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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8-09 00:36
[이효경의 북리뷰] 마지막 순간까지 싸우고 이겨내야 할 삶의 고난과 시련 도사려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4,492  

이효경(UW 한국학도서관 사서)

어니스트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더 클래식 2015)
 

쿠바 다녀와서 <노인과 바다>를 다시 읽고 싶은 충동 일어

 
쿠바에 다녀오고 나서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다시 읽고 싶은 충동이 이는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떠나온 곳을 책으로나마 다시 느끼며 그 감흥을 연장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쿠바를 기억하게 해주는 단어들은 이미 살아있는 활자가 되어 기억의 바다를 만난 고기처럼 페이지 위에서 펄펄 날뛰고 있었다

검정콩 밥에 바나나 튀김, 그리고 스튜는 노인을 위해 소년이 가져온 음식이 등장한다. 불과 얼마 전에 쿠바에서 먹었던 검정콩이 듬성듬성 들어가 고소했던 밥에 반찬처럼 나왔던 바나나 튀김이 머릿속과 입안의 기억을 맴돈다

갈색 반점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며칠 지난 바나나 껍질을 안타깝게 바라보다가, 쿠바에서처럼 기름에 구워서 먹고 싶은 충동이 불쑥 인다. 스튜는 쿠바에서 점심때 한두 번 먹어본 적이 있던 밥 위에 부어 먹던 카레보다 묽은 국물을 말하지 않나 싶다.
 

아바나 말레콘 비치서 지는 해와 뜨는 달을 함께 보다
 
쿠바의 지명도 시애틀 동네 이름처럼 반갑고 정겹다. 아바나 항구에 제일 먼저 귀가 열린다

쿠바에 갔을 때 유일하게 구경할 수 있었던 아바나의 말레콘 비치가 지금이라도 당장 눈 앞에 펼쳐질 것 같다. 묵고 있던 숙소에서 걸어서도 갈 수 있는 거리에 말레콘 비치가 있었다

자전거 인력거를 타고 쏜살같이 내려가면 5분 안에 바다와 만난다. 누군가 도와주지 않으면 올라가기 힘든 콘크리트 벽 위를 간신히 올라가, 두 다리를 바다 쪽으로 내려놓고 벽 위에 걸터앉아, 지는 해와 떠오르는 달빛과 별빛을 한꺼번에 구경했었다.

노인과 소년이 아메리칸 리그의 야구와 양키스팀의 디마지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도 책의 전체적인 흐름에 생뚱맞다고 전에는 생각했었다. 이제는 충분히 이해가 가고 남는다

쿠바 공항에 내렸을 때 어린이 야구팀이 공항에 도착했었다

기다리던 마중객들이 환호성을 지르던 기억이 아직도 귓가에 울린다. 쿠바는 야구를 사랑하는 나라이다. 선물이랍시고 아바나 교회의 어린이들에게 야구 배트와 글러브도 없이 야구공만 달랑 두고 온 것이 잘한 일인지 모르겠다.
 

주인공은 턱수염이 부슬부슬한 헤밍웨이를 생각나게 한다
 
소설의 주인공 노인의 이름은 산티아고, 산티아고라는 이름은 성 야고보의 스페인식 발음으로 스페인어를 쓰는 지역에서는 흔하디 흔한 이름이다

아바나에서 동남쪽 아래쯤에 ‘산티아고 데 쿠바’라는 도시명을 쿠바 지도에서 본 기억이 있다. 아마 아바나 다음으로 큰 도시라고 했던 것 같다. 소년이 노인에게 마시라고 가져온 아투에이 병맥주는 물을 사러 들렀던 노점상 냉장고에 진열되어 있던 쿠바의 캔맥주 크리스탈을 대신 떠오르게 한다. 무더운 쿠바 날씨에 시원한 맥주 한 잔을 상상해 본다.  

노인이 고기를 잡으러 나간 시점은 여름이 지난 9월이었다. 여름이 아닌 쿠바의 가을 날씨는 어떨지 궁금하다

아바나 항구 북서쪽의 멕시코 만류의 흐름은 대서양과 카리브해, 플로리다 해협과는 다를 것 같다. 멀리서 노인이 아바나 항구로 고기잡이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바라보던 항구의 불빛에서 말레콘 비치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앉았을 때 멀리 보이던 배의 불빛을 떠올려 본다.

