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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길의 영화읽기]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사랑



마당에 수북이 쌓인 낙엽을 쓸던 소년이 갑자기 손으로 낙엽 한 뭉치를 들어 소녀의 머리에 뿌린다. 소녀가 짜증 섞인 말투로 말한다. “왜 이러세요.” 

하지만 소년은 멈추지 않는다. 입가에 연신 미소를 머금은 소년은 연이어 낙엽을 소녀의 머리에 뿌려댔다. 

소녀는 소년의 장난질에 계속 항의했지만 싫지는 않은 기색이다.


 
잠시 후 소년은 장난을 멈추고 갑자기 꽃을 꺾어 소녀의 귀에 꽂는다. 그리고 말한다. “참 예뻐요.” 

그러자 소녀도 똑같이 꽃을 꺾어 소년의 안경 틈 사이에 꽂아준다. 소녀도 마찬가지로 예쁘다는 말을 건넨다. 

소년의 나이는 98세고, 소녀는 89세다. 소녀는 14살 때 소년에게 시집왔다. 피부는 쭈글쭈글해졌지만 그들은 아직 소년과 소녀다. 

사랑은 변한다. 하지만 늙지는 않는다.


 

 

14살 때 소녀가 소년에게 시집왔을 때 소년은 3년간 부부관계를 전혀 하지 않았다고 한다. 어린 소녀를 위한 배려였다. 

결국 소녀가 먼저 소년에게 안겼다. 이후 둘은 손을 꼭 잡고 절대 놓지 않았다. 

둘 사이에서는 12명의 자식이 있었다. 하지만 6명은 병과 전쟁 통에 잃고 말았다. 무사히 자란 육남매가 가끔씩 찾아와 소년과 소녀를 즐겁게 해줬다.


 
소녀는 겁이 많았다. 밤에 혼자 뒷간에 가는 것을 무서워했다. 그럴 때마다 소년은 소녀를 위해 뒷간 문 앞에서 노래를 불러줬다. 

그러면 볼일을 보고 난 소녀는 소년을 향해 “아이구. 참 노래 잘하시네요”라며 칭찬해줬다. 

소녀는 안다. 소년에게 많이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소녀는 고맙다는 듯 소년의 손을 살포시 잡는다. 마당가에 소년의 노래가 더욱 크게 울려 퍼진다.


 

 

하지만 소년은 아프다. 특히 기관지가 좋지 않았다. 밤마다 소년은 허공을 향해 연신 기침을 해댔고, 그런 소년을 소녀는 늘 걱정스럽게 쳐다봤다. 

병원도 가봤지만 많은 나이 탓에 더 이상 약이 듣지 않았다. 

하지만 소년은 오히려 소녀 걱정이다. 소녀는 무릎 관절이 좋지 않았다. 

아직도 주사를 무서워하는 겁 많은 소녀를 위해 소년은 아픈 몸을 이끌고 멀리 있는 병원에 소녀의 손을 꼭 잡고 동행했다.

그리고 주사를 맞는 동안 소녀의 곁을 지켰다.


 
병환이 깊어지면서 소년의 기침은 더욱 잦아졌고 몸은 눈에 띨 정도로 여위어 갔다. 죽음이 점점 가까워져오고 있었다. 

소녀는 소년이 3년만 더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소년과 한날 한 시에 함께 가길 원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잘 알기에 소년은 잠든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안타깝게 바라본다. 

눈물을 흘릴 기력조차 없었기에 방안엔 무거운 정적만이 흘렀다.


 

 

며칠 뒤 소년은 차가운 주검으로 변해 상여에 몸을 뉘였다. 곡소리가 울려 퍼지는 마당 한 켠에서 소녀는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소년이 뒷산에 묻히던 날 하늘에서는 하염없이 눈이 내렸고, 소녀는 울면서 소년의 무덤 곁을 홀로 지켰다. 추울까봐, 무서울까봐 연신 소년에 대한 걱정을 토해냈다. 

하지만 슬픔은 그리 길지 않을 것이다. 슬픔에 익숙해지거나 소년이 잊혀져서가 아니라 소년을 다시 만날 날이 멀지 않았기 때문이다. 

님은 결국 강을 건너고 말았다. 허나 드넓은 강도 소년과 소녀의 사랑을 가로막을 수는 없었다. 

2014년 11월27일 개봉. 러닝타임 86분.



기사제공=뉴스1(시애틀N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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