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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9-21 10:57
[시애틀 문학-이한칠 수필가] 야생화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3,265  

이한칠 수필가

 
야생화

 
야생화를 떠올리면 왠지 가슴이 찡할 때가 있다.
아마 10년 전 시애틀에서 산행을 시작한 후인 것 같다. 많은 산을 오르다 보면 아기자기하고 앙증맞은, 또는 고고하고 외로운 자태의 야생화들이 내 발걸음을 붙잡는다.

나는 야생화를 그저 이름 모를, 이름 없는 꽃으로만 여겼다. 나중에야 그들대로 이름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나 둘, 이름을 알고 나니 산행이 더욱 즐거워졌다. 아는 꽃의 이름을 불러 주니 더욱 많은 꽃이 내게 다가온다.

만년설을 이고 있는 거대한 레이니어 산은 언제, 어느 쪽에서 바라보아도 웅장하다. 장엄한 그 산을 오르고 싶은 많은 사람이 곳곳에서 몰려와 정상에 도전한다. 대단한 일이다. 야생화를 보기 위해 레이니어 산을 찾는 이들도 꽤 있다. 한여름에 끝없이 펼쳐져 있는 아름다운 야생화들을 보면 황홀경에 빠지기도 한다.

선라이즈에는 등산로의 초입부터 온통 보랏빛 루파인과 주홍빛 페인트브러쉬 등 온갖 야생화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가까이 다가가니 다양한 색상이 더욱 선명해진다

온통 꽃잔치가 벌어졌다. 자줏빛 마젠타 페인트브러쉬, 흰빛 그레이 로베이지와 아메리칸 비스토, 그리고 웨스턴 패스퀴플라워와 바이올렛 등이 저네들만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무리를 지어 뽐내고 있다

웅대한 레이니어 산을 왼쪽으로 바라보며 2,150m 높이의 프리몬트 전망대로 가는 등산로는 온통 화산암 조각으로 깔렸다. 한여름 햇볕에 바위가 달구어져 빤질빤질하게 윤기가 흐른다

습기를 머금은 흔적조차 없는 화산암 틈에서 작은 키의 야생화들이 드문드문 한 포기씩 얌전하게 고개를 내민다. 모쓰 캠피언, 알파인 아스터, 그리고 청보라빛 루파인 등 고운 빛깔의 그들이 나를 사로잡는다. 무슨 힘일까? 이토록 강한 생명력을 어디에서 또 볼 수 있을까

바위틈으로 뿌리를 내려, 눈산이 내뿜는 살을 에는 추위를 감내하고, 한여름 따가운 햇볕에 숨을 헐떡거리며 어렵사리 피워낸 한 떨기의 꽃. 자신이 가진 역량을 다하여 이루어낸 성공을 겸손하게 내보이는 모습이 참 사랑스럽다.

내가 다른 산보다 레이니어 산의 야생화에 더욱 마음이 가는 것은 군락을 이룬 모습이 정겹기 때문이다. 같은 종류의 꽃들이 어우러져 또 다른 종류와 큰 무리를 이루고 있는 모양새가 꼭 우리 이민사회를 보는 듯하다.

이곳 시애틀 근교에도 한인 밀집지역이 여러 군데 있다. 줄지어 있는 한글 간판들을 보면 한인들의 군락임을 단번에 알 수 있다. 정치ㆍ종교ㆍ문화ㆍ교육 그리고 각종 동호인 단체들은 물론, 동일 업종의 사업자들까지 그들이 가진 색상은 다양하다

때로는 다른 목소리로 인해 갈등도 있지만, 다름을 인정하고, 한인이라는 동질성을 바탕으로 오순도순 격려하며 발전해 나아가는 모습이 좋다. 이렇게 어우러져 나아갈 때만이 미국사회에서 한인사회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더 넓혀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봄철 보리밭을 뒤덮으며 해를 입히는 둑새풀도 똘똘 뭉친 보리들의 군락에는 꼬리를 내린다 하지 않던가.

아버지날에 아이들로부터 카드를 받았다. 파도가 넘실대는 넓은 바다에 떠 있는 돛단배 그림이었다. 돛을 조종하는 건장한 남자가 바로 나라고 했다. 배 뒤쪽에 있는 이가 아내인데 나와 아내 사이에 두 아이가 웃고 앉아 있는 그런 모습이었다. 카드에는 미국에서 우리를 든든하게 이끌어 주시어 감사합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내가 아무리 힘이 세다 한들 나 혼자 배를 끌고 갈 수 있었을까

지금 생각하니 미국에 처음 왔을 때에 나도 야생화였을 것 같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미국에서 사는 우리 모두는 어쩌면 그런 야생화일지도 모른다. 낯선 곳에서 새롭게 시작한 우리의 삶을 위해 인내하며 정성을 쏟아 꽃을 피워야 하기 때문이다.

홀로 피는 야생화는 고고하고 아름답다. 군락을 이루어 함께 어우러져 피어나는 야생화는 더욱 아름답다.


오늘따라 레이니어 산의 옹기종기 모여 있는 정겨운 야생화가 눈에 어른거린다. 서로 기대고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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