소설의 주인공 노인은 턱수염이 부슬부슬한 노년의 헤밍웨이를 생각나게 한다. 이 책은 헤밍웨이의 마지막 작품이었다고 한다

소설 속 무대가 되었던 쿠바와 헤밍웨이가 직접 살면서 경험했을 쿠바, 그리고 내가 직접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꼈던 쿠바는 소설을 읽으면서 이중 삼중으로 중첩되는 재미가 더했다.
 

허무해 보일 것 같지만 허무하지 않는 삶의 메시지 전달

 
쿠바에 대한 추억을 연장하는 일 외에, 이 책을 다시 읽고 싶었던 계기가 하나 더 있었다. 헤밍웨이를 허무주의자라고 단정짓는 사람들을 위해 해명하고 싶은 내 안의 항변이 앙금처럼 사라지지 않고 쿠바를 떠나오고 나서도 한동안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소설을 읽고 감상하는 것은 읽는 독자 개개인의 생각과 해석의 몫이겠다. 그러나 <노인과 바다>는 자칫 허무해 보일 수 있지만, 전혀 허무하지 않은 삶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헤밍웨이의 정신이 오롯이 담긴 자전적 소설이라고 나는 믿는다

자살로 인생을 마감한 작가이기에 인생 자체를 허무하게 보았다는 오해를 받을 수는 있다. 작가가 정말 그렇게 생각했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작가와 작품을 꼭 동일시할 필요는 없지만, 작품과 작가의 삶을 분리할 수 없는 것 또한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좌절하지 않고 험난한 인생 바다에서 사투하는 모습 담아
 
<노인과 바다>는 헤밍웨이의 가장 말년에 지은 작품이자 가장 자전적인 소설로 문학계에서 통상 해석되고 있는 것이 보편적이다

작품에서 읽히는 헤밍웨이의 내면의 세계란, 좌절하지 않고 험난한 인생의 바다에서 사투하는 노인의 모습처럼 비장하고 숭고한 것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작가를 대신 변호하고 싶은 강한 반발심이 책을 다시 곱씹게 한다.

5미터가 넘는 엄청난 크기의 고기를 잡은 노인, 그러나 돌아오는 길에 상어 떼에 고기 대부분을 뜯기고 머리와 뼈만 앙상히 남은 채 돌아온다

사람들이 허무하다고 느낄 수 있는 매우 단순한 근거가 될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하기엔 몸도 편치 않은 노인이 85일이 넘도록 큰 고기를 잡기 위해 망망대해 바다를 향해 담대히 멀리 나갔다는 것이 허무주의와는 바닷속 깊이만큼의 거리를 느끼게 한다

불굴의 의지로 바다와 고기와 자기자신과 싸워 끝낸 성공하는 인간 승리

갖은 고초를 다 겪고서 고기를 잡고자 애쓰는 노인의 의지는 절대로 허무주의와는 비교할 수 없는 목적의식의 분명한 반영이다

불굴의 의지로 바다와 고기와 자기 자신과 싸우며 끝끝내 성공하는 인간 승리를 맛보는 것이 헤밍웨이가 말하고자 한 인생의 진정한 의미라고 주장하고 싶다.

인생은 그렇게 고달프고 어려운 항해와 같은 것이다. 비록 고기를 얻었더라고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 것이 인생이다. 끝없이 항해하는 바다에서의 모험과도 같이, 한가지 고난이 끝나고 나면 또 다른 전쟁이 우리 삶에 지뢰밭처럼 놓여 있는 것을 우리는 삶을 통해 배우며 이겨내 간다.

월척을 하고 돌아오는 길도 쉽지만은 않다. 호시탐탐 고기를 노리는 상어 떼와의 결투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런 위험과 위협은 바다 같은 인생길을 항해하는 동안 수시로 등장한다

뭍에 도달해 자리를 펴고 누울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의 삶에는 싸우고 이겨내야 할 고난과 시련이 도사리고 있다

그러나 그 싸움을 노인은 마다치 않고 끝까지 자신의 가야 할 길을 가듯 꿋꿋이 싸워낸다. 비록 육지에 도착했을 때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을지언정 달려드는 상어 떼에 작살을 꽂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은 채 고기의 한 점이라도 남기고자 있는 힘껏 몽둥이로 상어의 머리를 친다.

