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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11-01 17:24
[시애틀 문학-김윤선 수필가] 트릭 혹은 트릿(trick or treat)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5,726  

김윤선 수필가

 
트릭 혹은 트릿(trick or treat)

 
띵똥, 첫손님이다. 순간 딸 아이와 내 눈이 마주치면서 얼른 문을 열었다. ! 시커먼 배트맨 귀신이 웃고 있다.

trick or treat.(과자를 주지 않으면 장난칠 거야)

딸아이가 얼른 과자 통을 내밀었다. 귀신이 익살맞은 표정으로 과자 하나를 집어 들었다.

“땡큐!

배트맨 귀신이 돌아가고 우리는 야호, 손바닥을 부딪쳤다. 미국 와서 제대로 맞은 첫 할로윈 데이다. 아파트에서 살 땐 찾아오는 아이들도 없었다. 하긴 이민 온 첫해, 아이들 서넛이 무리를 지어 현관문을 두드렸다

아이들이 뭐라고 하는데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고, 준비해 놓은 것도 없어서 급한 김에 1불씩 나눠 주었다. 아이들이 어색해하며 돌아가는 걸 지켜보며 무척 민망했다.

초콜릿 하나로 이곳 문화를 접하는 재미가 여간 쏠쏠하지 않다.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귀신이 모두 200여 명이나 다녀갔다. 사다 놓은 과자가 모자라 딸아이가 인근 마켓에서 또 한 봉지를 사왔다.

할로윈 데이는 죽은 자들이 자기 영혼을 뉠 아이를 찾아 다니는 통에 부모들이 아이를 뺏기지 않으려고 과자와 초콜릿으로 귀신을 달래는 날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한국에도 저 비슷한 풍습이 있다. 동짓날, 그 날은 음기가 양기에게 자리를 내주어 실질적인 새해가 되는 날이다. 붉은 색이 잡귀들을 쫓는다고 해서 팥으로 죽을 쑤어 집안 으슥한 곳에 뿌린다. 그리고는 새해의 나이에 맞춰 새알을 먹는다. 동지에 맞춰 담가 놓은 동치미 맛이 이때쯤 일품이다.

아무리 허황한 풍습이라 해도 몇 백 년, 몇 천 년 동안에도 그것이 사라지지 않는 걸 보면 사람 사는 모습이란 게 그간의 세월 속에서 별반 달라지는 게 없는 모양이다. 하기야 따지고 보면 그간의 세월이란 것 또한 먼 우주의 세계에서 본다면 찰나에 지나지 않을 터이니.

상술이 겹쳐서인지 남자 아이들은 머리에 뿔 달린 도깨비 복장과 검은 망토를 두른 배트맨 복장이 주류이고, 여자 아이들은 귀신인지 파티장의 공주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앙증맞은 드레스 차림과 해리포터에 나오는 학생 복장이 많다

얼굴에 숯검정을 칠해 무섬증을 더하려 하지만 되레 귀엽고 재미있다. 한 많은 우리네 처녀귀신들과는 달리 장난기가 줄줄 흐르는 각양각색의 개구쟁이 귀신이 많은 걸 보면 귀신들의 세계도 나라마다 다른 모양이다.

옆집 로라네 아이들도 왔다 갔다. 나는 미처 저들을 알아보지 못했는데 저들이 먼저 내게 아는 체를 했다. 저희와는 다른 생김새 때문에 볼 때마다 머쓱해 하더니 역시 초콜릿의 힘이다. 아이들은 바구니에서 저마다 초콜릿을 하나씩 집어 간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게 아이들은 과자를 꼭 한 개씩만 가져가는데 그 와중에서도 남을 위한 배려가 깔려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며칠 전부터 옆집 현관엔 노란 호박 등이 등장했다. 속을 파낸 노란 호박에 눈 모양을 파내어 안쪽에 초를 넣어 놓으니 꼭 도깨비 눈을 닮았다. 사대천왕이다. 이 무렵에 마켓마다 산처럼 쌓여 있던 노란 호박의 쓰임새를 알게 한다.

또 다른 옆집엔 현관 앞에 인조 거미줄을 쳐서 귀신의 집 장식을 해 놓았다. 하필이면, 처음엔 약간 섬뜩했으나 자세히 보니 장난기가 돈다. 귀신이 사람을 해하기보다 함께 노는 것이다

그 때문인지 이곳의 공동묘지는 동네에 인접해 있다. 아예 동네 한가운데 자리하는 곳도 있고, 도심 대로변에도 있다.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묘지와 함께 보내는 산 사람의 밤이 어떨지, 아직 내게는 가늠이 되지 않는다. 봉분을 높이고, 키 큰 비석을 세우고, 형식을 갖춘 제물로 죽은 자의 배를 불리기보다 묘 앞에 놓인 꽃이 허물없다.

좀체 사람 사는 기척이 없더니 오늘은 집집마다 문을 열어놓고 불을 환하게 켜놓았다. 짓궂은 아이들의 봉변을 막을 겸 아예 과자 통을 내놓고 외출하는 집도 있다. 그래도 세월의 흐름엔 어쩔 수 없는지 불 꺼진 집이 해마다 늘어난단다. 또 하나는 아이들의 주머니 속 과자가 그게 그거라는 것이다

예전에야 엄마들이 손수 만든 과자들이어서 집집마다 맛과 종류가 달랐겠지만 요즘엔 엄마표(Made in Mom) 과자를 꿈이나 꿀 일인가. 그래도 아이들은 구걸하는 재미를, 어른들에겐 추억을, 무엇보다 상인들에겐 돈을 벌게 할 테니 “trick or treat”은 여전하지 싶다

나 또한 이곳의 문화에 젖으려면 아직은 문 두드리는 귀신들을 기다려야 할 터, 내년엔 과자 봉지를 더 늘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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