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월 29일 (토) 로그인 PC버전

시애틀N 최신 기사를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2021년 1월 시애틀N 사이트를 개편하였습니다. 열람하고 있는 사이트에서 2021년 이전 자료들을 확인 할수 있습니다.

시애틀N 최신 기사를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시애틀 수필-공순해] 고맙습니다

시애틀N 조회 : 3,929

공순해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 지부 회장)

 
고맙습니다

 
둑두두, 덱데그르르. 뒤뜰 덱에 뭔가 떨어지고 있다. 얼른 창으로 내다봤다. 산들바람이 지나가는 나무 아래 솔방울들이 갓 태어난 아기들처럼 뒹굴고 있다. 산부인과 신생아실 들여다보듯 자세히 내다보니, 몸을 푼 소나무들이 지친 듯 만족한 듯 바람에 흔들린다

올핸 작년보다 많은 솔방울이 떨어진다. 생장에 위협 느낄 무엇이 있었던가. 있는 힘을 다해 분만을 끝낸 뒤, 바람에 몸을 내맡기고 선 소나무들이 대견해 보인다. 흥부댁네 모습이 저러했을까? 

예전엔 가난한 집에 애가 태어나면 제 먹을 건 제가 지니고 나온다고 했다. 하늘님이 인간을 내면 먹을 것도 함께 내신다고. 그리고 대개 그런 가정엔 어머니의 인내와 희생이 별전(別傳)처럼 따라붙었다. 자식을 생산하고, 품어서 생육하기에 어머니의 골수가 빠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엔 꼭 그렇지 만도 않은 것 같다. 자연스레 생각이 예전 살던 곳으로 돌아갔다.

이민자들로 형성된 거리엔 여러 인종과 계층이 섞여 살았다. 그들은 가난할수록 아이들이 많았다. 그리고 주 수입원은 웰페어였다. 하니까 서로 농담 주고받길, 수입이 더 필요하면 애 하나 또 낳아, 했다. 말하자면 가족 두당(頭當) 얼마의 수입이었다. 그래서 가게에 와 자기들끼리 농담을 주고받을 때면 흥부네를 떠올리곤 했다.

그러나 그들은 흥부댁네와는 거리가 멀었다. 어미가 랄리팝을 사길래 그게 애 입으로 들어가나 했더니, 자기 입으로 들어갔다. 깜짝 놀라 쳐다보는 내 눈길을 의식했던지 그녀는 말했다. 내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을 느끼지. 그러니까 내가 먼저, 맞지? 실소를 흘리는 내 반응을 그녀는 긍정으로 인정한 듯 한입 달라고 보채는 아이를 잡아채 끌고 가게를 나갔다.

어미가 우선인 얘기는 꼭 그들 만도 아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내 당숙모 중에도 그런 분이 있다. 625 피란길에 당숙모가 돌아가셨다. 하지만 당숙은 귀향 길에 새 당숙모를 데려오셨다.

그리 쉽게 사는 분이니 세상이 다 쉬웠다. 그분에게 중요한 건 충녕대군 자손 여부 정도였다. 적은 수입이었건만 약주가 떨어지질 않았다. 그 습성은 날로 심해져 종래는 알코올 중독이 됐고, 그 후유증으로 돌아가셨다. 새 당숙모는 당숙이 알코올 중독으로 헤매고 있을 때 집을 나갔다. 가난한 집, 흥부 새끼 늘듯 가난이 는다고 아이 셋 있던 집에 둘을 더 보태 주고서였다.

밑의 육촌 둘은 성장할 때까지 재혼한 엄마를 찾아가곤 했나 봤다. 그러나 그쪽도 넉넉하진 못했던 듯 찾아오지 말라고 했단다. 끼니도 간 곳 없이 어깨를 늘어뜨리고 앉아 하염없던 육촌들 모습이 아련히 떠오른다. 몸도 맘도 고팠을 것이다. 엄마의 행복에 앞서 인륜을 저버린 일이라고, 어린 내 마음에도 울컥해지던 기억이 난다. 솔방울 뿌려 놓듯 자식만 뿌려 놓고 간 당숙모는 무슨 심사로 그랬을까?

하지만 인간은 솔방울 이상이지 않을까. 14 후퇴할 때, 무슨 이유에선지 아버지는 안 계셨다.

그 피란길에서 큰오빠가 병이 났다. 새총에 무릎을 맞은 적이 있는데, 먼 길을 걸으니 그게 덧났던가. 점점 무릎이 부어올라, 종래는 걷지 못하게 됐다. 적군의 추격은 빨라지고, 아이는 걷지 못하고, 그러자 일행들이 촉박한 나머지 요구했단다. 함께 죽을 거 아니면 아이를 버리고 가자고. 그때는 실제로 버리고 간 아이들도 많았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들을 지켰다. 머리에 인 보따리를 저만치 가서 내려놓고, 도로 돌아와 아이를 업고 그 자리까지 가서 내려놓길 반복해 아이를 업어 날랐다. 일행의 비난이 빗발쳤다. 그러나 어머니는 단호하게 끝까지 아들을 지켜냈다. 그렇게 해서 예산 피란민 수용소까지 걸어가셨다고 했다.

이 전설 아닌 전설은 들을 때마다 감동이었다. 그러나 나이 들고 보니, 이젠 공평한(?) 시각에서 그 일을 보게도 된다. 혹시 그건 나아가 종족 보존 본능의 발로가 아니었을까? 생육환경이 나빠지면 소나무가 더 많은 솔방울을 매달듯, 위협을 느끼면 본능으로 종족을 끌어안는 게 모성이다

육촌들이 절박한 상황에 처했다면 아마 그 당숙모도 달려와 자식을 품지 않았을지. 솔방울인 듯, 그러나 솔방울 이상인 게 인간 아닌가.

올핸 유난히 솔방울이 많다. 찌그러진 밤송이같이 못나 보이는 솔방울들. 혹시 저 솔방울 중 하나가 나 아닐까? 맞아요! 내 생각을 지지하듯 뒤뜰 덱에서 또 소리가 난다. 둑두두, 덱데그르르.





© HHB Media LLC.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