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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3-12 23:53
[제8회 시애틀문학상 수상작-대상] 고마운 눈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3,375  

전소현


고마운 눈

                                                   
처음엔 싸래기눈이었다.

내가 사는 시애틀에서 겨울에도 좀처럼 보기힘든 눈이 내리고 있었다. 저녁을 먹고 난뒤 딸아이가 살 것이 있는데 나갈수 있을까 물었다

딸 아이와 같이 어두운 창문에 얼굴을 대고 밖을 보니 눈은 땅에 닿자마자 녹아서 물이 되고 있었다. 다녀오는데 별 문제가 없어 보였다.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심심했는지 남편이 운전사를 자청한다. 그래서 아들 아이만을 남겨놓고 세 식구가 길을 나섰다.

필요한 몇가지를 들고 상점을 나서니 세상에 그 사이 눈은 함박눈으로 변해 있었다. 불길한 느낌..예감이 좋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언덕을 올라와야 하는데 눈이 이렇게 내리면 올라갈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다. 시애틀은 언덕이 많지만 겨울엔 눈 대신 비가 많이 오는 곳이라 평상시엔 별 문제 없이 다니지만 이렇게 눈이 오면 문제가 달랐다.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언덕앞에 다다르니 아니나 다를까 올라가지 못한 차들과 그 사이에 출동한 경찰차의 눈부신 불빛이 번뜩이고 있었다. 남편은 한번 시도해 보겠노라고 차를 몰아 언덕으로 향했다. 그러나 차는 바로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뒷자리에 딸아이는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도저히 올라갈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남편은 골목 어귀에 있는 상가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는 말릴 틈도 없이 집에서 바퀴에 다는 체인을 가져오겠다며 차에서 내려 어두운 언덕으로 사라져 버렸다.

얇은 옷 만을 걸치고 어두운 길을 걸어가고 있을 남편을 도울수 있는 일은 집에 있는 아들아이한테 전화를 해서 체인을 남편에게 건네주라고 전화를 하는 일 뿐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차에 앉아 있자니 하나둘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차들이 보였다. 모두 차를 두고 집으로 걸어 가고 있었다.

남편이 집으로 가서 체인을 가지고  그 길을 되돌아 내려오고, 체인을 달고 다시 올라가는 일이 번거롭게 느껴졌다. 다른 사람들 처럼 딸아이와 내가 집으로 걸어가는 것이 훨씬 수월해 보였다

그래서 남편과 아들아이에게 전화를 해서 모두 집으로 들어가 있으라고 우리가 걸어가겠노라고 연락을 하고 차에서 내려서 걷기 시작했다.

눈이 내리고 있는 길을 딸 아이와 걸어가는 것은  생각보다 그런대로 괜찮았다. 언제 또 이렇게 눈 오는 거리를 딸 아이와 걸어볼까 하는 마음이 생겼다

나는 딸 아이가 걱정되었는데 아이는 연신 나를 챙기며 걸어가고 있었다. 내가 힘들지는 않은지 춥지는 않은지를 물으며 또 미끄러지지 않게 나를 잡고 걷고 있는 대학생이 된 딸아이가 많이 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걷고 있는데  길 한 가운데 머리에 하얀 눈을 뒤집어 쓰고 동상처럼 남편이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왜 집으로 향하지 않고 서 있느냐 물으니 여자 둘이 어두운 거리를 걸어오는 것이 마음이 놓이지 않아 가던 길을 돌아 다시 내려오고 있는 길이란다. 남편의 따뜻한 마음이 전달되었다. 둘에서  셋이 된 우리는 다시 집으로 향해 걸어갔다.

이제는 눈길을 걷는 것이 낭만적이라는 생각이 들 즈음 딸아이가 아들아이의 이름을 불렀다.고등학생인 아들은 배낭에 세 식구의 두터운 점버와 장갑 그리고 손전등을 들고 언덕을 내려오고 있었다

눈길에서 예정이 없이 만난 아들은 그렇게 반가울수가 없었다. 만나자 마자 아무말 없이 가방에서 하나씩 옷을 꺼내 주었다. 왜 나왔냐고 물으니 세 식구가 추울까봐 걱정이 되었단다. 아직 어리다고 생각되었던 아들아이의 마음 씀씀이가 나를 울컥하게 만들었다

이제는 셋에서 넷이 되어서 다시 길을  걸어갔다. 평상시에는 팔짱을 끼려는 나와 제 누나에게 좀처럼 틈을 주지 않는 시크한 아들녀석이 선선히 제 누나에게 팔을 내어주고 있었다. 두꺼운 옷을 입어서가 아닌 마음속에서 따뜻함이 밀려왔다

눈오는 밤길을 걸어가는 오늘이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다는 딸아이의 말에 또 추억하나가 만들어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는 외국에 나온지 십년이 되는 해이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남편과 내가 버틸수 있는 힘이 된 것은 아이들이었다. 늘 돌보아 주어야 하는 어린아이들로만 보았는데 어느새 훌쩍 자라 남편과 나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있었다.

처음엔 귀찮게 느껴졌던 이 눈이 어느 사이엔가 고마운 눈이 되어 있었다.


앤디 15-03-30 18:26
답변 삭제  
정말 고마운 눈이 었군요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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