노인은 허무주의자와 정반대로 의지 가진 것 틀림없어
 
노인이 인생을 허무하다고 생각했다면, 절대로 고기를 잡으러 바다에조차 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노인은 허무주의자와는 정반대의 의지와 집념의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

쉽게 포기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으며 참고 인내할 줄 안다. “파멸을 당할지언정 패배할 수는 없다”고 외치며, 노인은 오늘도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담대히 나간다

그러한 노력과 치열한 삶의 의식에도 불구하고 텅 빈 배를 싣고 돌아오는 노인을 보고 사람들은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는 것 같다. 그러나 그건 오래 참을 줄 모르며, 당장 결실에만 모든 의의를 두는 성급하고 결과주의적인 사람들만이 허무함을 느끼는 게 아닌가 싶다

고기의 살점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 해도, 노인이 고기잡이를 통해 겪은 갖은 고초와 경험, 또 고기와 싸워 이기면서 끝끝내 성취할 수 있었던 그 승리감이란 커다란 고기를 결국 다 잃는다 해도 가져볼 만한 인생의 아름다운 사건이 아닌가 생각한다.

어차피 사람들은 자신의 그릇으로만 타인을 이해하고 바라보며 해석할 것이다. 텅 빈 배를 바라보는 자가 있는 반면, 비록 텅 빈 배가 되었지만 그가 바다 한가운데서 누렸던 그 처절하게도 아름다웠던 고기잡이의 순간을 보는 이도 있을 것이다. 앙상하게 남겨진 고기 뼈에서 공허함을 느끼는 자가 있다면, 한때의 영광을 찬양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나는 노인이 위대한 인생을 살았다고 본다. 그는 고기잡이를 끝내고 이제 또 다른 꿈을 꾼다. 그것은 그가 고기잡이 후에 사지가 녹초가 되어 쓰러져 잠을 자면서도 다시 무언가를 꿈꾸기 때문이다

그가 꾸는 사자 꿈을 통해 또 한 번의 인생 최고의 순간을 노인은 상상하고 갈망한다. 그럴 수 있는 노인의 꿈의 원동력은 그가 누려보았던 심연의 바다 한가운데서 맛본 삶의 희열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결과에 치중하다보면 우리는 많은 일을 하고서도 허무해져


결과에 치중하다 보면 우리는 많은 일을 하고서도 허무해지기 쉽다. 열심히 노력했다면 결과가 부족해도 만족할 수 있다. 결과 때문에 허무해지지 않으려면 허무의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을 경계해야 한다

정작 위로가 필요한 이들은 과정을 즐기지 못하고 결과에 집착하는 그들이기 때문이다. 과정이 결과보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 우리의 땀과 열정이 삶 속에 녹아 춤추었고, 그 순간을 우리는 온전히 영유했다는 데에 있다. 노인처럼 고기를 잡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면, 그 어떤 결과가 우리를 위협한다 할지라도 우리가 소유했던 그 인생의 찬란한 순간을 충분히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 쓰는 동안 나는 <노인과 바다>를 통해 작가 헤밍웨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변호하고자 했다. 허무하지 않을 인생을 노인처럼 살아야 한다는 계몽의 얄팍한 의도도 내 안에 약간은 잠재해 있었는지 모르겠다. 나의 변호와 변론에 공감해 준 독자들이 한 분이라도 있었다면 그저 고마운 일이다

노인의 불굴 의지와 그런 인간의 노력을 높이 사는 것이란, 이 글을 쓰기 전이나 지금이나 동일하게 생각하는 바이다. 아마 앞으로도 그런 신념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노인이 던졌던 푸념 한 마디가 끝까지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그는 상어 떼와 혈전의 싸움을 벌이면서 이렇게 말한다

“너무 멀리까지 나왔을 때 이미 운수를 망쳐 버리고 만 거야.” 

너무 깊이 인생의 바다에 나갔기에, 고통을 자처할 수밖에 없었던 삶에서 받았을지 모를 노인의 허무함을 이 외마디로 인해 완전히 배제할 수만은 없을 것 같다.


분수에 맞는 욕망과 그로 인해 만족이 있는 삶을


과욕이 넘치고 그것으로 인해 저마다 불행한 작금의 세상에 좀더 필요한 메시지란 분수에 맞는 욕망과 그로 인해 만족이 있는 삶이 아니었을까? 글을 닫으면서 이런 저런 상념에 사로잡힌다.
갑자기 허무함이 밀려오려 한다

헤밍웨이 한 사람을 변호할 수는 있었는지 모르지만, 내 삶조차 어디까지가 허무하지 않을 수 있는 욕망의 경계인지 매우 모호하기에, 그러한 시도자체가 조금 허무해지려 한다

노인과 바다.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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