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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10-19 14:31
[시애틀 문학-정민아 수필가] 그리운 가얏고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3,531  

정민아 수필가

 
그리운 가얏고
 
 
편하게 가부좌를 틀고 앉아 오른편 무릎 위에 가야금 윗부분을 조심스레 올렸다. 속이 텅 빈 오동나무 위에 열두 개의 현을 가로로 얹고, 기러기 발처럼 생긴 안족도 받치자 제법 연주깨나 하는 품새가 되었다.

교습 첫 시간, 악기 다루는 것이 어눌해도 산조 한 곡은 연주할 것 같은 기분이다. 힘이 들어간 손가락으로 줄을 튕겨 보니 은은한 그 소리가 괜찮다며 나를 달랜다.

주로 오른손 엄지, 검지와 중지 등으로 줄을 뜯거나 튕겨 소리를 낸다. 왼손은 오른손이 내는 음을 따라 안족 왼쪽의 현을 눌러주며 소리의 미묘한 변화를 준다니 그리 어려울 것도 없지 싶었다

그래서 처음 며칠은 가야금 타는 재미에 끌려 손가락에 물집이 잡히는 것도 전혀 몰랐다. 맨손으로 타는 악기라고 쉽게 다룰 일이 아니었다. 가르치는 선생의 손끝처럼 단단해지려면 자주 생기는 물집하고 친해져야 한다니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는다.

아린 손 끝을 달래느라 나는 식사 때마다 젓가락 대신 포크로 대신하는 번거로움을 해야만 할 것 같다. 그나마 시한이라도 정해져 있으니 다행이다. 통증이 느껴질 때마다 핏발이 섰던 무지와 식지를 왼손으로 살포시 감싸니 또 하나의 손이 떠오른다.

여덟 개의 손가락을 가진 그녀를 처음 만난 건 어느 문학단체에서였다. 내 어머니와 닮은 주름으로 해서 고희에 가까운 그녀의 연배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가끔 발표하는 글에서 그녀의 지난 시간을 유추해 보곤 했다. 시간이 지나며, 따뜻하고 온화한 성품을 종종 읽게 되던 그녀의 글 속에서 보이지 않는 손가락의 행방도 알게 되었다.

직장에서 큰 사고를 당한 것이었다. 심한 부상으로 오랜 시간을 힘겹게 보냈다는 말이 과거형이라 위로가 되었다. 그녀는 손가락의 낯선 빈자리에 대한 미련보다 더 고통스러웠던 것은 주변의 포장된 염려였다 했다.

제법 큰 회사에서 당한 사고라, 평생 먹고 살만한 보상을 받게 될 것이라는 남들의 부러움이 손가락 두 개쯤이야, 로 치부해버렸으니 말이다.

낯설게도 착했던 하와이를 떠나, 또다시 낯설게 도착한 시애틀에서 이처럼 그녀가 감당해야만 했던 벽은 부상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언어와 문화의 벽, 직장동료끼리의 차별은 또 다른 복병을 만난 듯 하루하루가 힘에 겨웠다고 했다. 하지만 이곳이 기회의 나라란 희망을 가졌기에 견딜 수 있었지 싶다.

반년이상 치료를 하면서 겪어야 했던 고통을 누가 감히 위로할 수 있을까. 정당한 보상조차 청구할 수 없었던 약자의 억울함이 배고픔의 설움보다 훨씬 컸다는 그녀에게서 진한 동지애가 전해졌다.

그녀의 글엔 덤덤하지 않은 과거가 덤덤하게 찍혔다. 노후를 위해 오랜 시간 가야금을 탔다던 그녀의 고백에서 마음의 굳은 살을 짐작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이제 당당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이민자가 되었다니 가야금 소리와 맞바꾼 셈일까. 식탁에서 포크를 집은 그녀의 손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을 것 같다.

며칠 만에 내 무릎에 돌아온 가야금을 튕겨 본다. 늘어진 줄이 그 동안의 무관심에 서운했는지 낯선 소리가 난다. 제 소리를 찾기 위해 돌괘를 조심스레 조였다. 고치를 지은 누에가 뿜은 가느다란 실 한 가닥에 그녀의 옛 소리가 묻어나 듯하나, 둘 이민자의 삶이 가야금 줄을 타고 살아난다.

손가락 물집이 둥덩둥덩 소리에 자취를 감추었다. 아픔 하나를 견디니 조금 단단해진 느낌이다. 처음보다 소리의 울림이 멀리 가는 듯하다. 잊으려 했던 그녀의 가야금 소리를 찾아 어설픈 손가락이 명주실 위에서 춤을 춘다. 아리랑 한 곡조 뜯으니 내 열손가락에 그녀의 여덟 손가락이 포개진다.

올 겨울에도 그녀는 따뜻한 남쪽에 사는 가족들을 만나러 길 떠날 채비를 한다. 낯선 이방인 같은 그녀는 스노우 버드가 되어 찬바람 속으로 훨훨 날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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