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를 타다 보면 가끔 이런 경우가 있다. 앞자리에서 엄마 품에 안긴 아이가 뒷자리에 앉은 나를 난데없이 빤히 쳐다볼 때가 있다.
비단 버스 안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리라. 살다 보면 가끔씩 어린 아이들이 아무 이유없이 빤히 어른들의 눈을 쳐다보는 상황을 우리는 제법 겪게 된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다. 난 그런 일이 생기면 보통 아이의 시선을 외면하기보다 그 아이의 눈을 같이 쳐다본다. 일종의 눈싸움이 시작되는 셈.
하지만 난 그 싸움에서 번번이 아이에게 지고 만다. 초반 기세등등한 모습은 조금만 시간이 흘러도 맥이 풀리고 만다. 어느 순간부터 내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지기 때문이다.
'순수'도 무기다. 순수가 강력한 무기일 수 있는 건 그것을 보호하려는 대중의 일반적인 심리 때문 아닐까.
여기서 말하는 순수란 어린아이 같은 '순진무구(純眞無垢)'를 의미함을 미리 밝혀둔다. 전문용어로 '동심(童心)'이라 하기도 한다.
그렇다. 어린아이가 보호받아야 하듯이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러한 순수를 보호하려 한다. 바로 인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순수를 보호하려는 대중의 일반적인 심리는 그것이 고상한 어떤 가치이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지 않는다. 그게 아니라 어느 정도 자란 인간들은 대체로 그것에서 점점 멀어지기 때문에 오히려 순수를 보호하려는 게 아닐까.
나 같은 경우 어린 아이의 두 눈을 보면 '백지장'이 떠오른다. 아직 아무 것도 그려지지 않은 순백의 상태.
물론 나도 그런 때가 있었다. 하지만 내 삶의 백지장은 마흔 둘의 나이를 먹는 동안 속세의 욕망들로 가득 차 순수성을 잃어버렸고, 이젠 좀처럼 하얀 부분을 찾기가 어려워졌다.
난 예전 그 순수한 동심에서 얼마나 멀리 왔던가. 멀어진 그 엄청난 거리 때문에 아이의 눈을 쳐다보기가 언제부턴가 두려웠던 것이다.
순수는 가끔 무시무시하다. 때론 그 어떤 공포영화보다 무섭다.
이쯤에서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다. '바바라 오코너'의 원작소설을 영화화한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아이들로 인해 예쁘고,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그 아이들의 순수한 동심으로 인해 어른들에게는 굉장히 무서운 영화다.
시쳇말로 가볍게 보기엔 너무도 어마어마하고 으리으리한 영화다. 개인적으로는 마치 버스 안에서 엄마 품에 안긴 순수한 어린 아이의 두 눈과 마주치는 느낌 같았다.
물론 순수한 아이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가 어디 한 둘이랴. 하지만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은 순수한 동심의 시선으로 자본주의를 바라보며 우리가 지금 얼마나 무시무시한 세상에 살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어느 순간 아빠와 함께 집이 사라져버린 지소(이레)는 동생 지석(홍은택)이랑 엄마(강혜정)랑 봉고차에서 지내게 된다.
그러기를 어느 새 한 달. 이제 "딱 일주일만 있다가 이사를 간다"는 엄마의 말은 더 이상 믿을 수가 없다.
하필 자신의 생일까지 다가오면서 지소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 생일파티를 하기로 했던 약속 때문에 고민에 빠지게 된다. 결국 지소는 단짝 친구인 채랑(이지원)이와 힘을 합쳐 집을 살 방법을 찾기로 결심한다.
우선 지소는 동네 부동산에 붙어있는 집들 중 '평당 500만원'이란 글귀가 적힌 아담한 단독주택을 목표로 정한다.
그 글귀를 보고 지소와 채랑은 그 단독주택이 평당이란 지역에 있고, 가격은 500만원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그 정도면 아담하고 예뻐 친구들에게 자랑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
때 마침 지소는 잃어버린 개를 찾아주면 사례금으로 500만원을 준다는 때 지난 전단지를 보게 되고 '개를 훔친다→전단지를 발견한다→개를 데려다 준다→돈을 받는다→행복하게 끝'이라는 구체적인 계획까지 세운다.
그리고 엄마가 일하는 '마르셀'이라는 이태리 음식점 사장의 개를 훔친 뒤 찾아 준 것처럼 꾸며 사례금 500만원을 챙기기 위해 실행에 옮긴다.
|
|
보시다시피 대강의 스토리만 봐도 우선 웃음부터 나오는 게 이 영화의 매력이다.
물론 세 꼬마주인공 지소와 채랑, 지석의 귀여운 모습만 봐도 웃음이 절로 나오지만 본격적으로 웃음 터지기 시작하는 부분은 아마도 부동산 앞에서 지소와 채랑이 나누는 대화일 테다.
'평당 500만원'이라고 적힌 동네 부동산 광고를 보고 평당이 경기도 분당 옆에 있는 지역이고 500만원이면 집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의 순진한 모습은 너무 진지해서 끝내 웃을 수밖에 없다.
이후 아이들이 개를 훔치는 과정도 많은 웃음을 주며 보는 이들을 미소 짓게 만든다.
