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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3-15 16:02
[시애틀 문학-안문자 수필가] 고요한 꽃동네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3,457  

안문자 수필가

 
고요한 꽃동네


결국, 오고야 말았다. A집사님의 부고가. 집사님의 안타까운 암 투병 소식을 듣고 우리 형제들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전화를 드리자니 위로의 말이 생각 안나고, 꽃을 보내자니 성의가 없는 것 같고, 찾아 뵙자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예배 장소에 도착하니 슬퍼하는 조객들을 위로하듯 즐비한 꽃들 사이로 바이올린의 흐느끼듯 떨리는 음조가 실내에 흐르고 있었다. A집사님은 우리, 안씨네 가족들과는 특별한 사이였다. 아버지, 어머니를 위시하여 우리들이 무척 좋아했던 분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머킬티오의 한 작은 교회에서 설교를 하실 때 우리와 교회생활을 같이 하셨다.

A집사 내외분은 순수하고 인자하셨다. 무엇보다 20여 년 동안 안 씨네 크리스마스 콘서트엔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오셨다. 음악회 때마다 수줍어하며 내놓으시던 도네이션과 격려가 가득했던 미소는 우리 형제들에게 큰 기쁨이었다

그런데 지난 해, 크리스마스 콘서트에 오시지 않았다. 후에 남편인 A집사님이 항암치료 중이므로 가지 못해 섭섭했다는 카드가 왔다. 우리는 살아계실 때 찾아 뵙지 못한 때늦은 후회 때문에 더 슬펐다.

그래도 반가운 것은 그 분이 묻힌 곳이 우리 부모님이 계신 공원묘지였기 때문이다. 넓디넓은 파란 잔디를 딛고 누워있거나 서있는 비석들 사이로 색색의 꽃들이 가랑비를 맞고 있다. 여기 저기 천막이 쳐진걸 보니 그 새 하늘나라로 간 사람들이 여럿이 있나 보다.

하관 예배는 애절하였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죽음도 삶도 하나님의 사랑 안에선 삶의 일부분이라 하지 않던가. 아쉬운 작별을 하며 던지는 꽃들은 엄숙한 표정으로 살포시 관을 덮는다. 육신은 흙으로 돌아가지만 영혼은 하나님의 품에 계실 것을 믿으며 가족들은 그제야 교우들과 인사를 주고받는다.

나는 꽃을 나누어 주던 L집사에게 몇 송이의 꽃을 달라고 부탁했다. “저어기, 우리 아버지, 어머니께 가려 구요.”동생의 친구 L집사는 저만치 우리 부모님의 비석이 서있는 방향으로 눈길을 주다가 웃으며 빨간 장미를 쓱쓱 뽑아 준다.

비를 맞고 있던 비석이 우리가 다가가자 반가워하는 지 빗발이 더욱 굵어진다. 우리 아버지가 묻히실 때도 억수비가 쏟아졌는데. 새삼 슬픔이 주마등 같이 지나간다. 비석 앞에 꽃을 꽂고 헛일인 줄 알면서도 비석에서 흐르는 빗물을 닦는다

아버지, 어머니도 반가워하시겠지? 평소에 서로 사랑을 나누던 종씨가 이사 오신 걸. ’누군가의 말에 우리들은 쓸쓸히 웃는다. ‘ 근래에 우리가 좋아하던 분들이 많이 가셨구나. 외삼촌도 가셨고 사촌 오빠도 가셨고. , 김 목사님도 가셨잖니….

문득, <아직 다 슬퍼하기도 전에/ 또 한 사람의 죽음이/ 슬픔 위에 포개져> 라는 시구가 떠올라 안개 자욱한 허공을 바라본다. 아무리 천국의 소망이 있다 해도 이 땅에서 다시 얼굴을 볼 수 없는 이별은 슬프고 아프다

형제들의 얼굴에도 다시 눈물이 번져온다. 인생은 ‘나그네’라 했다. 나그네 길을 마치고 영원한 고향으로 돌아간 분들의 삶은 살아 있는 사람들의 가슴에 잠시 파문을 남기는 것뿐일까.

안 여사가 걸어오신다

다들 바쁜데 오셨군요. 안 목사님이 이곳에 계셔서 우리도 오래 전에 여기로 결정했어요. 그래도 안 목사님과 사모님이 계시니 위로가 되는군요. 우리 그이가 하늘나라에서 두 분을 만나 즐거워할 거예요. 우리는 안씨네 크리스마스 음악회에 참석하는 것이 큰 기쁨중의 하나였어요. 나 혼자라도 꼭 갈 터이니 앞으로도 계속 연락을 주세요.” 

평상시의 성품대로 따뜻하게 말씀하신다. 결국 우리는 함께 울먹이며 이제 건강을 챙기며 씩씩하게 사시라고 위로한다. 그 분은 점심 장소에서 만나자며 손을 꼭 잡아주신다. 그 따스함에 저리던 마음이 가라앉으며 평정을 찾는다.

쓸쓸하고 고요한 꽃동네, 남아 있는 자들이 할 수 있는 사랑의 표현은 기도하는 마음으로 꽃을 바치는 일뿐이다. 싱싱하게 나풀대던 꽃들도 이곳에 오면 슬픈가 보다. 꽃잎을 포개며 두 손을 모으듯 겸허한 얼굴이 된다. , 고요한 꽃동네여….첩첩이 겹쳐져 사방에 출렁이는 꽃물결을 둘러본다. 꽃은 사람의 마음을 어르는 마력을 지닌 것일까. 그래서 죽음을 한 발 물러서서 바라볼 수 있는 여유마저 주는 것 같다.

세상은 분주하게 돌아간다. 여기도 삶의 현장처럼 멈춤이 없을까? 대자연의 소리 없는 움직임이나 삶의 리듬이 끝나지 않는 것처럼. 표면은 죽은 듯 고즈넉하지만 이곳에도 사랑이 있고 노래도 있으리라. 영혼들은 서로 만나고 있을 테니까. 죽어 잠잠하나 살아있는 이곳, 다시 소생하는 부활의 증거를 보여주는 고요한 꽃동네. 삶과 죽음이, 만남과 이별이, 우리들의 사랑이 헛되지 않다는 잔잔한 음성이 꽃동네에 가득 채워진다. 미소를 잃고 있던 꽃들이 활짝 웃는다

, 고요하던 꽃동네가 신비의 빛으로 술렁인다. 눈물 고였던 내 마음의 눈이 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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