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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길의 영화읽기]룸-삶, 그럼에도 살아지는 것



영화가 시작되면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순수할 것 같은 아이가 침대에서 엄마와 함께 눈을 뜬다. 

그 아이는 사내지만 여자아이보다 더 예쁘다. 또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백지장처럼 순수하고 맑다. 엄마도 그런 아이를 사랑스럽게 대한다. 

그날은 아이의 다섯 번째 생일. 엄마는 아이를 위해 집 안에 있는 재료로 케이크를 만들어준다. 

하지만 케이크에는 초가 없었고, 아이는 그 이유로 엄마에게 소리를 지르며 생떼를 쓴다. 

순간 행복이 가득했던 화면은 조금씩 뒤틀리기 시작하고 엄마가 초를 구할 수 없는 이유가 드러나면서 이내 나락으로 떨어진다. 

모자는 납치를 당한 상태로 지금 어딘지 알 수도 없는 방에 감금된 상태였던 것. 조이(브리 라슨)는 닉(숀 브리저스)에 의해 납치돼 7년째 감금 중이다. 

다시 말해 이제 막 다섯 살의 잭(제이콥 트렘블레이)은 납치범 닉의 아들이다. 감금된 후 닉의 강간에 의해 태어났다. 

 

삶은 온통 아이러니 투성이다. <룸>에서 잭의 존재가 그렇다. 마치 어린왕자처럼 순수하고 예쁜 아이지만 그는 범죄자의 몹쓸 욕정에 의해 태어났다. 

삶이란 게 그렇다. 가끔은 악에서 순수가 태어나기도 한다. 아니, <룸>은 시종일관 어린 잭의 시선을 따라가며 관객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이 아이러니를 대체 어쩌란 말인가?”

때문에 <룸>은 필연적으로 삶에 대한 성찰로 이어진다. 영화는 특히 모자가 갇혀 있던 방보다 더 감옥 같은 세상을 대비적으로 보여주며 깊이를 더한다. 

감금됐던 그 방에서는 그래도 남들 시선 따윈 신경 쓸 일이 없었고, 가슴을 후벼 파는 질문을 받을 일도 없었다. 

비록 범죄자지만 닉이 모자의 생계를 책임졌고, 가로세로 3.5미터의 공간은 어린왕자의 소행성처럼 작았지만 오붓했다. 더욱이 갇혀서, 좁아서 둘은 늘 함께 있을 수 있었다. 

해서 방에서 벗어난 후 엄마와 떨어져 있는 시간이 늘자 잭이 할머니(조안 알렌)에게 말한다. 

“가끔은 그 방이 그리워요.”
     
 

하지만 악에서 탄생한 순수는 그보다 더 놀라운 이야기를 관객들에게 들려준다. 할머니가 “그 방이 놀기엔 너무 좁지 않았냐”고 묻자 잭은 이렇게 대답한다. 

“엄마랑 잡기놀이를 할 때 둥그렇게 돌면 계속 돌 수 있었어요.”

그랬다. 감금돼 7년 동안 다친 엄마를 치료한 건 잭이었다. 악에서 탄생했지만 순수는 순수. 어차피 우리도 욕정으로 태어난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던가. 

찬란하지만 시작부터 아이러니한 삶은 그래서 능동이 아니다. 수동이다. 살아가는 게 아니라 살아지는 거다. 

행복할 땐 행복에 취해, 아플 땐 힘들어하면서, 그럼에도 계속 살아진다. 살아야 하니까. 삶이니까.  

그래도 다행스러운 건 문이 있다는 것. 

모자를 감금했던 그 방에도 문이 있었듯 삶이라는 거대한 감옥에도 문은 있다. 힘들어도 살아지는 이유 역시 그 문 때문이 아닐까. <룸>에서 진정 주목해야 할 부분도 모자를 가뒀던 벽이 아니었다. 문이었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N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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