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칠
수필가
여백
덜
찬 것이 좋아졌다. 무엇이든지 꽉 찬 것을 좋아했던 시절에 비하면 큰 변화이다.
내
나름대로 단순한 삶을 꾸려 나아가고 싶어 정리정돈부터 시작했다. 14년 전, 겨우 가방 두 개를 들고 미국에 왔는데 그 동안 늘어난 물건들로 집안이
꽉 찼다. 우선 물건들을 줄이려 하니 작은 것 하나에도 저만의 이야기가 있는 것 같아 포기하기 쉽지 않았다. 고심 끝에
많은 것들을 과감하게 없앴다.
집안에 제법 빈자리가 생겼다. 덩달아 내 마음에 여유가 느껴진다.
미술품 애호가인 지인의 집에는 좋은 그림들이 많다. 넓은 벽에 크기가 다른 그림들이 앞다투어 걸려
있다. 또 각 나라의 장신구 및 장식품들이 집안에 빼곡하게 들어 앉아 있다. 귀한 것들도 빈틈없이 놓여 있으니 그들만의 소중한 가치가 줄어드는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내가
아는 화가는 화폭의 60% 이상을 화폭 색깔 그대로 남겨 놓는다. 처음 그림을 보면서 단순하다고 생각했는데,
찬찬히 감상하다 보니 넓은 공간 속으로 자유롭게 넘나드는 자신을 발견했다. 여백이 가져다 준 무한한
상상력을 그때 처음 맛보았는데 꽤 신선했다.
그 뒤로 미술 전시회에 가서 작품들을 후다닥 감상하고 함께 간
사람들을 지루하게 기다리는 일은 없어졌다. 또 다른 여유를 경험한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사람을 처음 만날 때 겉모양보다는 안팎에서 풍기는 그 사람만의 분위기를 헤아리게 되었다. 또한 모양새만 보아왔던 사물도 그것을 싸고 있는 바깥 쪽 여백까지 챙겨보곤 한다. 그러다 보니 사람을 만날 때나 사물을
볼 때에 그들로부터 예전에 접하지 못했던 또 다른 풍성한 분위기를 보게 된다.
그래서일까, 나는 주변에서 도량이 큰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도량은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쌓을 수 있는 것 같다.
그것은 자신을 내세우기보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모습에서 쉽게 느낄
수 있다. 신문 기사에 나오는 주인공은 아니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표시도 안 나는 일에 마음을 쓰는 이들이
많다. 그래서 살 맛나는 세상이라는 말이 있나 보다.
내가
소속되어 있는 산악회에 많은 이들에게 존경 받는 분이 있다. 여든을 훨씬 넘어선 그 분은 젊은이 못지않은 저력으로 산행한다.
어른 대접을 받으려 하기보다는 항상 겸손하게 당신을 낮춘다. 잘 살아온 세월을 자랑하는
대신 도움 줄 일만 넌지시 실천하고 소리도 안 낸다. 산행 중에도 다른 사람에게 이래저래 배려하는 마음은
따뜻하기만 하다. 당신이 어른 대접을 받으려 하지 않으니 모든 사람들이 더욱 깎듯이 어른으로 모신다.
내
처남은 어린 조카들한테 먼저 안부인사를 한다. 그들이 도움을
필요로 할 경우 먼 길도 마다 않는다. 내가 장유유서를 운운하며 농담을 하면 안부를 묻는데 위아래가 있느냐며
어른 티를 안
낸다. 우리
두 아이들을 비롯 모든 조카들이 그런 외삼촌을 좋아한다. 어느 때부터인가 보수적인 나도 생각을 바꾸어 보니 되레 내 마음이 흡족하고 편안해진다.
살다
보면 생각 치도 못한 일들이 마구 일어난다.
내가 가진 것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기가 어렵다.
또 내가
다른 사람보다 낫다고 여겨질 때는 상대방의 소중한 것들이 하찮게 여겨지기 쉬운 것 같다. 그래도 다른 사람의
허물을 크게 확대시키려는 사람보다 누가 알세라 덮어주는 이들이 더 많은 것 같아 흐뭇하다.
나를
스쳐간 사람들이 내게 남긴 흔적과 상관없이 넉넉함을 줄 수 있는 마음을 갖고 싶다. 너른 여백을 갖고 있을 때 여유로울 수 있고, 그런 여유가 웅숭깊은 도량을 가져다 주지 않을까.
이제
집안에 빈 자리를 만들어 놓아 이 공기 저 공기가 들락날락하게 해 놓았으니, 다음으로 내 마음의 여백을 더 넓혀 나아가야 할 것 같다.
부족함에
연연하지 않으니 덜 찬 것들이 그냥 좋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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