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보라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지부 회원)
가운데
극단주의자
언론의
자유를 가르치던 프랑스의 한 교사가 이슬람 극단주의자에 의해 참수됐다. 수업 자료로 무함마드를 풍자한
만평을 사용했다는 게 그가 살해당한 이유였다. 이 끔찍한 사건에 프랑스뿐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이 충격에
빠졌다.
언제나
그렇듯 대어를 낚은 사람들처럼 여기저기서 이 사건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한쪽에선 ‘자유’를 내세워 공격했다. 언론이
억압받아 그 기능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면 분명 사회 곳곳에선 썩은 내가 진동할 것이라고 외쳤다.
반대쪽에선
‘평등’을 내세워 반격했다.
프랑스 내 무슬림들에 대한 편견이 날로 심해져 그들이 차별받는 소수 계층이 되었단 것이다. 그
안에는 부르키니(부르카와 비키니의 합성어)를 입은 무슬림
여성에게 벌금을 부과하는 법을 당장 철회하라는 강력한 목소리도 포함되어 있었다.
며칠
전 짧은 다큐멘터리에서 결혼 2년 차 부부의 이야기를 들었다. 명절에
홀로 고향으로 향하는 남편은 부부가 합의로 명절을 각자 보내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 시각 아내는 여유롭게
집안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내는
자라오면서 엄마처럼 살지 않기로 했단다. 며느리라는 단어에는 무수한 기대가 담겨 있는데 그것들은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한다는 것이다. 남편도 그 말에 동의하며 자신의 어머니가 실수로 보낸 사진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 사진은 어머니 친구가 며느리에게서 받은 생일상 사진이었다. 남편은
어머니에게 말했다. 엄마, 나도 장모님 생신 때 그런 사진을
받진 않잖아.
워낙
대한민국 내에선 예민한 사안이라 여기저기서 물어뜯기 시작했다. 그런데 판이 점점 이상해졌다. 처음엔 용감하다, 응원한다고 하다가 점점 이런 문제의 시발점이 되는
명절을 아예 없애자, 결혼하지 말고 맘 편히 혼자 살자 등 극단적인 댓글들로 변해갔다. 논지는 이미 물먹은 솜 인형처럼 강물
아래로 깊이 가라앉아 버렸다.
당신은
극단주의자입니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고, 대번 ‘아니오’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갑자기 내 머릿속에 고질병 같은 문제 하나가 머리를 치켜들었다.
둘째
아이가 온라인 수업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학교에서 이메일을 받았다. 벌써 두 번이나 경고했는데 또 이런
이메일을 받게 되자 내 인내심의 한계가 그것 보라며 눈앞에서 얄밉게 빈정거렸다. 대체로 아이들에게 수업에
대해 잔소리하지 않는 매우 고상한 엄마라고 자부하던 난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아이의 방으로 돌진했다. 그리고
아직 침대에 누워있는 아이를 발견했다.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겨우
던지지 않고 손에 꼭 쥐고 있던 수류탄 하나를 공중으로 높게 날려버렸다.
“하지
마! 이럴 거면 다 그만둬. 학교 공부는 해서 뭐하니? 악기 레슨도 그만두고, 미술 공부도 다 그만둬!”
전쟁터같이
자기 방에서 수류탄이 펑펑 터지고 있는데 아이는 겨우 실눈을 뜨며 엄마가 왜 저러나, 하는 표정을 지었다.
난
어쩌다 극단주의자가 되었을까. 아이가 온라인 수업에 제대로 참석을 안 한다면 다른 방법이 뭐가 있는지
찾아봐야 했다. 아니, 내가 직접 아이를 깨워 컴퓨터 앞에
앉히는 방법도 있다.
또 큰 아이에게 수업에 들어가기 전, 동생
방을 한 번만 들여봐 달라고 부탁을 할 수도 있다. 그런데 난 왜 그런 극단적인 말을 내뱉었을까.
서로의
이해관계가 다른 집단끼리 목숨을 앗아가는 대신 생명의 소중함을 한 번쯤 깊게 생각해본다면, 사회적 차별에
조금만 더 너그러운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어땠을까. 또 오래된 전통이라도 문제가 생겼을 때 더 적극적으로
해결하고 바꾸려는 노력이 있었더라면 우리는 모두 극단주의자가 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아이를 깨우려 방문을 열었다. 그런데 아이는 담요를 몸에 두른 채 졸린 눈으로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엄마, 나 수업 잘 듣고 있어. 결코 잘 듣고 있는 것 같진 않았지만, 괜히 웃음이 나 방문을 다시
닫았다. 그리고 돌아서며 생각했다. 코로나19로 지낸 9개월 동안 아이가 아프지 않고, 우울해하지도 않고 잘 지내준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모
아니면 도만 찾을 게 아니라 개, 걸, 윷도 적절하게 쓸모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흑 아니면 백으로 갈라질 게 아니라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색이 더 아름답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청팀 아니면 홍팀으로
싸울 게 아니라 두 팀이 섞여 선의의 경쟁을 하는 모습이 더 멋지다는 걸 잊지 않으면 된다.
커피를
탔다. 커피와 따뜻하게 데운 우유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반씩 섞어 두 잔을 만들었다. 하나는 아이를 위해, 다른 하나는 극단주의자가 되지 않겠다고 오늘도
다짐하는 내 몫이다. 이제 ‘박애’를 실천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