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생활]피 보다 진한 것-김준 장로
시애틀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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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준 장로(칼럼니스트)
피 보다 진한 것
동양철학을 가르치는 A교수는 언젠가 모 잡지에 동양적인 혈육의 정을 말하면서, 부모 자식간이나 형제 자매간은 진한 피와 같은 관계이지만 부부간은 피만큼 진하지 않은 물과 같은 관계이기 때문에 그 관계는 언제든지 갈라설 수도 있고 또 갈라 서면 금방 남남으로 변하고 만다면서 피는 물보다 진한 천륜의 관계임을 강조하는 글을 썼습니다.
그
후 어느 날 그 글을 게재한 잡지사에서 그 잡지를 A교수의 집으로 우송했는데 A 교수의 부인이 그 잡지에서 남편이 쓴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
글을 읽은 부인은 기분이 몹시 언짢았습니다. 자기는 지금까지 피다 물이다 하는 생각 없이 오로지 남편과
자식 그리고 가정만을 위해 온갖 파란곡절을 다 겪어가며 헌신해 왔는데 남편은 자기를 물로 여기면서 피로 연결된 가계(家系)에서 제외시키고 있다는 서운한 감정 때문이었습니다.
그녀는
남편이 퇴근하기를 기다리다가 저녁때 돌아온 남편에게 항의를 하면서 감정을 분출시켰습니다. “---나는
물이니까 피로 얽힌 사람들끼리 잘 사시구려!”
A교수의
이런 저런 변명과 설명이 있었지만 부인의 노여움은 누그러지지가 않았습니다. 마침내 A교수가 잘못했노라고 사과를 하고 나서야 사태가 진정되었다고 합니다.
그로부터
여러 해가 지난 후 A교수는 노환으로 거동도 불편해지고 청력도 시력도 약해져서 부인이 대신 전화를 받아주거나
전화를 걸어주기도 하고 또 편지를 대필해 주기도 하고 읽어주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A교수가 집안에 있을 때나 바깥 출입을 하게 될 때마다 부인은 남편의 의복, 식사, 승하차, 보행 등 일거 일동에서 언제나 남편의 수족이 되어 온 정성을
다해 남편을 수발하며 돌보았습니다.
자, 그러면 그 어느 피가, 즉 어느 부모, 어느 자식, 어느 형제자매가 물이라고 분류되는 그 부인만큼 A 교수를 위해 주고 사랑하며 헌신할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진정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면 피냐 물이냐를 가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며느리냐, 딸이냐, 아들이냐, 사위냐를
가려서도 안되고 가릴 수가 없는 것 입니다. 내 혈육이냐 내 동족이냐도 따질 수가 없고 오직 이웃을
향한 지극한 인간애만이 있을 뿐입니다.
예수님이
언제 예수님의 가족만을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까? 예수님이 언제 그분의 민족만을 위해 고난을 당하셨습니까? 인간애를 위해 희생했던 수 많은 신앙의 선조들이 언제 물이냐 피냐를 구별하면서 목숨을 바쳤습니까.
공자님은
부모와 자녀, 형과 아우 그리고 친척 등 혈육의 관계를 하늘이 맺어준 특별한 천륜의 관계라고 강조하셨지만
예수님은 혈육간의 사랑만을 강조하시지도 않았고 부부간의 사랑만을 강조하시지도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이웃사랑’을 역설하셨고 그 이웃은 언제나 물이나 피를 초월한 사랑의 대상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복음 전파에 열중하시던 어느 날, 주님을 찾아 온 주님의 어머니와 동생들을 제자들이 주님께 안내하면서, “주님의 모친과 동생들이 찾아 왔습니다”라고 알려드리자 주님은 “누가 내 어머니요 형제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막 3:31~35)”라고 하시면서 하나님의 자녀된 모든 이웃과 모든
인류를 다 내 부모 형제 자매로 아우르시고 품으시던 주님의 그 넓고 깊으신 사랑은 가이 없었습니다.
피보다
진한 것이 사랑입니다. 그 사랑 안에서 물이나 피의 농도는 아무런 의미도 없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사랑 속에 물도 피도 다 용해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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