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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생활-김 준] 그 어디나 하늘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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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준 장로(종교 칼럼니스트)

그 어디나 하늘나라

6.25 전쟁 중 1.4 후퇴 때 우리 가족은 미군 수송선 LST를 타고 목포로 가서 피란 생활을 하였습니다. 필자의 나이가 10대 중반이던 그때 목포시에는 약 1,500명의 피란민들이 천막조각과 판자로 거처를 마련하고는 UN에서 원조해주는 곡물로 겨우 생명을 부지하고 있었습니다.

종교적 탄압과 위협으로부터 탈출한 피란민들은 그 고통스러운 정신적, 육체적 시련 속에서도 교회를 세웠습니다

북한에 있던 수천개의 교회당을 모두 잃었지만 보이지 않는 신앙의 열정과 성령의 불길은 남한을 기독교 국가로 변화시키는 데에 일조하고 있었습니다.

탈북민들이 목포에 세운 교회 이름은 성산교회(聖山敎會)였습니다. 정든 고향 산천을 영원히 떠난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었습니다. 경작하던 문전옥답, 경영하던 사업장, 수십년 동안 살던 보금자리와 금싸라기 같은 가산을 모두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그 상황은 더더욱 큰 슬픔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온 가족이 다 함께 탈북한 가정은 거의 없었고, 부부간, 부모 자식간, 형제 자매간의 이별, 그리고 가족처럼 정들었던 친구들과 이웃들을 영원히 잃게 된 그 고통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는 피눈물 나는 아픔이었습니다.

이처럼 하루하루 고통과 슬픔과 미래에 대한 불안과 절망 속에 묻혀 살던 어느 해 여름에 우리 교회에서 부흥사경회가 열렸습니다. 당시 서울 남영동 교회에 시무하시던 최화정 목사님이 오셔서 1주 동안 성회를 인도하셨습니다. 그분도 역시 탈북민이었습니다.

우리가 살던 목포시 서산동에서 교회까지는 걸어서 꼬박 1시간이 걸렸습니다. 부흥집회는 새벽 5시에 새벽기도회, 10시부터는 성경공부, 7시부터는 전도 집회로 이어졌는데, 나는 그 목사님의 말씀이 너무 좋아서 첫날 첫 시간부터 하루도, 한시간도 빠지지 않고 늦지도 않고 왕복 6시간을 걸으면서 매 시간마다 온 정성을 다하여 기도드리고 성경공부하고 설교 듣기에 집중하였습니다

목사님은 얼마나 열과 성을 다하여 말씀을 외치셨는지, 부흥회 시작한지 이틀만에 벌써 목이 쉬어 있었고 나도 3일이 지나니까 입술이 부르트기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나는 목사님의 말씀만이 아니라 그 분의 인자하신 인품과, 피를 토하는 듯한 열정적인 설교와, 그 집회가 그분의 생애에 마지막 기회인 듯이 혼신의 기력을 다 쏟으시는 모습에 감동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왼쪽 손에 든 손수건으로는 비 오듯 흐르는 땀을 닦고, 오른 손에는 성경과 찬송가 책을 번갈아 들고 쉰 목소리로 불 같은 열변을 토하시던 그 성령 충만하심이 온 성도들의 심령속에 고스란히 스며 들었습니다.

그때 부흥회 내내 강조하며 부른 찬송가는 438장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눈을 지긋이 감고 쉰 목소리로 열창하시던 목사님의 얼굴에는 그 분 마음 속에 이루어진 하늘나라가 그대로 표출되어 있었습니다

그 찬송가 끝절에서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를 부르실 때에는 장내가 성령 충만한 열기로 가득하였고 통성기도 시간에는 망향의 서러움으로, 적지에 두고 온 가족 생각으로, 말씀과 찬송에서 받은 은혜의 감격으로 기도가 아니라 통곡의 시간이 되곤 하였습니다.

그 때를 조용히 회상해 보면 참으로 신기하고 놀랍게도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가장 빈궁한 역경을 헤매고 있을 때 위로부터 내려 주시는 참 기쁨을 알았습니다.  

나로서는 감사할 조건이 아무것도 없던 그 시련의 때에 나는 가슴 벅찬 참 감사를 체험했습니다. 그 무엇보다도 향학열에 불타던 인생의 황금기에 배움의 길이 꽉 막혀 있던 절망스러운 그 때에 나는 그 절망을 넘어 영원한 소망까지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목포가 몹시 그립습니다. 선비의 기개같이 상큼상큼 솟아오른 유달산봉들, 삼학도 파도소리에 맞춰 날개 치던 갈매기 노래소리, 영산강 어귀의 돛단배들… 

그 무엇보다도 성산교회와 「내 영혼이 은총 입어그 어디나 하늘나라」를 온몸으로 부르시던 신앙의 은인 최화정 목사님을 영원토록 잊을 수가 없습니다.  

**김 준 장로의 <신앙과 생활>을 추가로 보시려면 아래를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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