비단 아이들뿐이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어른들도 그다지 심각하거나 나빠 보이지 않는다.
지소와 지석이를 봉고에서 키우지만 엄마의 표정은 늘 밝다. 악역이라고 해봐야 고모(김혜자) 소유의 마르셀을 뺏으려는 조카 수영(이천희)과 박 이사(이기영) 정도인데 영화는 그들도 그리 나쁘게 묘사하지 않는다.
이처럼 피상적인 분위기만 봤을 때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은 마치 한 편의 동화처럼 사랑스럽고 행복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영화에 빠져 연신 행복한 미소를 짓다가도 잠시 눈을 돌리면 갑자기 섬뜩해지는 게 이 영화의 전혀 다른 특징이다.
자. 그럼 이제부터는 잠시 눈을 돌려보자.
|
|
영화 속에서 구체적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지소 아빠는 다니던 회사에서 쫓겨난 후 피자집을 차렸다가 대기업의 횡포에 망해 빚더미에 앉게 됐음을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아빠는 지금 빚쟁이들을 피해 처자식까지 버리고 도망 다니고 있는 셈. 하지만 어린 지소는 아빠가 집을 나가지 않고 차라리 엄마가 집을 나갔으면 봉고에서 살지 않아도 됐을 거라고 아빠를 그리워하며 울먹인다.
아직도 영화 속 아이들의 귀여운 모습에 웃음이 나오는가.
영화 속 어른들의 세계도 잠시만 눈을 돌리면 섬뜩하다. 마르셀 주인은 조카 수영과 박 이사의 사기행각으로 순식간에 재산을 날리게 된다. 잠시 뒤 마르셀에는 온통 빨간 차압딱지들이 붙는다.
그 모습을 보고 지소는 자신의 가족들이 집에서 쫓겨나고 아빠도 집을 나갔던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섬뜩한 장면은 내 집 장만을 위해 엄마가 어린 지소와 지석을 데리고 폐가로 들어가는 장면이다.
엄마는 버려진 집을 구입한 집이라고 아이들을 속여 하룻밤을 지낸 뒤 다음 날 다시 그 폐가에 들어가려 한다.
하지만 폐가 출입문은 굳게 닫혀 못질이 돼 있었고 벽에 이런 글귀까지 적혀 있었다. "걸리면 죽는다."
그러자 아이들 앞에서 더욱 부끄러워진 엄마는 소리친다. "이정도도 못 봐줘! 어차피 살지도 않는 집이잖아!!"
영화와는 달리 모두 명백한 현실이다. 우리는 지금 이런 세상에 살고 있다. 아직도 이 영화가 사랑스러운가.
결국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에서 유일한 악당이라면 자본주의의 냉혹한 현실이 아닐까.
자본주의의 현실이란 게 그렇다. 뺐지 않으면 빼앗긴다. 착하게 살면 병신을 만들어 버린다. 패자부활전도 없다.
|
|
이쯤 되면 500만원으로는 결코 집을 살 수 없는 현실에서 집을 살 수 있다고 믿는 지소와 채랑의 귀여운 고군분투는 점점 서글퍼지기 시작한다.
더불어 엄마의 밝은 모습도 밝아서 이젠 슬퍼진다. 심지어 이런 생각까지 든다. 500만원으로 집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의 순수한 동심이 냉혹한 자본주의의 현실에 머지않아 짓밟힐 거라 생각하면 끔찍하기까지 하다.
아니, 사실 이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이솝우화 속 한 이야기를 먼저 소개하면서 비극적인 현실을 다루고 있음을 미리 암시한다. 그 이야기는 이렇다.
사자와 늑대, 독수리의 괴롭힘이 지긋지긋했던 토끼들은 이렇게 살 바엔 차라리 죽는 게 낫다 생각하고 호수에 몸을 던진다.
하지만 호수에는 개구리들이 있었고 개구리들은 토끼들이 뛰어 들자 놀라 도망간다.
선생님은 이 이솝우화의 주제에 대해 자신보다 더 나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항상 존재하니 어려운 일이 있어도 낙담하면 안 된다고 설명하지만 지소는 당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토끼는 토끼끼리, 개구리는 개구리끼리 비교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토끼와 개구리를 같이 비교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는 논리였다.
맞는 말 아닌가. 가난하다고 사람을 소와 비교할 수는 없지 않는가.
마침내 지소는 꿈속에서 그 이야기를 만든 이솝 아저씨를 만나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제일 불쌍한 건 토끼도 아니고, 개구리도 아닌 집도 없는 나라고. 집이 있는 아이들은 절대 모른다. 집이 있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세상은 늘 아이들에게 사기를 친다. 500만원이면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집이 사실은 5억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지소와 채랑은 얼마나 허탈할까.
자본주의는 사자고, 늑대고, 독수리다. 토끼같은 동심을 잡아먹기 위해 오늘도 매복 중이다.
어차피 토끼같은 자기 자식들이 살아갈 세상인데 왜 우리 어른들은 자꾸만 이런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일까. 이러니 출산율이 자꾸 떨어질 수밖에.
2014년 12월31일 개봉. 러닝타임 109분.
기사제공=뉴스1(시애틀N 제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