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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11-09 09:06
[시애틀 문학-공순해 수필가] 산골 나그네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3,601  

공순해 수필가

 
산골 나그네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21번을 듣자면, 왠지 김유정의<산골 나그네>가 떠오른다.

산골의 가을은 왜 이리 고적할까! 앞 뒤 울타리에서 부수수하고 떨잎은 진다. 바로 그것이 귀밑에서 들리는 듯 나직나직 속삭인다. 더욱 몹쓸 건 물소리, 골을 휘돌아 맑은 샘은 흘러내리고 야릇하게도 음률을 읊는다. ! ! ! 쪼록 퐁!

소나타의 첫 마디 따안 따안 따다다다안~, 이게 소설 속의 퐁! ! ! 쪼록 퐁! 을 연상케 해 그런가? 서양의 고전 음악 작품과 한국, 그것도 누추한 인생들이 등장하는 소설의 느낌이 같은 이유는 뭘까?

우선 소나타의 첫 소절이 인상 깊은 탓일지도 모른다. 한 번 들으면 잊히지 않는 베토벤의 <운명>,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처럼 인상적인 첫 소절. 심장을 손가락으로 짚어 누르듯 한 음 한 음 울리는 그 음()들은 가슴 속의 낙엽을 남김없이 떨어낸다.

문학 작품에서도 첫 문장이 인상 깊으면 그 작품은 절대 잊히지 않는다. 대학 입학시험 전날, 홀랑 밤새워 읽는 바람에 비몽사몽 가느라, 고사장에 지각할 뻔하게 한 강신재의 <젊은 느티나무>,  ‘그에게서는 언제나 비누 냄새가 난다.’처럼. 만일 이 작품의 시작이 그에겐 언제든지 비누 냄새가 난다.’였으면 그 울림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으리

그에게서는다섯 박자와 그에겐세 박자의 차이. 만일 김유정이 더욱 몹쓸 건 물소리하고 명사절로 끊지 않고, ‘더욱 몹쓸 건 물소리다.’라고 서술문으로 풀었다면 박자가 맞지 않아,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21번과 같은 느낌은 덜 했을지 모른다.

그럼 첫 소절 때문이라면, 곡이 연주되는 47분 남짓한 시간 내내 같은 생각을 하게 하는 이유는 또 뭘까? 우선 두 작품 다 애절한 느낌에 가슴이 서걱 베어진다. 혹자는 슈베르트의 소나타가 싱겁다 한다. 흐릿한 인상에 선율만 붕 떠 부유하는 느낌이라고. 나도 이 의견에 찬성하긴 한다.

그러나 그가 세상 떠나기 두 달 전 작곡한 이 작품엔 확실히 다른 뭔가가 있다. 특히 김유정의 소설에 얹어 들으면.

나중에 알게 됐지만, 이 곡은 그의 대표 연가곡 <겨울 나그네>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란다. 버림받은 방랑자의 정처 없는 발길을 그린 음악이라니 영락없는 산골 나그네 아닌가.  방랑자와 나그네? 내 느낌이 괜한 게 아니었다.

다시 길에 나섰지만 갈 곳 없는 방랑자의 슬픔. <산골 나그네>에도 만만치 않은 애절함이 흐른다. 이 소설엔 아예 주인공 이름이 없다. 작가는 주인공에게 이름조차 부여하지 않았다. 주인공이 하층민인 것을 철저하게 드러내는 장치였을 게다

하찮은 존재, 사물의 일부 (그녀의 수동적 삶의 태도로 보아), 자연의 일부에 불과한 존재. 그러나 이 작품이 아름다운 건 주인공이 보여주는 인간 속에 들어 있는 본성, 맑고 소중한 정신이다.

은비녀를 두고 떠난 그녀의 행위에서 짚이는, 인간으로서 차마 하지 못할 일을 삼가고 제 분수를 지켜내는, 사물이나 동물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도덕심. 부정의 부정은 긍정이라 하듯, 그녀의 배신은 더 귀한 신의(?)를 지키기 위한 배신이었다. 그러기에 그녀에게선 수정처럼 맑은 인간 본연의 품성조차 느껴진다

하위층의 수정처럼 맑은 심성과 고위층(?)의 탐욕스러움을 미술 색상 대비법처럼 선명하게 부각시킨 셈이라고나 할까. 김유정은 떠도는 거지 여자를 통해 인간의 아름다운 본성을 꺼내 보여 줬다. 인물 대비 작법에 성공한 셈이다. 그러기에 맑고 고적한 느낌이 선명해서 더욱 애절하다.

이 두 작가는 일생에서도 비슷한 애절함을 남겼다. 31세에 요절한 슈베르트와 29세에 요절한 김유정. 천 여 곡의 작품을 남기고도 베토벤을 능가하고 싶어 몸살을 앓았던 슈베르트. 베토벤의 관을 들고 장지로 가며 제 2의 베토벤을 꿈꾸던 그는 그러나 그다음 해에 자신이 죽을 줄 몰랐을 거다

누가복음 읽기를 좋아했다는 이상이 함께 자살하자고 꼬드겼을(?) , 거절했던 김유정 또한 자신이 이상보다 한 달 먼저 가리라 예측 못했을 게다. 그는 닭 20뭇쯤 삶아 먹으면 자신의 건강이 회복되리라 믿었다. 두 천재의 이런 공통점은 후세인들의 가슴을 애타게 한다.  

가난 속에 사랑마저 잃어 고독한 나그네였던 두 천재. 그러나 슈베르트는 지금 비엔나 거리, 공원, 기념관, 식당 이름이 되어 누군가에게 부(?)를 안겨 주고 있다. 김유정 또한 돈이 없어 제대로 치료도 못 받고 죽었지만, 지금은 고향 실레 마을에 기념관이 들어서, 지역 사회의 화수분(?) 노릇을 하고 있다. 이 또한 슬프지 아니한가.

가을이 깊어 가고 있다. 고적해질 때면 김유정의 <산골 나그네>를 다시 손에 들고,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21번이나 들으며, 수정처럼 맑게 마음 밑절미나 닦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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