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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9-15 13:57
[시애틀 수필- 안문자] 작지만 고마운 구두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4,754  

안문자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 지부 회원)
 
작지만 고마운 구두
 

우리 문자는 발이 오이씨처럼 예쁘구나.’외할머니는 내 발을 보며 말씀하셨다.

그런데, 그 예쁜 발은 나를 힘들게도 한다. 맞는 신발 찾기가 쉽지 않은 까닭이다. 한국 사이즈로 215, 미국에선 ‘4’가 내 사이즈다. 사람들은 눈이 똥그래지며 내 발을 내려다보곤 한다. 어쩌다 한번씩 이 작은 신발도 행세할 때가 있다. 여러 사람이 모였다 헤어질 때면 갖가지 신발이 나란히 누워있어도 쉽게 찾을 수 있는 제일 작은 신발을 먼저 꿰신고 약간 으스대본다.

구두와의 전쟁은 학생시절부터 시작되었다. 시내의 구두점을 다 쓸고 다녀도 내 사이즈는 없었다. 맞춤도 소용없다. 공장에서는 어른의 구두인데? 치수가 잘못된 줄 알고 손가락이 들락거릴 정도로 크게 만들어내곤 했다. 

몇 해 전 서울을 방문했을 때도 사정은 변하지 않았다. 구두를 사려고 명동의 구두점을 빙빙 돌아보았지만 헛수고였다.‘구두 가게를 구석구석 뒤져서라도 꼭 사고 말거야!’ 오기에 찬 나는 혼자 이렇게 외쳐댔건만 아까운 시간만 허비하고 돌아온 건 지친 피로감 뿐이었다

옷 사이즈는 나이가 들면 넉넉하게 입게 되지만 발은 오히려 작아지는 경향이 있어 구두 사이즈는 바뀌지 않는다. 때문에 구두를 살 때마다 속상하다. 가까운 사람들은 발이 비슷해서 서로 나누어 신기도 하고 자매끼리는 물론 모녀지간에도 바꿔 신는 걸 보았다.

구두점의 판매원들은 내 발 사이즈를 믿지 않는다. 추천하던 구두를 신어보게 한 후 슬그머니 들고 사라졌다가 나온다. 공략은 뻔하다. 구두의 깔창을 뜯고 작은 깔창 한 장을 더 집어넣고 의기양양한 미소를 띠며 신어보라고 한다

양복을 쪽 빼입고 유행하는 머리스타일을 한 구두점 판매원들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픽 웃는다. 아무리 찾아도 그 발에 맞는 구두는 못 찾을 거란 암시다.

이민 오기 전, 운이 좋으면 내게 맞는 구두를 만날 때가 있었다. 실수로 너무 작게 만들어 무용지물이 된 구두를 혹 임자가 생길까 해서 내놓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구두점을 지날 때마다 자세히 들여다보는 습관이 생겼다. 진열된 구두 중에 터무니없이 작은 구두가 있으면 틀림없이 내 몫이다

시애틀에서도 몇 켤레의 구두를 샀다. 노스트롬 랙이란 곳에서다. 그곳에 작은 사이즈가 있곤 했다. 그런데 요즈음엔 통 발견할 수 없다. 있다고 해도 조목만한 구두들은 하나같이 한 뼘이 되는 하이힐이나 요란한 디자인뿐이라 나이 먹은 내겐 해당이 안된다

그나마 언제부터인가 사이즈는 ‘5’부터 라고 씌어있다. 하도 딱하니까 뉴욕에 사는 딸이‘4’사이즈의 구두를 주문해 보내 주었지만 그것도 커서 반송하고 말았다. 어린이들의 구두를 살펴보다가 납작한 신발을 사면서 쑥스러웠던 경험을 털어놔도 되려나 몰라.

신발은 애초 발을 보호하거나 장식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원시시대에도 동물의 가죽이나 나무껍질로 발을 쌌단다. 우리나라의 신발은 서민들의 짚신, 나막신, 양반의 비단신, 삼신, 가죽신이 있었다는 걸 박물관 유리 진열장을 통해 보았다.  

서민의 신, 양반의 신에서는 그 시대의 사회계층과 문화, 삶의 흔적을 더듬어 볼 수 있었다. 나는 고무신 세대다. 고무신은 1910년경에 생겼다고 한다. 흰 고무신, 검은 고무신 모두 우리 민족의 각별한 풍조와 정이 담겨있다

어렸을 적에 꽃무늬나 색동무늬가 있는 고무신을 신고 졸랑졸랑 자랑하며 걸어보았던 기억이 난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고무구두라는 신발이 있었다. 검정 고무로 구두처럼 만든 신발인데 남자고무신 같아서 싫어했다

신발 한 켤레가 신분을 상승시킨 신데렐라의 유리 구두, 콩쥐의 분홍 꽃신 동화를 읽으며 얼마나 가슴이 설레었던지. 착하지만 가난하고 불쌍했던 주인공들이 신발 한 켤레로 행복해지는 이야기는 세계의 어린이들에게 아름다운 꿈을 주었으리라. 신데렐라의 이야기는 놀랍게도 세계에 천여 개의 버전이 있다고 하지 않던가.

내 작은 발을 감싼 구두를 본다. 어려운 경로를 거쳐 내게 온 그들이 대견하다. 신는 날부터 발에 적응하느라 구두도 고생한다. 몸무게를 마음 놓고 구두에게 맡기며 내 발은 편안해지기 시작한다

작은 내 구두는 비포장도로의 자갈길이나 물이 고인 험한 길도 크고 값진 구두 못지않게 묵묵히 참으며 주인의 발을 안전하게 보호해준다. 내가 어렵고 힘들지만 꼭 가야할 곳을 갈 때 구두는 얼마나 가벼운지, 망설이며 억지로 가는 길은 구두도 내 마음처럼 무거워하는 것 같다

구두가 순하게 내 발처럼 느껴지면서 정이 든다. 고맙기도 하다. 몇 켤레 안 되는 구두를 꺼내 놓고 깨끗하게 정성껏 닦는다.

우리 몸의 가장 낮은 곳에서 봉사하는 구두는 우아한 모자나 화사한 옷처럼 눈에 금방 띄지 않는다. 그러나 멋스러운 모자와 몸에 걸친 명품 옷도 구두가 받혀줌으로 그 진가가 드러난다

그래서 어떤 이는구두야 말로 외모를 완성시키는 결정품이다. 진짜 멋쟁이는 구두로 알아본다.’ 고 말했다지 않는가.

구두 선택이 적은 나는 멋쟁이 되기를 포기한다. 그러나 고마운 작은 구두로 나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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