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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2-28 13:05
[시애틀 문학-김윤선 수필가] 뒷모습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4,157  

김윤선 수필가


뒷모습

 
뒷모습에도 표정이 있다. 막 해가 넘어가고 어스름이 깔린 바닷가를 배경으로 한 사진은 마치 묵화를 보는 듯하다. 교각의 난간에 팔을 걸치고 서 있는데 남편은 온전히 뒷모습만 보이고, 나는 옆얼굴이 살짝 드러나 있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두 어깨가 아름답다. 친구가 우리 부부 모르게 슬쩍 찍은 사진이다.

평상복에 외투 하나를 껴입은 모습이 누가 봐도 늙수레하다. 부수수한 머릿결 또한 예정된 외출이 아니었음을 말하고 있다. 그런 모습이 자유롭고 편안해 보인다. 오히려 살갑다. 무슨 얘기를 하고 있을까. 노을의 아름다움? 바다 건너 고국에 대한 그리움? 그것도 아니라면 자질구레한 집안 사정? 어쨌든 각박한 얘기는 아니었을 터, 뒷모습에 살짝 여유 같은 게 보인다.

한때 뒤태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뒤쪽에서 본 몸매나 모양’의 뜻이지만 연예인들이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높은 하이힐 위에 서 있던 긴장된 모습, 아름다움을 먹고 사는 이들이어서 인지 우리와는 모양새가 확연하게 달랐다

자연히 소홀했던 뒷모습에 관심이 갔다. 하기야 앞모습이 잘 화장한 얼굴이라면 뒷모습은 요즘 말로 생얼이다. 민낯에서 발견되는 잡티가 되레 인간적인 정으로 다가오듯 경계를 늦춘 느슨한 뒷모습 또한 그러한데, 뒤태의 열풍에 그마저도 혼미해지겠다.

뒷모습을 보고 있으면 얼굴 표정이 보인다. 군것질거리를 사기 위해 어미 곁에서 보채다가 마침내 내준 동전 한 닢을 받고 달려 나가는 아이의 뒷모습은 얼굴을 보지 않아도 알만하다

한때 나도 사는 게 무척 버거운 적이 있었는데 그때 만난 사람들은 내 뒷모습만으로도 날 걱정했다고 한다. 세상의 눈을 피하고 싶었던 내 본심을 사람들은 뒷모습에서 먼저 읽었던 모양이다

어릴 때 제 어미 속을 무던히도 썩이던 조카 한 놈이 어엿한 사회초년생으로 출근하던 날, 동생은 아들의 각진 어깨에서 태산준령 같은 힘을 느꼈다나. 기개로 무장한 표정 아니었겠는가. 내가 잘했느니, 네가 잘했느니, 한참을 다투다가 돌아서 나가는 남편의 뒷모습에 공연히 마음이 짠해지는 것도 앞모습에서 보지 못한 또 다른 표정 때문일까.

화장을 하거나 옷을 입을 때 뒷모습까지 챙겨서 보는 때는 드물다. 심지어 급하게 외출해야 할 때는 머리손질을 앞부분만 하고 나가는 때도 있다. 내 눈에 보이지 않으니 남의 눈에도 띄지 않겠지, 자기 속임수다

그 때문에 밖에 나가서야 비로소 스타킹의 올이 빠진 것도, 치맛단이 터진 것을 아는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때 사람은 앞모습보다 뒷모습이 더 진솔해 보인다.

뒷모습을 본다는 건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는 말이다. 부부는 세상을 마주보는 게 아니라 같은 방향으로 바라보는 관계라고 한다. 돌아서 나가는 남편의 뒷모습이 전하는 얘기를 듣는 건 같은 시선을 가진 부부로서의 당연함이던가. 같은 일을 도모할 상대를 결정할 때는 역시 앞모습보다 뒷모습에서 찾아야 할 성싶다.

아버지는 어린 우리 형제들에게, 어깨를 죽 펴라, 는 말씀을 곧잘 하셨다. 너희와 같은 방향으로 바라보는 아버지가 있으니 삶에 주눅 들지 말라는 또 다른 격려였을 게다. 멀찌감치 서서 등을 바라보다가도 여차하면 달려와 어느 새 가슴을 내미시던 아버지, 당신의 가슴 속엔 늘 온기가 괴어 있었다

그러고 보면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부부도 실은 등 뒤에서 닦달을 하기보다 언제든 따뜻한 가슴을 내어주는 관계라는 말인가 보다.

얼마 전에 어떤 분의 이임식장에 갔다. 첫 마디가, 시원합니다, 홀가분합니다, 그리고 자유롭습니다, 이었다. 문득, 같은 경험을 누린 자로서의 공감이 느껴졌다. 책임을 다하고 떠나는 이의 만족감, 뒷모습에서 많은 이야기가 들리는 듯했다

어쩜 그건 때맞춰 떠나는 지혜, 버릴 것을 버릴 줄 아는 지혜를 가진 때문이 아닐까. 그러고 보면 뒷모습이란 앞모습이 만드는 시간의 선물이다.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뒷모습이 달리 보이는 건 당연한 귀결이다.

삼십 여 년을 함께 살아온 사진 속의 뒷모습이 서로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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