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철(오리건 문인협회 회원)
고목(古木)
나는 나면서부터 푸른 옷을 입고 자랐다.
한 여름엔 청색 옷을 첩첩이 둘렀고
가을이 오면 노랗고 빨간 색동옷을 갈아입었다가
추운 겨울엔 그 옷을 훌훌 벗어 던지고 나신이 되지만
결코 얼어 죽는 일은 없었다.
나는 곁에서 함께 커가는 우목(友木)들과
자리다툼을 한다거나
땅을 더 차지하려고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때때로 거센 바람이 나의 전신을 흔들어도 보지만
땅 속에 깊이 발과 다리를 파묻고 서 있기에
쉽게 넘어지는 일도 없었다.
새 들에겐 둥지를 틀게 해 보금자리를 제공하고
모여서 지지배배 합창하도록 무대가 되어 주기도 했다.
나의 그늘은 노동자의 휴식처도 되었고
식사를 나누는 간이식당 역할도 기꺼이 했다.
시인들은 내 그늘 아래서 글을 짓고
노년들은 와서 바둑 장기 등 오락을 즐겼다.
나의 출생 목적은 인간들에게 봉사함이었기에
인간의 요구에 따라 가지도 주고 이파리도 주고
열매까지 주다가 마침내 몸 전체도 다 주고 만다.
인간들은 나를 가져다가 가구를 만들고 집을 짓고
삶에 필요한 온갖 도구들을 만든다.
그것들에 유용되지 못한 남은 조각들은
끝내는 불 속에 던져져 빛과 열을 내고 생을 마감한다.
<해설>
나무는 무욕, 우정, 강한 견인정신을 지니고 배려, 봉사, 섬김의 생을 사는 선한 가슴의 존재이다. 특히 나무는 인간에게 온 몸으로 헌신하고 덕을 베풀며 마지막에는 불 속에 들어가 “빛과 열을 주며 생을 마감”하는 희생의 표상이다.
작가는 이 같은 나무의 가치성을 인간에게 교화하는 시적 모티브를 구축하여 사람 또한 다른 사람들과 세상에 유익한 존재가 되어야 할 것임을 가르친다.
여기서 고목은 평생을 길 잃은 양들을 목양한 목자로 살아온 작가 자신의 정체를 투영하는 물상이며 동시에 인류를 위해 희생한 예수 그리스도를 반영하는 상징체이다.
이 같은 희생과 사랑의 시적 주제와 이미지의 공고한 구조가 자연스러우면서 견고한 종교적 시 예술을 빚어내고 큰 공감을 획득하여 주목된다. 김영호 시인(숭실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