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종덕
목사(벨뷰한인장로교회 담임)
성례의
신비 고린도전서
11:23-27
‘오늘날
신자들에게 세례와 성찬은 과연 필요한가’하는 질문은 ‘우리에게
제도와 조직으로서 교회와 전문 성직자가 과연 필요한가, 혹은 예배와 헌금이 과연 유효한가’하는 등 신앙생활의 매우 기본적인 질문으로 종종 이어지기 때문에 기회가 되었을 때 성례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에서
성례는 세례와 성찬 두 가지입니다. 세례는 평생 단 한 번만 시행하므로 단회적이며, 성찬은 주기적으로 교회 내에서 시행하므로 반복적입니다. “그 어느
것도 합법적으로 임명된 말씀 사역자 외에는 집례할 수 없다”고 천명하고 있으므로 성례전은 제도교회와
무교회주의를 구분하는 경계가 되기도 합니다.
세례는
신자를 유형교회에 가입시키는 예전이며 장로교회에서는 특별히 유아세례를 시행하는 데 그 뜻은 신자의 가정에서 태어나는 아기는 하나님의 예정과 약속
가운데 이미 구원의 은혜를 입고 교회 안에 있는 신자임을 인정하는 믿음 때문입니다.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16:31)”
성찬은
예수님께서 죽으시기 전에 명령하신 것입니다. 당시 유대사회의 음식문화였던 ‘하나의 떡을 떼어먹고, 하나의 잔을 나누어 마시는 것’을 통해 신자들이 이루는 교회의 깊은 영적 의미를 가르치셨습니다.
기독교의
예전인 세례와 성찬의 가장 기본적인 뜻은 ‘거룩한 교회’에
담긴 신비로운 의미입니다. 우리가 자주 암송하는 사도신경에는 ‘나는
거룩한 교회와 성도의 교통을 믿습니다’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나는 하나의 거룩한 교회와 성도가 나누는 성찬의 의미를 믿습니다’는 뜻이 됩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는 하나만 존재합니다. 지상의 교회는 수많은
형태와 다른 신조를 갖고 신자들의 신앙생활도 각기 다를 수 있지만 ‘하나님의 모든 성도들이 이루는 거룩하고
보편적인 교회’는 단 하나입니다.
우리가
믿는 바 ‘세례의 신비’는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을 입어 구원의
은혜를 입은 성도가 지상교회에 엄숙하게 가입하는 사건이 일어날 때, ‘성령께서 세례받는 당사자를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의 일원이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는 하나만 존재하므로 성령의 접붙임을 받아 교회의 일원이 되는 것은 일생에 단 한 번 일어나는
일이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세례는 한 번만 받습니다. 세례
자체에 어떤 ‘주술적인 힘’이 있어서 구원 여부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므로, 오히려 더 깊은 의미를 구원받은 신자가 ‘거룩한
교회’의 일원이 되는 것’에 두는 것이지요.
성찬은
‘성도가 거룩한 교회의 지체임을 확인하고 기억하는 일’입니다. ‘성찬의 신비’는 성도들이 모이는 모든 형식의 예배와 모임에 담겨 있습니다.
신자들이 하나의 공동체로 모이고, 하나의 떡을 나누며 하나의 잔에
참여하는 순간, 하나님의 거대한 교회, 오고 오는 세상에
존재하는 단 하나의 거룩한 교회가 약동합니다. 성도들이 함께 모여 찬송하는 순간, 그 소리는 천국의 웅장한 울림이 되어 메아리 쳐 돌아옵니다.
성찬의
재료인 빵과 포도즙에 어떤 주술적 의미가 들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보다 중요한 것은 거기에 담긴
‘하나님의 신비’입니다.
성례전에
은혜와 구원이 동반되는 것도 아니지만, 성례전을 무시하거나 경시해서도 안된다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고전11:27). 성례에는 ‘하나님의
거룩한 신비’가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
이치에서 기독교인들의 신앙생활에서 가지는 모든 예전들, 즉 예배, 기도, 헌금, 봉사, 선교 등으로
표현되는 영적 상징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신비’가 담겨있습니다. 그 가치를 기억하고 지키는 일 없이 신앙의 성장도 전승도 없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10:2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