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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1-01 18:12
[신년수필-박순자] 어느덧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2,581   추천 : 0  

박순자(워싱턴주 기독문인협회 부회장)

어느덧

지나고 보니 너무 빠른 세월이었다. 십팔 년이란 기간이 잠깐 꿈을 꾼 듯싶으니 말이다.  처음엔 망설였던 결정이었다. 젊은(?) 중년의 나이에 걸맞게 자신을 위해 계획을 세워 즐겨야 할 시기였으니 당연히 나름대로 고심했다. 게다가 바보 같은 선택으로 보람된 삶은커녕 후회라는 멍에를 쓸지도 모른다는 주위의 노파심 어린 충고도 만만치 않았다.

남편의 주장도 있었다. 그러나 삶을 돌아본 나의 죄책감 때문에 이 일을 받아들이는 것이 최선의 길로 여겨졌다. 

선천적으로 아이들을 보면, 예뻐 어쩔 줄 모르는 그런 스타일은 아니었다. 그저 덤덤하게 좋아하는 노력형이었다. 내 자식들을 키울 때도 의무적인, 사감 선생님같은 모습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그러니 금쪽같은 내 새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등등의 표현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 같다. 그런 후회 때문에 이제 와서 손주들을 돌봐 준다는 것이 어울리는 결단일까 은근히 걱정되는 상황이기도 했다. 

!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나에게서 품어 나오는 사랑의 열기가 손주들에게 쏟아졌던 기적(?)에 나 자신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내 자식들에게는 결코 경험 못한 승화된 사랑의 수고와 희생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와 몸에 밴 손주 사랑이었다.

왜 손자 손녀들은 귀엽고 예뻐, 무조건 잘해주고 싶을까? 책임감이 없어서, 아니면 사랑의 도구로만 사용되는 것이기 때문일까? 흔히들 말한다. 글쎄, 나의 인생 여정에서 자식들에게 못한 아쉬움을 손주들에게 보상하라는 기회의 은혜이지 싶다. 

아이들을 돌보는 동안에는 즐거움과 기쁨의 연속이었다. 어린 손주들에게 시냇물은 졸졸졸…’ ‘개울가에 올챙이…’ 숲속의 재주꾼 코알라…’  고요한 밤…’ 등 노래를 율동과 함께 가르치면서 행복한 웃음 속에 세월의 흐름을 잊었고, 엔도르핀의 날들이었다.  그러니, 어쩌다 며느리와의 불협화음이 있어도 눈 녹듯이 사라지고, 친밀한 관계가 형성되는 과정이 되었으리라. 

꼬맹이들을 밴에 태워 여기저기 놀이터를 찾아 다닐 때가 많았다. 차 안에서 깔깔거리며 웃는 소리는 마치 은쟁반에 구슬이 굴러가듯, 아이들만의 독특한 음성이기에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얼마나 지났을까. 학교에 다니는 나이가 되니 학교, 운동장, 수영장, 도장 등 픽업 다니며 아이들 활동에, 젊은 부모님들 틈에 끼여 손주들을 응원하는 재미에 운전도 힘든 줄 몰랐었다. 세월이 흐르니 차 안에서 깔깔 웃던 아이들이 점잖게 앉아 책을 읽거나 침묵의 흐름으로 일관했다

이젠 우리들의 손길과 돌봄에서 자유로워져 각자들의 자립심이 생기니, 섭섭했지만 은퇴시기도 뒤따랐다. 아쉬운 마음이 엄습해왔으나 손주들의 성장과 더불어 완전 은퇴가 되었다. 

십 팔 년이란 세월을 손주들과 동고동락했으니 보고픈 정때문에 견디기 어려우리라 생각되었다. 그러나 뜻밖이었다. 자고 싶으면 자고, 먹고 싶으면 먹고 얼마나 자유로움을 만끽하는지, 또 하나의 변화는 보람을 안겨주었다

! 완전 은퇴다. 사람이 간사한 동물이라더니, 환경 적응에 빠른가 보다. 언제 우리가 오랜 기간을 손주 손녀들을 돌보느라 나이 든 청춘을 보냈나 싶다. 참 자유의 몸이 된 우리 부부는 늦은 은퇴 생활의 시작이지만 지루함없이 거북이처럼 집콕 생활을 유유자적한다. 

이제 묵은 달력을 떼어낼 때가 왔다. 새롭게 오는 새해엔 정상적인 일상이 돌아오기를 기원하는 마음 간절하다. 그때엔 감사와 소망의 발걸음에 장단 맞추어 제2의 은퇴 생활로 저 높으신 분의 뜻을 좇아 겸허히 행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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