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근
목사(시애틀 빌립보장로교회 담임)
사랑이
필요합니다
요즘 우리들이 살고 있는 미국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몇 달은 가정에 매여 있어 모든 가족들이 스트레스로 함몰돼 있고, 조지 플로이드 사건으로
인해 전국이 데모로 몸살을 앓고 있기 때문입니다.
집안에 갇혀 있기 싫어 외출하겠다는 의붓아들과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총으로 아들을 쏘아 죽였고, 데모하는
군중을 향해 경찰이 또한 총탄을 발사해 시위대를 사살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어느 구석을 봐도 사랑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로 살벌하기만 합니다. 참으로
요즘은 따뜻하고 포근한 사랑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이민 1세대들은 미국에 와서 죽도록 일만하며 젊음도 청춘도 다 바쳤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두 눈으로 목도하였으면서도 자식들은 감사하기는커녕, “우리 부모는 돈 밖에 모른다”고 평가절하합니다.
그러다 병이 나 몸져눕기라도 하면 미련없이 양로원으로 보내버리고 이 세상을 떠나 무덤에 들어가도 찾아오는 자녀들을
만나보기는 참으로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다 보니 누가 뭐래도 “사랑이
필요합니다”라고 절규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사랑을 찾아보기란 바닷가에서 금을 찾기보다 더 어렵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지금이 바로 말세이기 때문입니다. 천지만물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일찌감치 예언해 두셨습니다. “말세에는 사람들의 가슴에 사랑이 식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가슴에
사랑이 말라버리면 결국 남이야 죽든 살든 오직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 누구도 자기 자신을
희생하며 사랑을 실천하지 않습니다. 자식이 부모를 모르고 제자들이 스승을 모른다면 이 세상 어디에서 사랑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사랑의 사도 요한은 “우리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고 부모님의 사랑을 받았으니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진정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구원받은 성도들은 사랑에서 자유 할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을 모르거나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바로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없는 사람에겐 하나님도 없는 것입니다.
남의 허물이 자꾸만 눈에 거슬린다면 이 또한 가슴에 사랑이 없다는 증거입니다. 사랑은
형제들의 허물과 죄를 덮어주고 가려준다고 성경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뇌 전문의들은 사람이 사랑에 빠지게
되면 뇌의 컬러가 달라진다고 말합니다. 뇌하수체에서 사랑하는 이들에게만 생성되는 특별한 호르몬이 분비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특수 호르몬으로 형제들의 허물과 죄가 가리워져 모든 것이 다 이쁘게 보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한 눈에
반했다’는 말은
이렇게 설명이 되고 증명이 됩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 같은 특수 호르몬은 무한정으로 분비되는 것이
아닙니다.
가슴에 사랑이 살아 있을 때만 분비되고 그 사랑이 식어지면 자연적으로 소멸되고 맙니다. 그
유효기간이 길어야 6개월
정도라고 하니 소위 말하는 콩깍지는 그리 오래 버텨주지 않습니다.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에게 사랑에 빠져 몸살을 앓을 때 그는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다”(아가8:6)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서
그 어떤 것도 사랑의 힘에 비할 수가 없습니다.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부모나 죄인을 위해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그 사랑은
결국 죽음도 초월하는 정도이니 말입니다.
최근 중국의 13살 중학생이
학교에도 못가고 온라인으로 수업을 해야 해 아빠의 전화기를 빌려 공부하고 게임도 했습니다.
그런데 절제하지
못한 아이는 그만 게임에 빠져 한 달 동안 무려 1만달러가 넘는 전화요금이 나온 것을 보고 아빠의 질책이 두려워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평소에 어떤 잘못도 너그럽게 품어주는 사랑으로 훈련되었더라면 그렇게 극단적인 길을 택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날보다 사랑이 절실한 때도 없었습니다. 따뜻한
사랑으로 목숨같이 소중한 능력으로 우리 자신들과 이웃들을 살려내는 사랑의 역사를 만들어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