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순해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지부 회원)
X의
힘
그날
불현듯 병문안이 가고 싶어졌다. 뭉그적거리기 잘하는 사람이 냉큼 길을 나섰다는 건 좀 별난 일이었다.
병원에 도착해, 계신 병실로 가려다 보니 바로 눈앞 유리창으로 된
병실에 뵙고 싶었던 분이 주사 줄을 꽂고 누워 계셨다. 눈이 마주치자 들어오라 손짓도 하셨다. 아무 생각 없이 일행과 함께 그곳으로 들어섰다.
그
분은 문우이자 교우여서 십여 년을 함께 각별하게 지내왔다. 지난해 생신 무렵 어느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가려다 맥없이 넘어져 골절상을 입으셨다.
처음의 부상은 가벼웠다. 곧 일어날 거야, 안부 전화에 밝은 음성으로 대답하셨다. 그게 문제였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셨기에 평소의 자신감 대로 움직이다
고관절 부위의 뼈에 금이 더 크게 가고 말았다. 고통을 호소하자 의사는 그분을 냉큼 병원 침대에 고정해
버렸다.
부상 부위의 감염을 우려해 이것저것 항생제 투여도 했다. 여러
종류의 항생제에 부대끼던 그분은 드디어 위가 고장 나 식사를 거부하기에 이르렀다.
생신
날 교우들이 모여 정성을 다해 생신 축하 노래를 불러 드렸으나 그분은 사색(死色)이 되어 제대로 앉지도 못하셨다.
사실은 그날이 그분의 미수(米壽) 생신 잔치 겸 저서 출판기념일이었다. 두 달이나 그날을 위해 순서와 메뉴를 손수 짜며 고대하고 기다려 오신 날이었다. 가장 기뻤어야 하는 날, 그럼에도 식사조차 못하시다니. 그 7년 전 생신에는 첫 번째 저서 출판기념회가 계획돼 있었다.
하지만 그 무렵 바깥 분이 돌아가셨다. 거푸 일어난 액운에 연세가
연세이니만큼 모두의 가슴에 먹구름이 끼었다. 순식간에 찾아든 불운에 여기저기서 그분을 위한 기도회가
열렸다.
우리가
방문한 날은 마침내 혈구 수치마저 떨어져 면역 상태가 제로였기에 무균실에 들어가 계셨던 순간이었다. 면회인
사절인 무균실 밖엔 간호사들이 오가고 있었지만 아무도 우리를 제지하지 않았다. 멋모르고 들어간 우리는
한동안 한담(閑談)을 나눴다.
위가 성이 났을 땐 삽주 뿌리를 대려 드시면 좋다고 말씀도 드렸다. 먼저
방문했을 때 드렸던 홍화씨 환에 대해, 고맙다고 몇 번이고 인사하시며 삽주 뿌리를 꼭 기억하겠다 하셨다.
그
다음 방문에서 참으로 놀라운, 믿을 수 없는 얘길 들었다. 우리가
방문했던 그 날이 가장 위태로운 상태이셨단다. 그럼에도 삽주 뿌리를 기억하셔서 엘에이에 사는 큰 따님에게
연락하셨고, 따님은 쏜살같이 그것을 구해 대령했고, 며느님
또한 신속하게 대려 바친 결과 위가 안정돼 식사를 거부하지 않게 됐다 하셨다. 그러자 회복에 속도가
붙어 위험한 상태에서 벗어났고 이젠 식사도 잘 할 수 있다고 편안한 얼굴을 하셨다.
88세의 고령에
그런 회복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고 의사들도 놀라워한단다. 이 일을 그저 그분의 의지 탓이라고만 해야
할까. 나는 그저 내 경험을 말씀드렸을 뿐인데… 3개월 병원
생활을 마친 뒤 그분은 재활을 위해 시니어 홈으로 거처를 옮기셨다.
그분은 병원 계실 때도 그렇고 시니어 홈으로 옮긴 뒤도
그렇고 방문객이 가장 많은 환자여서 의료진들이 또한 놀라워한다. 회복과 재활 속도가 방문객 수에 비례한다
하면 그분이 가장 좋은 예가 아닐지.
게다 방문객의 절반 이상이 젊은이들이다. 품성이 단정한 그분은 애 어른 할 것 없이 누구에게나 겸손해서 젊은이들에게도 신뢰를 받는다. 그러기에 주변에 사람이 모여들어 그분을 중심으로 서로 활력을 얻는다.
나도
처음 문협에 갔을 때 적응이 어려웠다. 그분은 낯을 가리는 내가 곧 떠내려갈 사람으로 보이셨던지 매번
챙겨 주셨다. 그분의 그런 마음 씀이 나를 거기에 머물게 했다. 신실한
그분은 은근히 사람의 마음을 모으는 힘을 갖고 있다.
누구와 다투는 일을 본 적 없으나 당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에 대해 물러나는 것도 본 적이 없다. 늘 조곤조곤 상대의 마음을 도스리며 좋은 관계를 만들어
가신다.
남편을
앞세우고 따님을 앞세우며 불운을 겪는 고통 속에서도 타인의 어려움을 보면 그들을 위해 늘 기도하시는 그분은 지금 라스베이거스에 가 계시다. 추위가 환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료진의 의견에 자녀들이 남쪽으로 모셔간 탓이다.
어제도 전화를 드리자 따듯하고 맑은 음성으로 내 마음을 데워 주셨다. 이민의
고초를 넘고 개인적 고통도 감내하시더니 이젠 당신의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를 받아 그 아래 앉아 평안을 누리시나 보다.
그분의 정갈한 음식을 언제 다시 맛볼 수 있으려나. 부엌의 젊은이들을
진두지휘하는 그분의 활기 넘치는 음성을 다시 들을 날이 어서 빨리 오길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