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백현
시인(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 지부 회원)
역사 시간
단군신화를
다시 읽는 시간
어린 글쎄와
설마 들이 우왕좌왕한다
설마는
희망적이고 글쎄는 절망적이다
통째 동굴
하나가 반신반의로 침몰 중이다
TV
건너편에선 웅녀의 후손들이 발을
동동 구른다
한 장의
흙으로 백날의 추위를 견뎌내던 시절, 그때도 그랬다
‘위험합니다, 제
자리에서 꼼짝 마세요’아빠 곰들이 이런 방송을 했다
입구를
막은 흙이, 이런저런 곰들의 분탕질로 얇아져 눈사태가 들이쳤다
쑥을 먹던
글쎄들은 밖으로 뛰쳐나갔으나
마늘을
먹던 설마들은 안에서 기다리고만 있었으니
동굴 밖이
쑥밭이다
평형수를
빼먹은 곰들
뿌리의
뿌리들을 눈 속에 묻어 버린 나라
얼빠진
얼개 속, 누구도 누구의 말을 믿지 않는다
동굴도
곰들을, 바다도 구원파를 믿지 않는다
공항이
출국장 쪽으로 기운다
쑥들이
북극편과 남극편으로 길게 줄을 서고 있다
한편, 밤새 지구를 한 바퀴 돌아온
눈물 마른
마늘들이, 분향소로 향한 입국장에 길게 줄을 선다
울타리
밖에서 크는 쑥들이여, 텃밭 안에서 자라는 마늘들이여
우리의
공항은 바야흐로 복원력 수속을 밟아야 할 시간이다
<해설>
이 작품은
세월호 참사의 신화적 알레고리 형태의 시이다. 그 비극의 유람선이 “동굴”로, 학생들이 “쑥”과 “마늘”로, 그리고 무책임한 선원들이 “아빠 곰들”로
비유되고 바다는 “쑥밭”으로, “흙”과 “뿌리”는 민초(民草)의 정기 혹은 민족의 얼로 내비친다.
5연에서 바다는 “공항”으로 치환되어 “출국장”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가장
핵심적인 주제는 분열과 불신의 비극성이다. 참사 후 사람들은 민족의 신화와 종교를 불신하고 북극편과
남극편으로 갈라졌다.
이 같은 국가의 위기에 작가는 통일된 민족정신 복원의 시급함을 시적 모티브로 장치하여
역사적 메시지로 전달한다. 신화와 시대상황의 갈등구조로 긴장감을 극대화하는 드라마틱한 서술전개로 이
작품은 한 성공적인 현대시의 모형으로 간주된다.
김영호
시인(숭실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