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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문자/포인세티아

시애틀N 조회 : 6,366

포인세티아가 물결친다. 크리스마스의 계절이 돌아왔다며 숨어있던 빨간색, 분홍색, 하얀색의 예쁜 꽃들이 약속이나 한 듯 짠~하고 모여드는 것 같다. 앞뜰에 낙엽이 쌓이고 쓸쓸한 바람이 우수수 가슴을 스치면, 세월은 속절없이 잘도 가누나, 하며 가슴이 서늘해지다가도 불현듯 포인세티아를 만나면 기분이 좋아지곤 한다.

초록색의 싱싱한 이파리 위에서 활짝 피어있는 포인세티아는 무척 자신만만한 표정이다. 더군다나 포인세티아가 있는 곳에는 캐럴이 있어서 마치 자기들이 노래를 부르는 것 같다. 그런 포인세티아를 보면 나는 괜스레 싱숭생숭해져서 무슨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는데 언제부터인가 포인세티아가 나를 쓸쓸하게 한다.

크리스마스의 계절인 그 해 12월, 우리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시고 우든빌의 몰-백 화원에 간 일이 있다. 짙은 꽃 향기 속에 취해서 들어서니 어머나! 꽃 물결이 바다처럼 넘실대고 있었다. 상상하지 못했던 엄청난 규모였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화원엔 포인세티아가 꽉 차 있었다. 군데군데 피라미드 같은 모습의 꽃들이 어우러져 쌓여 있었다. 포인세티아는 천정에도 주렁주렁 달려 있고 바닥에도 크고 작은 화분 속에서 나열되어 있었다.

이 많은 꽃들이 때맞춰 활짝 피어 있으니 그 정성이 오죽했으랴. 장삿속도 있겠지만 관광의 목적도 있는 것 같았다. 얼마나 친절한지 피곤한 다리를 쉬도록 곳곳에 커피와 녹차, 과자까지 예쁘게 놓여 있었다. 꽃으로 장식된 찻집 같았다. 즐거운 우리들은 와, 와…. 감탄하며 꽃 사이를 거닐다가 나른하게 앉아 차를 마셨다. 2001년 12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꼭 일 년 전이었다. 그 다음해에 아버지가 하늘나라로 가실 줄 어찌 알았겠는가.

포인세티아는 올해도 어김없이 쏟아져 나와 있다. 이제부터는 내 세상이라며, 크리스마스 장식으로는 뭐니 뭐니 해도 우리가 최고라고 뻐기는 것 같다. 포인세티아는 100년 전 멕시코 남부에서 죠엘 포인세트란 식물학자가 신기한 이 야생화를 발견하여 미국으로 옮겨와 키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자신만만한 표정의 넉넉한 꽃은 분명히 꽃인데 꽃이 아니란다. 꽃을 보호하는 꽃받침의 임무를 띤 잎이라니 고개가 갸우뚱. 그래서 포인세티아를 잎사귀가 녹색과 붉은색으로 된 식물이라고 하나보다. 잎 가운데에 박혀있는 구술 같은 알맹이들이 꽃이란다. 일종의 방울꽃이다.

알맹이들은 한 개의 암꽃과 여러 개의 수꽃으로 뭉쳐있는데 단지 한 개의 암꽃을 위해 많은 수꽃들이 존재한다니 암꽃은 참 행복하겠다. 부잣집 맏며느리 같은 큼직한 잎들은 이 작은 수꽃들과 암꽃을 위해 존재하는 꽃받침일뿐이라니 얼마나 착한지. 아름다우면서도 겸손한 잎이 방울꽃보다 더 화려하고 예쁘다.

다행이 사람들이 잎을 꽃으로 봐주니 위로가 되려나? 크리스마스를 축하하기 위해 피는 포인세티아는 꽃말까지 <축복> 이란다. 방울꽃들을 위해서, 크리스마스의 장식을 위해서, 크리스마스를 축복하는 선물로도 쓰이니 참 기특한 꽃이다. 포인세티아가 속삭인다.

“나는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서 열심히 피었어요. 교회의 강단에서, 음악회에서, 병원에서, 식탁에서, 상점에서 나를 예쁘게 사용했으면 좋겠어요. 아픈 사람에게, 외로운 사람에게, 슬퍼하는 사람에게, 용서를 빌며 화해하고 싶은 사람에게 가면 나는 더 행복하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를 선물하세요.”

크리스마스 캐럴이 은은히 울려 퍼지는 가운데 포인세티아가 살랑살랑 웃고 있다.
그러자 잠시 쓸쓸했던 나의 가슴에 들어와 살며시 속삭인다. 쓸데없는 생각일랑 하지 마세요. 12월은 따뜻한 마음으로 사랑을 나누는 계절인걸요. 나를 고르세요. 멋진 크리스마스 선물이 될 거예요.

어느새 나도 포인세티아를 닮아가고 있다. 그리고는 그들 중 제일 예쁜 것으로 골라 계산대로 향했다. 향긋한 향기는 서늘했던 나의 가슴을 위로하며 성탄을 기다리는 기쁨으로 채워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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