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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3-21 16:54
[시애틀 문학-박희옥 수필가] 밀물은 온다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3,594  

박희옥 수필가

 
밀물은 온다


 
바람이 따뜻하다. 봄 처녀가 바로 문턱에 왔나 보다. 성미 급한 꽃나무들은 일찌감치 봄 단장을 마쳤다. 반세기도 훨씬 넘겨버린 나의 삶에도 봄바람이 불어온다. 나른한 봄의 주말, 나는 시간의 공백을 느낀다. 바쁘게 앞만 보고 달리던 수레바퀴가 갑자기 멈추어 선 지금,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유로운 시간이 오히려 나에게는 구속이다.

일상에서 궤도이탈을 꿈 꿀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는 어김없이 핸들을 잡는다. 그리고는 무작정 달린다. 한참을 달리다 보면 낯선 풍경에 버럭 겁이 날 때가 있다. 그땐 망설임 없이 왔던 길을 되돌아 온다다시 낯익은 광경이 보이고 나는 본래의 자리로 돌아온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이런 것인가 보다. 고속도로는 각각의 모습으로 나를 유혹한다잿빛 하늘로, 어떨 때는 저녁노을이 저만치 뒤따라 오기도 한다. 맑은 날씨 속에 펼쳐진 레이니어 산의 자태가 주말의 텅 빈 도로를 채운다

나는 도로를 달린다. 이니어 산은 일년 내내 속에 덮여있다. 나는 속에서 스키를 타는 모습을 상상 해본다. 웃음소리와 함께 위에서 대자로 누워있던 나의 모습이 생각난다.

기억 속에 깔려있는 생각의 줄기세포는 오늘도 간수처럼 나를 따라 다닌다.

몇 년 전 친구와 함께 스키장에 갔다. 스키를 타지 못한다고 주저하는 나에게 관광버스로 편안하게 다녀올 수 있고 스키장에서의 근사한 저녁까지라는 소리에 따라 나섰다
 
스키장에 도착하니 약간은 흥분되기도 했다. (雪)빛이 너무 강해서 선글라스를 끼고 사진을 찍었다. 다른 사람들은 벌써 삼삼오오 짝을 지어 렌탈 하우스에서 스키 장비를 빌리기도 하고, 벌써 리프트를 타고 오르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는 한 시간 레슨을 받고 무조건 리프트를 타고 올라갔다. 약간 두렵기도 했지만 같이 간 사람들을 믿고 용기를 내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문제였다. 제대로 내려야 할 곳에서 미처 내리지 못해서 모든 리프트를 중단시킨 후에야 내릴 수가 있었다. 겨우겨우 미끄러져 내려오다가 중간에서 스키를 벗었다.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스키장을 안방 삼아 아예 큰 대자로 바닥에 누워버렸다. 파란 하늘이 병풍처럼 스키장을 품고 있는 듯 했다. 눈(雪)위에 누웠어도 전혀 등이 춥다는 느낌이 없었다.

내가 오지 않으니 친구가 걱정이 되었는지 같이 스키 관광버스를 타고 왔던 사람들과 나를 찾아왔다

나를 보자마자 “Are you okay?” 연신 물어온다. 나는 생각과는 다르게 “Fine. Thank you” 라고 대답했다. 조금은 멋쩍었지만 오히려 미소까지 보이던 여유, 차라리 배우나 될걸 그랬나 보다.

그래도 그 사람들을 보니 안심이 되었다. 그들과 함께 식당에 도착하니 사람들은 어느새 여유 있게 따뜻한 차를 마시고 있다가 나를 보더니 박수까지 치면서 야단 법석이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다짐했다. “내년에는 꼭 스키를 배워서 폼 나게 스키를 타리라.하지만 그 내년은 아직 오지 않았다. 몇 년이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스키를 타지 못한다. 지금도 친구들은 나를 놀린다. 그때를 생각하면 나도 웃음을 참을 수가 없다. 한참을 웃으니 마음이 즐거워진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화려하다. 봄 꽃으로 단장한 나무들이 신명을 이루어내고 있다.  인간이 아름답게 만든다 한들, 이렇게 아름다울 수는 없을 것 같다. 봄 옷으로 단장한 나무들로 내 눈이 호사를 누린다. 팍팍한 일상 속에 누리는 작은 여유가 이런 것인가 보다

세월에 등 떠밀렸던 삶이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또 다른 삶으로 내몰릴 미래의 모습이 궁금하다. 하고 싶은 것들이 많은 만큼 욕심도 많고 기대도 많아서 언제나 내 삶은 버거웠다

만조가 될 때까지 썰물과 밀물로 쉬지 않고 일하는 바다같이 내 삶의 모래밭을 열심히 가꾸며 살아왔다. 나는 빨리 세월이 흘렀으면 좋겠다. 그래서 포기할 수 밖에 없는 나이가 되고 싶다.

그러면 자유로울 수 있을 것 같다.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삼류소설 같은 것 인지도 모르겠다. 허접한 일상들이, 인정하고 싶지 않은 지겨운 진실들이 함께 있으니 말이다. 혹자는 사랑을 밀물과 썰물의 관계라고 한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자연스럽게 밀려왔다가 밀려가는 반복적인 일상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으려 했다. 썰물의 인생으로 내몰릴 때는 인생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밀물은 반드시 온다라고 생각하며 그래도 살아볼 만하다는 용기가 생긴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되어보지 못한 것이 되고 싶다. 이제 가보지 않은 또 다른 길을 가려고 한다. 그곳에는 결단이 필요하다. 다른 삶을 꿈꾸며 돌아서는 용기에 내 소망의 닻이 다시 길을 잃지 않도록 새로운 봄을 맞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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