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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1-29 14:10
[시애틀 문학:수필] 바람 소리-정동순 수필가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3,648  

정동순 수필가


바람 소리

 
잠에서 깨었다. 바람 소리가 거세다. 다시 잠을 청하려 눈을 감아 보나, 바람 소리는 더욱 또렷하게 들린다. 몇 시나 되었을까? 북두칠성 아래 밤 공기는 차디차고, 마당에 내린 서리가 외등의 불빛에 반짝이는 시간이다. 허나 밖에서는 바람이 한판 놀아보세, 하는 모양이다.

쏴아아~. 사력을 다해 백 미터를 질주하는 바람이다. 골목길을 샅샅이 쓸고 가는 소리이다. 휘이익~. 끝을 둥그렇게 감아 올리는 바람 소리가 이어진다. 질주하던 선수가 온 힘을 다해 원반을 던지는가 싶다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한 걸까? 응원하는 바람들이 웅웅거리는가 싶더니, 또 큰 바람이 달려오는지 차임 소리가 땡땡 조급하기만 하다. 결전을 앞두고 마주 선 장수들 앞에 깃발이 일제히 나부끼는 소리이다.

바람에 날아갈 만한 물건이 밖에 있는지, 정전되면 어쩌나 걱정이 되는 것도 잠깐, 어둠 속에서 바람 소리는 계속된다. 집채 만한 파도를 말아 올릴 법한 바람 소리다. 그 위를 올라타는 또 다른 바람 소리, 황룡과 청룡이 운우지락(雲雨之樂)이라도 나누는 걸까? 바람 소리와 더불어 딸랑거리는 차임 소리가 요란하다.

클라이맥스에서 내려온 바람은 뒷마당의 높은 전나무 가지를 비비고 간다. 바람은 나무들 잔가지들의 속내를 다 헤집어 보고도 성에 안 차는지, 내쳐 북두칠성을 향해 내달리는가 싶더니, 펄럭펄럭, 이번에는 바람이 긴 옥양목 천을 펄럭이며 살풀이라도 하는 것일까? 이내 다소곳해진 바람의 꼬리는 소짓장을 사르는 불꽃처럼 허공으로 사라진다.

예전에 살던 집 뒤에는 운동장 같은 대숲이 있었다. 겨울밤 부엉이가 홀로 앉아 우는 소나무 한 그루가 거기에 있었다. 부엉부엉. 적막을 가르는 소리가 잠잠해질 즈음이면, 대숲에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바람은 마치 파도처럼 쏴아아 쏴아아, 밀려왔다 밀려가곤 했다. 그 대숲에서 들려오는 바람 소리는 삼라만상을 거느린 우주의 신음 소리, 혹은 누군가 차가운 달빛에 앉아 듣고 있는 쓸쓸하고도 슬픈 노래 같았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윤동주의 서시를 암송하던 그 밤에도 바람 소리가 들렸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로 끝나는 서시에서 바람은 현실의 시련 혹은 고난, 사람을 괴롭게 하는 것이라고 배웠다.

하지만 내가 아는 바람의 느낌은 좀 다르게 전해졌던 것 같다. 바람은 오히려 부끄러움을 자각하게 하는 그 어떤 것이 아닐까 하는 상상을 했었다.

바람은 대기의 온도 차이로 생기는 자연 현상이다. 그러나 바람이 우리 인생을 스쳐 지나갈 때, 바람은 그냥 대기의 흐름이 아니다. 살랑살랑 빨래를 잘 말리는 남실바람이 있고, 산마루에서 땀을 식혀 주는 골바람도 있다.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신바람도 있다

순풍과 훈풍이 부는 날들이 있는가 하면, 역풍이 부는 날도 있고, 태풍이 불어 세상을 한바탕 뒤집어 놓고 가는 날도 있다. 바람은 배를 띄우게도 하고, 거센 파도를 일으켜 배를 뒤집기도 한다. 바람이 났다, 바람이 들었다, 바람을 피운다고 하면 바람은 얄궂은 바람이다. 늦바람이 무섭다는 말도 한다. 바람이 우리 인생을 조종하는 것 같기도 하다.

쏴아아, 다시 바람이 분다. 휘이익, 또다시 바람 소리가 몰려 온다.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는 튼실하지 못한 가지들이 부러져 땅바닥에 뒹굴 것이고, 물을 더는 빨아올리지 못한 썩은 밑동은 꺾여져 드러누울 것이다

내 마음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건강하지 못한 생각, 진실하지 못했던 과거들도 이 바람이 모두 쓸어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둠 속에서 눈을 감고 바람 소리를 듣고 있자니, 불현듯 바람이 나에게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바람은 온밤 사력을 다해 나를 깨워, 애타게 신호를 보내는데,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면? 나는 천하에 귀머거리에다 청맹과니가 아닌가.
아아! 바람이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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