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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3-06 02:34
[해설과 함께 하는 서북미 좋은 시-황순이 시인] 옷 입는 종이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3,671  

황순이 시인(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 지부 회원)
 

옷 입는 종이
 
 
해 밝은 방안 탁자 위에
순백의 종이 한 장 조용히
누군가를 기다린다.
 
옷 입혀줄 사람 생각하며
얼굴보고 이름 짓고
몸에 맞는 옷을 입혀
무리 중에 화려함 없이
마음에 맞는 옷
 
옷이 날개되어 기쁨 줄
홋 입혀줄 사람 누군가
입혔다 벗겼다
옷은 해지고
 
하얀 종이 한 장에
입혀줄 옷
문틈 비집고 들어온
햇살 한줌.
 
 
<해설>
좋은 시란 무엇인가
좋은 시란 평범한 사물이나 존재에서 어떤 특별한 사실 혹은 진리를 천착하여 그것을 간결하게 표현해낸 글이다

인용 작품에서 작가는 종이 한 장을 시적 대상으로 설정하여 매우 독특한 사실을 추출하고 있다. 자신에게 옷을 입혀줄 누군가를 조용히 기다리는 종이를 통하여 작가는 바로 모든 만물은 누군가에 의해 완전하게 존재할 수 있음을 성찰한다

여기서 종이는 자신의 얼굴을 보고 이름을 지어 주고 몸과 마음에 맞는 수수한 옷을 입혀줄 사람을 사모하고 기도한다. 그리고 그의 긴 기도 끝에 입혀줄 옷을 들고 “문틈 비집고 들어온/햇살”을 영접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종이는 시인 자신이요 옷은 글이며 햇살은 시신(詩神) 혹은 신앙적 절대자를 투영한다. 이 작품의 진정성은 순절한 성심으로 시를 갈구하고 겸온한 자세로 기도하듯 기다릴 때 햇살처럼 시신은 자신에게 맞는 시의 옷을 입혀준다는 메시지에 있다 하겠다.
                                                                                김영호 시인(숭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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