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의 신작 '옥자'는 세계적인 동영상 스트리밍 넷플릭스에서 투자, 제작한 작품이다. 무려 560억이라는 어마어마한 자본이 들어간 '옥자'는 브래드 피트의 플랜B엔터테인먼트가 공동 제작을 맡고, 할리우드 스타 틸다 스윈튼, 제이크 질렌할, 폴 다노, 릴리 콜린스 등이 출연한 글로벌 프로젝트였다.
애초 봉준호 감독이 넷플릭스와 손을 잡은 이유는 이 회사가 어마어마한 금액의 투자를 하면서도 그에게 연출 전권을 맡겼기 때문이다. 실제로 봉준호 감독은 지난 15일(한국시간) 한국에서 진행한 기자간담회에서 이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봉준호 정도의 감독이라면 한국의 투자 배급사에서도 비슷한 조건을 수락할 만한 곳이 아주 없지 않을 터. 칸에서 만난 봉 감독의 설명에 따르면 그가 한국 배급사들과의 작업을 애초에 배제했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봉준호 감독은 20일(현지시간) 프랑스 칸 칼튼 호텔에서 열린 한국 기자단과의 간담회에서 "이 영화를 왜 넷플릭스와 했느냐고 물어보실 때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옥자'의 시나리오를 좋아했던 많은 한국 투자사들이 있었지만 처음부터 접촉을 안 했다"라고 말했다. 애초 한국 배급사와의 작업을 배제하고 해외 투자, 배급사 위주로 파트너를 찾았던 것.
봉 감독은 이에 대해 "너무 부담스러운 예산 때문이다. 예산이 400~500억이 넘어간다"라며 "이 영화를 한국에서 하면 동료, 후배들이 만들 40~50억 예산의 영화가 멈춰지는 거였다"라고 이유를 밝혔다.
이어 "과거 '설국열차' 때문에 많은 동료, 후배들의 작품이 제작에 들어가지 못하고 '홀딩'돼 기다리고 있었다. 그게 너무 미안하더라. '옥자'를 할 때 처음부터 국내 선·후배 감독들에게 미안하게 규모가 큰 영화로 전체 산업에 민폐를 끼치지 말자는 생각이어서 함께 작업하지 않았다"라고 설명했다.
한국 투자 배급사와의 작업을 배제한 채 해외 자본, 특히 미국 자본의 도움을 받으려 보니, 그도 쉬운 것이 아니었다. 표현의 자유에서 제약이 적은 독립 영화 시장에서는 큰 예산에 대한 부담감이 컸고, 자본이 충분한 메이저 스튜디오에서는 '옥자'에 등장하는 불편한 요소들, 예컨대 공장식 축산업의 적나라한 부분을 보여주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
봉준호 감독은 "잠시 갈 곳을 잃고 방황하던 차에 넷플릭스에 이 영화 시나리오를 보여주니 '너무 좋다, 글자 하나 고칠 필요없다. 최종 편집권도 네 거고, 19세 요소를 넣어도 좋다, 피가 철철 넘쳐도 좋다. 'F-워드'(욕)도 상관없다'고 하더라. 이런 큰 예산의 영화에 100% 자유를 갖고 할 수 있는 건 드문 경우다. 배급의 형태로 가면 여러 논란이 있고, 기존 산업과 서로 오픈 마인드로 대화해야 하는 게 있지만, 아마존과 영화를 찍은 토드 헤인즈나, 넷플릭스와 함께한 나나 노아 바움백 같은 크리에이터에게는 긍정적인 기회다. 넷플릭스의 큰 서포트로 오늘 이 영화가 나오게 된 거다"라고 만족감을 표했다.
'옥자'는 제70회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한 작품이다. 넷플릭스가 출자한 이 영화는 극장 상영 방식을 택하지 않고 스트리밍 서비스로 제공된다는 점 때문에 프랑스 극장 협회의 큰 반발에 부딪쳤다. 그로 인해 칸 영화제는 내년부터 극장 상영을 전제로 한 작품만을 경쟁 부문 진출작에 선정한다는 내용의 새 규칙을 제정하기도 했다.