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준
수필가(오레곤 문인협회 회원)
모과
차 담그기 좋은 날
전형적인
서북미 날씨를 말할 때 지금과 같은 10월은 우기에 속한다. 9월
중순부터 다음 해 4~5월까지는 시도 때도 없이 자주 비가 내리기 때문이다.
흔히 들 말하기를 시애틀은 비가 많이 오는 지역이라고 한다. 그러나 1년 간의 강우량으로 보면 알래스카나 시카고 지역보다 적게 온다는 통계가 있다.
대부분 소량의 비가 자주 내리기 때문이다.
3시간
거리의 남쪽 밴쿠버에서 10년 이상을 살다가 이곳으로 이사 와서 정착하고 두 번째 가을을 맞는다.
첫 해에는 기온이 7~8도 차가운 이 지역 기후를 잘 몰라서 정성들여
키운 노란 대국 100여개의 화분에서 한창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할 9월 말에 갑자기 기습한 한파로 누렇게 얼어 죽어가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아야했다.
그때
받은 상처로 올해에는 소수정예로 잘 키워보자고 마음먹고 20여개의 화분에 건강하게 잘 키웠는데 올해에는
아직까지 갑작스런 한파가 밀려들지 않아서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
식물들이 기후를 잘 아는지 작년에는 9월 중순부터 꽃망울을 터뜨리고 예쁜 맵시를 자랑하기 시작했는데 10월
중순인 아직까지 50센트 동전만 한 꽃봉오리가 직경 한 뼘이 넘는 대형 노란색 국화꽃을 피울 준비를
하고 있다.
밴쿠버
지역에서 10여년을 살면서 구석구석 내가 아는 보물창고를 많이 갖고 있었기 때문에 지난 주에는 마음
맞는 고향 친구 분과 가을걷이를 하기 위해 먼 길을 다녀왔다.
가는 길에 알밤을 줍고 모과를 따고 농사를
짓기 위해 닭똥을 가져와야 했기 때문에 바쁜 일정이었다. 그곳에 살 때에는 수시로 가서 알밤을 몇 말씩
주워 주위 분들과 나눠 먹기도 했는데, 한 시간 남짓 주운 밤으로는 나눌 수가 없는 것이 아쉽다. 누가 심어놓았는지 수 십년 전에 그린벨트에 심었기 때문에 주인도 관리자도 없고 먼저 줍는 사람 몫이다. 나도 집 주위에 밤나무 10여 그루를 심어 놓았다. 3~4년이 지나면 열매가 열리기 시작하겠지?
다음으로
찾아간 곳에서 노랗게 익은 탐스런 모과를 따왔는데 올해에도 미리 허락을 받아놓고 가서 두 자루 가득히 100여개를
따가지고 왔다. 주인은 먹지 않고 떨어져 썩는 것이 귀찮아 아무든지 빨리 따가기를 원하는 사람이다. 모과의 진가를 모르기 때문인 듯하다.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산란계 200여마리와 비육우 10여 마리를 사육하는
작은 농장 집이다. 남자는 군대생활 만기 전역을 했고 부인은 공무원으로 일하고 은퇴하여 풍족한 은퇴연금으로
한적한 시골에서 여유롭게 여생을 즐기는 마음씨 좋은 부부다. 자기 집에서 나오는 것과 친구 농장에서
나오는 것에 톱밥을 섞어서 거름을 만들어 놓고 필요한 사람에게 무료로 나누어준다.
그냥 얻어오는 것이
미안해 지난해에는 홈 메이드 와인을 한 병 가져다 주었더니 아내가 맛있다고 너무 좋아한다는 전화가 왔다. 내년에는
야생 딸기로 담근 복분자 와인을 가져다 주겠다고 했다. 와인을 한 병 가지고 갔더니 반가워하면서 자기
아내가 만들었다고 주키니 스윗트 랠리쉬를 한 병 준비했다가 복용방법 안내 메모까지 곁들여준다.
어제
밤부터 줄기차게 비가 내린다. 이런 날은 밭에 있는 부추와 대파를 잘라다가 각종 해물을 썰어 넣고 전이나
부쳐 먹으면 좋을 것 같다.
비가 너무 많이 오니 손님도 뜸하고 모과차 담그기 좋은 날이다. 해마다 다른 사람들에게 먼저 나누어주고 남은 것, 탐스럽고 커다란
것이 나무에서 떨어지면서 생긴 상처로 상하기 시작하는 것이 아까워 상처를 발라내고 담갔는데 올해는 코로나 전염병으로 사람 만나기가 쉽지 않아 나누기도
힘들다.
큰 맘 먹고 씨알이 굵고 실한 것으로 대여섯개 골라서 세 병을 담아놓고 보니 부자가 된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우선
잘 씻고 얇게 썬 후 다시 생채를 썰 듯이 가늘게 채썰어 갤런 병에 1/3을 넣고 꿀로 2/3를 채우고 밀봉하여 가끔 흔들어주며 2~3개월 동안 숙성시키면
목과 감기에 좋은 향내 나는 약으로 탄생한다.
모과는 각종 미네랄 성분, 칼륨, 탄닌, 비타민
성분 등이 풍부하여 설사, 식중독, 위경련, 통증 완화. 뼈 건강, 혈당
조절, 숙면을 취하게 하고, 피부미용 등등 수많은 약효를
자랑한다. 물을 끓여 완성된 모과차를 몇 스픈 넣고 차를 만들어 몇 차례 마시면 향도 좋고 감기가 신통하게
떨어져 나가고 목이 부드러워지기도 한다.
연분홍
꽃은 예쁜데 과일은 못생겨서 놀라고, 노랗게 익은 모과를 한 입 베어 물면 맛이 없어 놀라고, 맛없는 과일을 차 속에나 집안에 놓아두면 은은히 풍기는 향기에 놀라고, 모과주나
모과차로 만들어 먹으면 그 효능에 놀라는 등 4번 놀래주는 과일이라고 한다.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키고, 과일 망신은 모과가 시킨다는 말도
있지만 그 효능만큼은 최고다.
울창한
숲과 아름다운 환경 속에 살면서 할 일이 있어서 좋고, 달콤하고 짙은 향 내음 풍기는 모과와 철따라
주위에서 출토되는 각종 토산물들을 즐기고 나누며 건강하고 풍성하게 살 수 있도록 베푸신 은혜가 한없이 고맙고 감사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