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춘 한국일보 시애틀지사 고문
‘쭉쭉빵빵’의 나라
요즘은 한물 갔지만 여자들의 늘씬한 몸매를 한마디로 끝내준 신조어가 몇년 전까지도 유행했다. ‘쭉쭉빵빵’이다.
훤칠한 키에 팔다리가 곧게 뻗고 가슴과 엉덩이에
볼륨이 있다는 길다란 말을 네 글자로 줄인 밀레니얼 사자성어다. 마릴린 먼로, 그레이스 켈리 같은 헐리웃 글래머 스타들과 애드리아나 리마, 신디
크로포드 같은 슈퍼모델들을 연상시킨다.
지난해 오랜만에 서울에 갔을 때 크게 달라진 게 하나 있었다. 거리에도, 백화점에도, 식당에도 쭉쭉빵빵이 넘쳤다. 전철 안에서도 나보다 큰 젊은 여자승객들 속에 파묻히기 일쑤였다. 쭉쭉빵빵이라는
유행어가 왜 시들해졌는지 알만 했다. 젊은 여자들이 거의 다 쭉쭉빵빵이기 때문이다. 그래선지 ‘짜리몽땅’이라는 이름의 K-팝 여성그룹이 뜬다고 했다.
내 눈이 참으로 정확했음을 입증해주는 연구보고서가 닷새 전에 발표됐다. 한국여자들
키가 지난 1세기 동안 무려 20.1cm나 커져서 세계 모든
나라 여자들 중 가장 빠르게 성장했다고 영국의 임페리얼 대학 연구팀이 밝혔다.
지난 1914년 142.2cm(약 4피트 8인치)였던 한국여자의 평균 키가100년 후인 2014년 162.3cm(5피트 4인치)로 커졌다고 했다.
임페리얼 연구팀은 2014년에 18세가
된 179개국 남녀 1,860만명의 키를 1914년에 18세였던 남녀와 비교조사 했다. 과학자 800여명이 참여했다.
1914년의 18세 여자들은 1896년 출생자이다. 당시 한국여자는 세계에서 세번째로 작았다. 하지만 100년 후인 1996년 출생해2014년 18세가 된 한국여자들은 세계에서 55번째로
큰 쭉쭉빵빵으로 변모했다.
여자만은 못하지만 남자도 159.8cm에서 174.9cm로 15.1cm나 커졌다. 이란(16.5cm)과 그린란드(15.4cm)에
이어 세번째로 많이 자라나 세계에서 51번째 큰 대장부들이 됐다. 국민의
키가 많이 자랐다는 것은 국가 경제력이 많이 자랐다는 뜻이다. 2014년에 18세가 된 남녀의 출생연도인 1996년에 한국은 대망의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이 됐다.
한인 이민1세들의 키는 자고로 주류 미국인들에게 꿀려왔다. 하지만 알고 보니 미국인들도 별볼 일 없어졌다.
1914년 당시
세계에서 세번째(171cm)로 컸던 미국남자들은 100년이
지난 후 37번째(177cm)로, 당시 4번째(159cm)로
컸던 미국여자는 42번째(163.5cm)로 각각 수직 추락했다. 키가 100년간 5~6cm밖에
자라지 않아 한국남녀들과 엇비슷해졌다.
선진 부국들 중 유별나게 미국인들의 키가 세계 평균치보다 덜 자란 것은 키가 작은 이민자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라는
논리도 있지만, 전문가들은 그보다 영양의 불균형 탓이 더 크다고 지적한다. 키가 크지 않고 살이 쪘다는 얘기다. 실제로 지난 30년간 미국 어린이들의 비만율은 두배로 늘어났다. 어린이 및 청소년 3명 중 1명이 과체중 아니면 비만이다.
현재 세계최고 꺽다리 나라는 남자는 네덜란드(185.5cm), 여자는
라트비아(169.8cm)이다. 최단신 남자는 동 티모르, 여자는 과테말라다. 니제르, 르완다, 시에라리온 등 1960년대 초 기아가 휩쓴 아프리카 국가에서 출생한
사람들은 부모세대보다 키가 줄었다. 이번 조사에 포함되지 않은 북한의 어린이 및 청소년들도 아마 영양실조로
키가 줄었을 것 같다.
키가 크면 결혼할 때 점수를 딸 뿐 아니라 건강, 장수, 고학력에 고수입을 올릴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보고서가 있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 선거에서 키 큰 후보가 당선된 비율이 58%였다.
포천지
선정 500대 CEO의58%도 6피트 이상 꺽다리였다. 키가 5피트 5인치를 넘는 회사직원들은1인치마다 봉급을 최고 1,000달러까지 더 받는다는 통계도 있다.
운전면허증에 기록된 내 키는 5피트6인치지만 사실은 그보다 작다. 거의 40년전
면허신청을 도와준 친구가 자기 키를 기입했다.
솔직히 요즘 한국의18세 남자 평균 키(175cm)에 훨씬 못 미친다. 그건
어렸을 때 많이 못 먹어서가 아니라 유전 탓이다. 바로 그 점이 껄끄럽다. 내 손자는 또래보다 훨씬 작고, 손녀는 위로 크지 않고 자꾸만 옆으로
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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