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심리와
감정들을 낯선 여행자로 눈으로 그려
올 초에 문학을 공부하는 지인으로부터 선물을 받은 책이다. 책을 소개 받을 때 지인은 작가 김형경씨는 문학을 전공한 소설가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그런지 딱딱했을 수도 있는 인간 심리 분석에 대한 글이 의외로 기분 좋게 감성적으로 다가왔다.
사실 심리학자도 아닌 소설가가 쓴 심리 분석이 학문적으로 검증된 이야기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작가 본인이 직접 정신분석을 받은 경험과 훈습으로부터 나온 실제적인 이야기라고 하니, 적어도 소설과 같이 허구는 아닐 거라는 믿음을 갖고 읽어 나갔다.
어차피 인간의 심리라는 것이 알려고 한다 해도 그 심연의 바닥까지 전부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에 의지하며 편안한 마음으로 여행을 떠나 펼쳐진 풍경을 감상하듯 읽기로 했다.
사실 김형경씨의 심리 에세이는 시리즈로 몇 권이나 더 출판되었다. 오랜 기간 심리학과 정신분석학의 책을 읽고 혼자 공부해온 것의 진수가 자신의 체험과 함께 이야기 속에 녹아 있다고 봐야 하겠다.
이 책이 흥미로웠던 것은 인간 심리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 주는 작가의 친절하고도 조심스러운 안내였다. 그렇게 여행을 하듯 쫓아가다 보면 심리의 이면 저면을 다 들여다볼 수 있는 훈련이 나도 모르게 된다는 것이다.
그 훈련의 시작은 사실 우리 인간들이 얼마나 자신의 심리 상태에 대해 무지한가를 깨닫게 되는 것이기도 했다. 인간이라면 모두 여러 갈래의 감정을 하루에도 여러 번 갈아타면서 리얼하게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감정의 근원과 그 결과는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보지 않고 무의식적으로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을 주로 잠들기 전 침대 머리맡에서 한두 챕터씩 아주 느리고 천천히 읽었는데, 단번에 읽어 나가기에는 각각의 심리와 감정을 온전히 소화하지 못할 것 같다는 잠재의식이 때마침 적절히 작동한 것이다.
지금 와서 목차에 나온 심리와 관련한 키워드들을 하나하나 다시 짚어보니 그때 읽었던 구체적인 내용은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읽던 당시의 기분과 감상만 생생하게 살아 있다.
'사람들을 대할 때 밖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보여진 것만으로
이해하지 않으려고 조금은 애써 보기도 했던 것 같다'
읽으면서 ‘그래 맞아 나에게도 이런 비슷한 심리가 있지’, ‘이건 내가 아는 누구에게 필요한 글이겠군’ 하며 공감하게 되었고 각 장마다 그 장에 소개된 심리와 연관된 사람들의 모습이 하나 둘씩 떠오르기도 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을 대할 때 밖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보여진 것만으로 이해하지 않으려고 조금은 애써 보기도 했던 것 같다.
예를 들어 분노하는 사람을 보면 그것을 분노로만 보지 않고 그 심리 기저에 자리 잡고 있는 불편한 뭔가를 상상해 보는 작은 배려가 생기게 되었다고 할까.
작가가 다룬 이러한 다양한 인간 심리들은 책의 제목처럼 그야말로 ‘사람풍경’과 같이 한 폭의 캔버스에 담기에는 너무도 넓고 가득하다.
작가가 그려낸 사람풍경의 모습들을 나열해 보자.
무의식∙사랑∙대상 선택∙분노∙우울∙불안∙공포∙의존∙중독∙질투∙시기심∙분열∙투사∙회피∙동일시∙콤플렉스∙자기애∙자기 존중∙몸 사랑∙에로스∙뻔뻔하게∙친절∙인정과 지지∙공감∙용기∙변화∙자기실현.
작가는 사람냄새 나는 이 풍경들을 온 세계의 도시들을 돌아다니면서 순간순간 이야기로 포착해 내었는데 마치 소설을 읽듯 재미나게 엮어낸 작가의 문학적 재주가 돋보인다.
마치 여행을 하다 보면 세상에 별사람들을 다 만나게 되듯이 작가는 여행이라는 물리적 장소 이동을 통해 사람들의 이미 익숙한 심리와 감정들을 낯선 여행자의 눈으로 그려보고 싶었나 보다. 그래서 이 책이 문학적 향기가 나는 정신분석서라 불리기도 한다.
한 폭의 풍경화를
보듯 마음을 정화시켜준 효과도 있어
작가처럼 세계를 뒤지고 다니지 않아도 자기 자신만 봐도 또 주변의 사람들 속에는 이러한 사람풍경이 담겨있음을 발견한다. 다만 풍경이 아름답게만 보이지는 못할 것이다.
자연의 경치도 보는 이의 마음 상태에 따라 다르게 보이기도 하고 ‘사람풍경’ 또한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호불호가 달라질 수도 있다고 이해한다면, 우리는 풍경 자체를 탓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슬며시 들었다.
사람에 대해 너그러운 마음을 갖게 해 주는 이 책은 그야말로 한 폭의 아름다운 풍경화를 보듯 마음을 정화시켜 주는 효과가 있다. 나에게 이 책을 선물해준 지인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싶은 좋은 책이다. 많은 사람이 읽을수록 온 세상의 ‘사람풍경’은 점점 더 아름답게 변할 것 같은 기대가 된다.
[이 게시물은 시애틀N님에 의해 2013-08-22 21:17:15 자유게시판에서 복사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