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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8-02 08:34
눈산조망대/ 발머의 ‘돈 폭탄’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5,501  

한국일보 시애틀지사 고문


발머의 ‘돈 폭탄’
 

시애틀엔 팬들이 애지중지하는 프로구단이3개 있다. 지난해 수퍼볼 챔피언에 오른 시혹스는 금년 시즌 티켓이 금값처럼 올랐는데도 살 수가 없다. 축구팀 사운더스도 시혹스만은 못하지만 강호대열에 낀다. 오는 25일 ‘코리아 나이트’ 경기서 추신수가 뛰는 텍사스 레인저스와 맞붙는 야구팀 매리너스는 전적은 별로지만 미국 최고수준의 구장을 자랑한다.

이들 프로팀의 이름은 당연히 바다와 관계있다. 시혹스는 전설의 바다 독수리, 매리너스는 뱃사람, 사운더스는 시애틀이 깃든 퓨짓 사운드(Sound, 내해)에서 땄다. 농구팀만 없는데 사실은 시애틀에 딱 맞는 팀이 하나 있다. ‘클리퍼스’(쾌속 범선)이다. 뱃사람들이 범선을 타고 사운드를 누비며 조련된 시혹스를 풀어서 연어사냥을 한다고 상상하면 멋지다.

만년 꼴찌였다가 최근 잘 나가는 클리퍼스가 실제로LA에서 시애틀로 옮겨올 뻔 했다. 많은 팬들이(나도) 그렇게 될 줄로 기대했다

1979년 전국 챔피언을 따낸 수퍼소닉스가 2007년 오클라호마시티로 간 뒤 팬들이 새 팀 유치를 갈망하던 터에 마이크로소프트의 전CEO(최고경영자)인 억만장자 스티브 발머가 클리퍼스를 매입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클리퍼스는 1970년 ‘버팔로 브레이브스’로 출범했다. 8년 후 샌디에이고로 옮겨가면서 해양도시 이미지에 걸맞게 클리퍼스로 개명했고1984년 다시 LA로 옮겼다

부동산재벌 도널드 스털링(80) 1981년 ‘단돈’ 1,250만달러에 매입한 클리퍼스를 33년이 지난 뒤인 금년 발머가 농구팀 거래사상 최고기록인20억달러에 매입하기로 스털링 부인과 합의했다.

스털링은 유태인이다. 인종혐오 피해자지만 그 자신 인종차별주의자다. LA의 자기소유 아파트단지에 인종을 골라 입주시키라고 직원들에게 말했다가 2003년 고발당했다

그는 “흑인은 냄새난다. 부랑자들도 끌어들인다. 히스패닉은 담배를 꼬나물고 단지를 어슬렁거린다. 하지만 코리안은 허름한 방을 세줘도 군말 없이 렌트를 꼬박꼬박 잘 낸다”고 말했다.

그는 3년 뒤인2006년에도 직원들에게 “코리아타운에 있는 아파트엔 한인들만 입주시키고 베벌리힐스 쪽 아파트엔 흑인을 받지 말라”고 지시했다가 연방 법무부에 기소됐다. 또 그 3년 후엔 클리퍼스의 한 장기근속 임원에게 “선수는 모두 싸구려 흑인들로 채우고 코치는 비싼 백인을 쓰겠다”고 말하고 그 흑인임원의 연봉도 6년간 동결했다가 고발당했다.

그는 지난 4월 끝내 파국을 맞았다. ‘여자친구’가 왕년의 농구스타 매직 존슨과 찍은 사진을 보고 “무슨 짓을 해도 좋다. 그와 잠을 자도 좋다. 하지만 내 경기장에 흑인은 절대 데려오지 말라”고 말한 사실이 드러나 농구협회(NBA)로부터 영구제명 당했다. 클리퍼스 경기를 애인이 아닌 자신이 참관할 수 없게 됐고, 팀 매각도 부인에게 주도권을 빼앗겼다.

망령든 스털링보다 발머가 더 치사하다. 클리퍼스를 매입해도 시애틀에 옮겨올 생각이 전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농구팀 돈벌이 시장으로는 LA가 시애틀보다 좋기 때문이란다

그는 보유재산이207억달러로 포브스 갑부순위에서 32위에 올라 있다. 돈을 주체하지 못할 그가 클리퍼스를 매입한 것은 한낱 장삿속이었다. 고향 시애틀의 팬들은 염두에도 없었다.

엊그제 LA 법원은 권리를 상실한 스털링 대신 부인이 팀을 팔 수 있다고 확정 판결했다. 프로농구 구단주위원회도 거래종결과 함께 구단 소유권 이전을 인정하겠다고 밝혔다. 스털링이 항소하겠다고 버티지만 발머는 사실상 팀의 새 주인이 됐다. 시애틀 팬들이 농구팀 유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알뜰살뜰 추진해온 새 구장 건설계획도 사실상 물거품 됐다.

발머의 20억달러 ‘돈 폭탄’은 히로시마 원폭만큼이나 위력적이다. 그 돈이면 시애틀 다운타운에 멋진 새 농구장은 물론 세이프코필드 야구장과 센추리링크 풋볼(축구) 구장까지 짓고도 6억달러가 남아 농구팀 유치에 보탤 수 있다. 

올해 시간당 최저임금을 간신히 15달러로 올려 받게 된 시애틀의 한 근로자는 발머가 ‘돈 지랄’을 한다고 했다. 그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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