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춘 한국일보 시애틀지사 고문
현대판 아마겟돈 전쟁
‘아마겟돈(Armageddon)’이라는 공상과학 영화가 오래전에 히트했다.
요즘도 가끔 TV에서 재방영된다. 텍사스주 크기의 별똥이 지구로 무섭게 돌진해오자 NASA(미국 국립 항공우주국)가 핵폭탄으로 별똥을 폭파시킬 작전을 세운다. 충돌예상 18일전 유정시추 전문가 브루스 윌리스가 우주비행사들과 함께 소행성으로 날아가 임무를 수행한 후 장열하게 순직한다.
별똥이 그대로 지구와 충돌했더라면 영화 제목처럼 아마겟돈(지구 종말)이 초래됐을 터이다. 윌리스 시추팀은 시속 2만3,000마일로 달리는 소행성의 중앙에 천신만고 끝에 구멍을 뚫어 핵폭탄을 장전한다.
그러나 리모트 콘트롤이 고장나 한 사람이 별똥에 남아 수동으로 폭발시킬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자 윌리스가 그 역할을 자임해 인류 구제의 영웅이 된다.
아마겟돈은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 계시록이 예언하는 이 세상의 마지막 전쟁이다.
히브리어인 아마겟돈은 그리스어로 ‘므깃도 산’(이스라엘의 오랜 전쟁터)이다. 거짓 선지자들이 ‘동방의 왕들과 천하 임금들의 군대’를 그곳에 집결시켜 하나님의 군대와 전쟁을 벌이지만 결국 멸망당해 지구의 종말이 오게되며, 예수가 이 땅에 재림해 죄인들을 심판한다는 내용이다.
아마겟돈 전쟁이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신학자들마다 견해가 다르다. 므깃도는 상징적 전쟁터일뿐 꼭 이스라엘 지명을 지목한 것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19세기 땐 이슬람권인 터키와 주변 기독교 국가들간의 최후 전쟁으로, 냉전시대 때에는 이스라엘을 침공한 무신론의 공산주의 소련과 기독교 국가들 사이에 벌어질 최후결전으로 풀이되기도 했다.
아마겟돈이 지구의 종말을 뜻하기 때문에 요즘엔 흔히 제3차 세계대전, 또는 핵전쟁을 에두르는 말로 쓰인다. 더구나 므깃도도 이스라엘 아닌 한반도가 될 공산이 크다며 겁주는 전문가들도 많아졌다.
엊그제 북한이 미국 심장부인 워싱턴DC까지 때릴 수 있는 초대형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발사에 성공해 사실상 세계 핵강국 반열에 올라선 탓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을 ‘완전히 파괴할’ 준비가 돼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그의 국가안보 보좌관 H.R. 맥매스터는 북한의 핵 위협을 막기 위해 필요하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조치도 취할 것이라고 거들었다. 린지 그래엄(공-사우스캐롤라이나) 상원의원은 “북한의 핵 무장을 막기 위해 부득이하다면 미국이 전쟁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주장조했다.
솔직히 북한의 핵무장은 트럼프가 책임질 일이 아니다.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버락 오바마 등 그의 선임 대통령들도 모두 못 고친 고질이다. 미국이 그토록 오래 공들여온 북한의 완전 핵폐기는 공염불이 됐다. 그동안의 9차례 대북 경제 제재조치도 솜방망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은 물건너갔다며 무력으로 응징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것도 그 때문이다.
비슷한 경고를 다른 대통령들도 했었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1969년 미공군 EC-121 정찰기가 북한군에 격추당해 탑승원 31명이 몰사하자 북한을 선제 타격하려 했다가 전면전 확산을 우려해 물러섰다. 푸에블로호 납치사건(1968),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1976), 올해 오토 윔비어의 고문치사 사건 때도 찍소리 못했다. 북한이 미국을 종이호랑이로 볼만하다.
적국의 미사일 위협을 받은 미국 대통령도 트럼프가 처음은 아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쿠바에 미사일기지를 세우려던 소련의 니키타 후르시체프와 1962년 10월 숨막히는 협상을 13일간 벌인 끝에 이를 중단시켰다. 핵전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위기였다. 트럼프도 똑같은 상황이다. 대상이 쿠바가 아닌 북한이며, 피델 카스트로가 아닌 김정은일 뿐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 취할 수 있는 옵션은 전쟁, 묵인, 협상 세가지다. 오바마 대통령은 협상으로 이란의 15년 핵 동결을 이끌어냈다. 15년 후 이란정권이 바뀔 수 있음을 노렸다. 트럼프도 북한의 핵탄두를 기존의 15개로 동결하도록 협상할 수 있다. 개전 첫날 100만명이 죽게될 현대판 아마겟돈 전쟁이 한반도에서 일어나는 재앙은 반드시 막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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