정기에 백인 유럽인들과 미국인들은 참수를 인종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자신들과 '다른' 사람들의 것으로 치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미국인들도 적들에 대한 참수 관행을 계속했다. 로마인들이 켈트족의 목을 벤 것과 같은 논리다. 즉, 야만인들에겐 문명사회의 규칙을 적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미군은 제2차 세계대전의 막바지인 1945년 일본군 병사의 목을 베어 그 머리를 탱크 위에 올려놓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미군은 1991년에도 이라크 병사에게 같은 일을 반복했다.
짐머만 교수는 인류 전체가 참수를 집행했던 과거 행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인정하고 우리 자신의 야만성과 폭력성을 반성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가 참수형을 혐오하면서도 동시에 호기심을 드러내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유튜브의 참수 관련 동영상 조회 수가 수백만 건에 달한다는 점이 그 증거라는 것이다.
짐머만 교수에 따르면 야만성은 IS에만 있는 게 아니다. 우리가 두려워하거나 무시하는 또 다른 적에게서 보이는 것도 아니며 바로 우리 자신 속에 내재돼 있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N 제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