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순해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지부 회원)
깨어나라
늙은 사람이 된 것은 저절로, 거저 된 일은 아니다. 그동안 많은 세월을 살았고 또 견뎠기에 늙은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내가 늙은 사람이 된 걸 나는 불평하거나 후회하지 않는다.
모 기자의 칼럼을 읽다가 며칠 전 들었던 한국의 잡지 편집자의 말이 저절로 떠올랐다. 요즘은 나이가 어린 것만으로도 경쟁력이 있다는 얘기, 들어보신 적 있으시죠? 그 말을 들은 순간, 후딱 스치고 지나가던 생각, 요즘은 미국이고 한국이고 나이도 어젠다가 되는구나.
돌아보니 나이와의 투쟁사는 일찍이 대학 때부터다. 2년 늦게 입학한 대학에서 나이가 참 걸리적거렸다. 고교 2년 후배, 그것도 학교 도서관에서 함께 일했었기에 친근하게 날 언니라고 불렀던 그 애는 하필 같은 과였다. 난처하기는 피차 마찬가지. 서먹함을 먼저 푼 건 나였다. 언니라고 하지 말고 그냥 이름 불러. 앞으로의 4년을 대처하는 나의 자세였다.
그 이래 나는 나이에 상관없이 뜻만 맞으면 친구가 됐고, 그 애와 어울려 4년간 동아리 활동을 했다. 동아리를 함께 하던 타 대학의 연하 남학생들은 남자들의 세계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그런 나를 대인배로 대접했다. 이후 내 머릿속에선 나이에 관한 개념이 정체를 일으켰다. 상대의 나이를 물어본 적이 없다. 나이를 개의하지 않는 내력의 전말이다.
한데 시애틀에 오고 교회에 나가며 젊은 세대의 활동을 지켜보다 의외의 것을 발견했다. 안면을 트면 던지는 첫 질문, 몇 년 생이세요? 그리고 그들은 곧바로 서열을 정리했다. 언니 형 동생을 깔끔하게 정리해 사회적 유대 관계를 형성했다. 그 서슴없음이 감탄스러웠다. 내가 한국 사회를 떠나 있던 사이 그렇게 변화됐구나, 인정하며 풍속의 변천을 새삼 실감했다.
하지만 그들은 장유유서란 사회적 질서를 유지하는 대신 자신들의 의사를 표현하는 데는 거침이 없다. 그런 현상의 발로가 한국 사회에선 진보와 보수의 이름으로 연령층이 나뉘어 진영 싸움을 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해서 노인들은 댁에 가서 쉬시라는 발언으로 유망 대권 주자가 낙마하는 일도 일어났다. 진보가 진군한 이래 보수는 바스러져 낙엽이 됐다. 연명 수준이다.
세대 갈등. 연장(年長)들은 내가 이러려고 지난 세월을 그리 헌신하며 살았던가 당혹스럽고 소장(少壯)들은 가로막힌 벽이 울화통 터지니 비키라고 아우성이다. 수직 사회에서 수평 사회로의 이동에 값을 치르는 중이라고나 할까.
미국의 보수 진보의 기준은 이념이어서 수평적이건만, 한국은 나이가 기준이어서 수직적이다. 이 수직적인 사고방식으로 해서 소란인 건데 좀 어이없기도 하다. 진보 그들은 보수의 신세를 단단히 진 세대다. 나라를 위해 옳은 일한다는 자부심이 팽배해 돈 떨어지거나 몸을 숨길 데가 없으면 삼촌 고모 이모들을 찾아다니며 몸 숨기고 술과 국밥을 얻어먹고 용돈도 타 썼다. 그것도 거침없이 두둑이 요구했다. 공평한 세상으로 바꾸려 한다는 그들의 행태는 당당했다.
기성 세대는 앞으론 말리면서도 뒤로는 애끈하게 그들을 챙겼다. 그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던’ 힘의 뿌리였다. 한데 이제 와서 당신들은 판에서 나가라? 남의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고 제 할 말만 하던 386 세대인 조카에게서 오늘을 예견했어야 했다. 누군가는 이런 그들을 독재를 밀어붙인 무용담과 진지전의 추억으로 살아가는 세대라고 한다.
흘러간 시냇물은 돌아오지 못한다. 더욱이 그 시냇물 위에 벽을 세울 수는 없다. 한데 진보는 그 위에 벽을 세웠다. 벽을 허물고자 투쟁했던 그들이. 벽을 세우는 한 그들은 진보가 아니다. 똑같은 보수로의 역행이다. 게다 그들은 요즘 유행하는 ‘라떼는 말야’의 세대다. 자기보다 연하인 상사를 용납 못하는 꼰대들이기도 하다. 성취에 빠져 내 진영만 있고 너는 보이지 않으니 겸손하지 못 하다고 공격을 받기도 한다.
한국 내에선 수상 자격을 50대 이하로 제한하는 수필문학상도 있다. 젊은 수필을 육성하는 것이라는데 이거야말로 벽을 세우는 차별적 사고가 아닐지. 예술에선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는 능력, 즉 상상력이 경쟁력이다. 상상력은 나이순이 아니다. 공의와 정의가 물 같이 강 같이 흐르는 아모스의 꿈은 정말 요원한 걸까.
아침마다 나는 새로 태어나기 위해 내 안의 새로움을 꺼내 든다. 새로 태어나는 한 나는 진보다.
아침마다 나는 말씀을 읽는다. 깨어나라. 완전히 죽기 전에. 아직 조금 남은 힘이 있을 때 네 자신을 일으켜 세워라. 내가 글을 쓰는 이유다. 나는 나이 먹는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