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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11-12 12:07
[시애틀 수필-이한칠] 하나 되는 것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6,186  

이한칠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 지부 회원)

하나 되는 것

미국인 노부부의 금강석혼식에 우리 부부가 참석했다. 간혹 금혼식과 회혼식을 축하한 적은 있었지만 금강석혼식은 처음이었다.

가장 경도가 높고 아름다운 금강석에서 결혼 75주년의 이름을 따온 이유를 알 만했다. 그만큼 오랜 세월 동안 단단하게 다져진 변함없는 부부간의 사랑을 뜻하는 것이리라. 오누이처럼 서로 닮은 노부부의 해맑은 미소에서 그들의 사랑이 물씬 묻어났다

서로 원하는 것을 조건 없이 베푼 일 외에 특별한 해로의 비법은 없다고 했다. 긴 기간에 서로의 건강을 잘 보살폈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 싶다. 그때의 기억은 지금도 내 마음에 잔잔한 여운으로 남아 지나온 세월을 되돌아보게 했다.

나의 결혼식에서 한글학회 이사장 허웅 선생은 송강 정철의 <사미인곡>에 나오는 천생연분을 인용해 명료한 주례사를 하셨다. 하늘이 내린 필연의 짝을 서로 아끼고 사랑하라는 당부였다.

필연의 짝, 그리스 신화의 암수 홀몸이었던 인간이 신의 질투로 다른 몸으로 갈라진 뒤, 다시 본래의 짝을 찾는 장면이 연상되었다. 주례 말씀은 나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간직되었고, 나는 그날 이후, 매사를 아내와 함께하기로 마음먹었다. 왜냐하면, 그때 우리는 본래의 짝을 찾았으니까.

지극정성 공들여 찾은 짝과 결혼을 하면 다 이룬 줄 알았다. 연애하던 시절, 헤어지기 아쉬웠던 날들이 어디 한두 번이었을까. 둘이 함께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다 거머쥔 것 같았다.

경상도의 보수적인 집안에서 자란 나와 서울의 개방적인 집안의 아내가 서로 다른 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은 결혼 후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크고 작은 기념일까지 챙기는 아내의 형제들과 마음과는 달리 마냥 무뚝뚝한 나의 형제들이 그렇게 다를 수 있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나는 말수가 적은 편이다. 말을 아끼라는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교육 때문인지 말하기보다는 듣기를 좋아한다

아내는 말을 참 조리 있고 재미있게 잘한다. 연애하던 시절에 그녀는 말이 없는 나를 믿음직해하며 잘 따라 주었고, 나는 조잘조잘 이런저런 얘기를 정답게 해 주는 그녀가 귀엽기만 했다

그런데 웬일일까. 연애할 때는 말이 없어 듬직해 보였고, 말을 재치있게 잘해서 사랑스러웠던 서로의 장점이, 결혼 후에는 말을 안 해서 답답하고, 말을 많이 해서 잔소리가 되어 서로의 단점으로 뒤집히는 순간은 눈 깜짝할 새였다.

게다가 어머니의 맛깔스럽고 짭짤한 경상도 음식에 길든 나는 아내가 만든 싱거운 서울 음식을 마냥 맛있다고 부추길 수는 없었다. 아내는, 대기업에서 회사 일만으로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내게 어학공부 등 미래를 위한 노력을 하도록 수시로 권했다. 연애할 때는 장점으로만 여겨지던 그녀의 진취적인 제언들이 결혼 후에는 귀찮은 주문들로 느껴졌다. 내 나름의 이상적인 사랑에 대한 신념과 당면한 현실 사이의 간격은 나를 헷갈리게 했다.

그때 나는 원래의 내 신념대로 아내와 동화(同和)하기로 마음먹었다. 우선 나는 대화를 듣는 입장을 바꾸어 서로 나누는 쪽으로 노력하며, 매사에 그녀의 입장에도 서 보면서 모든 일을 풀어 나아갔다.

이래저래 내가 음식도 싱겁게 먹으려 노력하는 동안, 아내가 만든 음식의 간도 어느새 경상도와 서울의 중간쯤에 와 있었다. 그녀도 나만큼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내가 느꼈을 때, 모든 일이 조화를 이루어가며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저래 다른 소리도 내고, 화음을 맞추려 노력해 가며, 서로 아끼고 사랑해 온 지도 꽤 되었다.

결혼식 때 찍은 8밀리미터 영화 필름을 개봉하지 않은 채 간직해왔다. 그때는 영사기를 돌리는 일이 흔하지 않았으니 아예 그것을 잊고 있었다. 근래에 필름을 DVD로 전환할 수 있게 되어 나는 적이 흥분되었다. 귀한 결혼 축하선물을 뒤늦게 받은 셈이다

영상에서 수줍어하는 새촘한 신부의 자태와 해군 장교복을 입은 건장한 청년의 모습이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훨씬 더 잘할 텐데, 만감이 교차했다. 주례 말씀이 다시 생생하게 들렸다. 그 느낌으로 어렵게 찾은 나의 짝을 오래오래 사랑하겠다는 다짐을 새롭게 했다.

금강석혼식을 맞이한 노부부처럼 조건 없이 서로 사랑을 베푸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노력한다면 가능한 일이다. 부부가 동화(同和)하여 하나 되는 것, 이것은 우리가 바랄만한 고귀한 모습이리라.

우리 가훈이 일치(一致)인 것과 내가 우리 두 아이의 이름에 ’() 자를 붙여 지어준 것도 하나 되는 사랑의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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